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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인회를 생각한다
김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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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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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오 /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국립호주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인구 약 15만의 호주 한인사회는 서방사회에서는 미국, 캐나다 지역 다음 세 번 째 크기라고 생각한다. 지난 10여 년 동안 그 규모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급성장과는 걸맞지 않게, 이 소수 민족사회의 발전과 결속을 위한다는 자율적 대표기관인 한인회는 오히려 구성원의 머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게 현실인 것 같다.

호주 한인의 주력 부대는 시드니에 거주한다. 지난 5월 말, 제32대 시드니한인회장과 부회장으로 단독 후보로 나선 윤광홍, 김상회(피터 김)씨가 각각 당선되었다. 6년 째(3연속)경선이 불발된 것인데 이 기구에 대한 관심 부재의 증거다.. 구성원의 회비 납부와 후원이 저조해 한인회장은 언제나 사비를 써야 하고, 그렇게 해서 모아진 예산마저 웬만한 구멍 가게의 1년 매출액에 미치지 못하여 이렇다 할 역할을 못하니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선거 때만은 일부가 들뜬다. 이번에도 회비 납부자에게만 선거권을 주자는 안을 놓고 시비가 일었었다. 그 시비는 처음이 아니다. 실은 이번에는 두 사람이 출마 의사를 발표함으로써 경선이 될 번 했으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한 후보가 이를 철회한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세계 각 지역 한인회에 공통적이라고 믿어지는데 멀리서 잘 알 수가 없다. 아래 글은 시드니한인회 선거에 앞서 현지 교포매체에 쓴 글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다른 지역 한인들에도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선거를 위한 한인회인가, 한인회를 위한 선거인가?

대부분 구성원들에게 물어 보면 안다. 한인회는 유명무실하거나 더 박절하게는 백해무익하다고 한다. 그 책임은 어느 특정인에 있지 않다. 전체 사회와 이 기구의 구조적 취약성에 있다. 그러므로 이 취약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야 해결책이 나온다. 그런데 한인회 당사자나 이 기구의 모체가 되는 구성원들 모두가 평소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가 선거 때가 되면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이나 선거 절차를 놓고 논의가 벌어지는 것이다. 한인회는 선거를 위하여, 더 심하게는 ‘선거 놀이’를 하는 곳이냐는 비아냥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쟁점은 앞서 언급한 대로 회비 납부와 선거권 간 연계 여부다.개인 의견을 말하라면 필자는 반대다. 이 기구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회비는 걷되 모자라는 큰 재정 충당은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사회를 유일하게 대표하고 구심적 역할을 하겠다면 그렇다. 한인회는 골프나 등산 클럽이 아니지 않은가.

필자는 과거 단순 선거보도가 아니고 한인회와 한인사회를 하나로 묶어 보는 총체적 관점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긴 글을 썼다. 그러나 달라진 건 없다. 이번에도 그 연장선에서 써보지만 헛수고가 될지 모르겠다. 아래 본론에서 몇 가지 논평을 겸하여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1) 잘 못된 전통

어느 사회, 어느 분야든 좋은 전통이 중요하다. 전통이란 먼저 간 사람이 기초를 잘 만들고 뒷 사람들이 거기다가 벽돌 하나하나를 올바르게 쌓아가는 작업이며 결과물이다. 경제발전을 했다지만 고국이 저렇게 혼란한 것은 그런 작업을 잘 못해 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하야시킨 이른바 4.19학생혁명, 민주정치가 발을 붙이는가 했더니 그걸 헐어버린 5.16 군사혁명, 권력을 또 다시 힘으로 뺏은 12.12 사건, 그 뒤 한 민선 대통령의 퇴임 후 자살, 그 뒤에도 두 전 현직 대통령의 감옥행이라는 국가적 치욕이 연거퍼 이어져왔다. 그런 판에 정치와 사회가 정상일 수 있겠는가.

호주 한인사회는 한국과는 비교가 안되게 작고 간소한 커뮤니티다. 회장 자리를 힘으로 뺏는 불상사는 없었다. 그러나 반세기 동안 예산 부족을 빌미로 약간의 주머니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이 회장이 되는 전통이 굳혀졌다. 돈 버는 게 아니고 쓰는 자리지만 사실상 매관매직과 비슷한데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 나와 비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한다면, 그리고 그 자리가 심지어 뉴욕타임스가 ‘의전을 위한 자리(ceremonial post)’라고 평할 만큼 실질적 기여가 없다면 백해무익이란 말도 나올만하다.

(2) 취약한 재정

징세권이 없는 한인회는 구성원의 회비와 외부 지원에 의지해야 하는데 이게 잘 안 되는 것이다. 왜 안될까? 만약 한인회 회장의 추천 없이는 고국 여행, 자녀 대학 입학, 장사를 못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런 허무맹랑한 가정을 해보는 이유는 회부 납부는 구성원이 보는 필요가 결정한다고 말하고 싶어서다. 현재로서는 한인회가 없어서 또는 제대로 역할을 안 해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구성원이 적어 보인다. 이게 회비가 안 걷히는 이유다.

그러므로 이 딜레마를 깨는 게 관건이다. 그건 한인사회가 잘 되어야 타향에서 우리와 우리 후손의 삶이 나아진다는 구 성원 간 공감대 형성인데 이게 쉽지 않다. 우리는 그런 장기적인 안목을 즐기는 민족이 아니다. .

나는 과거 글에서 가장 효과적인 모금 방안으로서 무조건이거나 일률적 회비 납부나 후원이 아니라 ‘프로젝트 중심(projects-specific) 모드’를 제안해 왔다. 매력 있는 구체적 사업과 사용 방법을 정해 놓고 집중적으로 모금하는 방안이다. 개개 구성원이 느끼는 직접 이익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봐 전체 사회 발전과 깊은 관련 있음을 가슴에 와 닿게 하는 실질적이며 매력 있는 사업을 고안해 모금을 한다면 나도 1, 2백불은 내놓을 용의가 있다. 물론 실험을 해봐야 한다. 새 한인회는 한번 시도해볼 것을 제안한다.

돈은 많건 적건 있으면 써버리게 마련이다. 인건비, 행정비, 회관 유지비, 그 외 지출 항목은 많다. 그런데 그런 한인회가 하는 일이 기껏 회장의 세계한인회장대회 참석과 많은 단체 행사에 나가 마이크 잡고 판박이 축사로 그치는 것으로 보인다면 모금이 잘 되겠는가.

차원이 다르지만, 시드니 한인사회 안의 수많은 시민단체와 교회와 성당에서 걷히는 여러 형태의 기금, 건축 헌금, 해외 선교자금, 특별 기부금 등을 집계해보면 얼마가 될지 모르나 분명 한인회 예산과 비교가 안 되는 몇 십 배가 될 것이다. 유독 한인회에 대해서만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맡기는 사람이 적고, 활발히 전개되는 모금운동도 없다. 이는 정도 차이는 있을 뿐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일 것이다. 왜 그런가를 알기 위해 해외 지역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심층적 조사, 연구를 해본다면 그 실태와 이유가 밝혀질 것이다. 고국 정부와 재외동포정책을 맡은 기관은 매년 전시행정에 그치는 해외 단체장들을 서울에 불러 하는 행사를 벌이는 돈을 아껴 이런 사업을 지원할 것을 제안한다

(3) 지식과 경험의 축적

위에서 전통이란 벽돌을 올바르게 쌓아가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 명제를 여기 한인회에 적용한다면 매 한인회는 한번에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게 아님을 알게 된다. 전임 한인회가 해온 좋은 일에 벽돌 하나나 둘을 잘 얹어 놓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임자 그간 하려고 한 사업과 시행 착오, 그리고 여러 자료 (보고서나 신문에 나온 기사)를 보관해 두어야 한다.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다. 세계 한인회들에 그런 자료가 모아져 있는지 궁금하다.

(3) 재원은 경쟁한다.

위에서 모금 방법을 논했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몇 푼 안 되는 예산이나마 요긴하게 쓰여지고 있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 한인회장은 밥을 잘 사야 하고, 사적 모임이나 관혼상제 행사에 금일봉을 지참하고 나타나야 해서 이게 돈 없이는 한인회장 못하는 이유라면 이 구습도 없어져야 한다.

공익자금의 원천이 될 커뮤니티의 재원을 분산시켜 고갈시키는 불요불급한 단체활동은 없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재원은 물로 말하면 물탱크나 풀에 비유할 수 있다. 그 물은 아껴 써야 한다.. 커뮤니티에서 나올 수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많은 단체가 생겨 이런 저런 덜 중요한 행사와 활동을 벌이느라 쥐어짜내고 쪼개 써버린다면 한인회에 흘러 들어올 돈은 없다. 이 또 하나의 ‘제로섬 게임’이다.

단체장을 하는 이른바 한인 지도자들은 비판에 앞서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이와 관련 새 한인회는 그런 대로 재정이 괜찮은 단체들의 협조를 받기 위한 협의체 구성을 한번 시도해 보면 어떨까?

(4) 무성한 지도자론

한국인은 유난히 지도자 자질 논의를 즐긴다. 지도자의 덕목 나열이다. 정치와 사회가 잘 못되면 의례 대통령에게 비난이 쏟아진다. 그런데 완전 독재 시절이라면 모르겠다. 국회, 언론, 시민단체, 시민 더 넓게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자유민주의 국가나 사회에서 지도자 혼자 사회를 바꿔나갈 수 없다. 그러므로 지도자론은 리더(leader)와 팔로워(follower)라는 총체적 틀 안에서 하는 분석이 필요하다. 지도자론과 함께 국민행태론이다.

해외 한인사회는 공권력이 없는데다가, 이미 언급한 대로 한국의 읍 수준도 안 되게 작은 게 대다수다. 그래도 일부 자율 또는 자치적 행정이 필요하다면 위 이론이 그대로 적용된다. 한인사회의 중요한 공기능인 교포신문에 대하여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질이 높든 낮든 신문은 그 사회의 얼굴이며 거울이다. “구성원 왈 “나는 관심 없다” 라면 그건 영영 화보나 휴지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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