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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의 동행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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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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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하 / 논설위원국장

   
 

"빈 밤을 오가는 마음, 어디로 가야만 하나. 어둠에 갈 곳 모르고 외로워 헤매는 미로."

인생이 그러한데, 그래서 동행이 필요하다. 외로워서인가, 누군가를 만나면 그가 같이 갈 동지이거니 바란다. 그러나 책에서, TV에서 등장하는 위인이나 유명인은 '원거리·정면'에 고정돼 있다. 그 물리적 위치와 거리는 그들을 더 능력있고, 멋있고, 신비롭게 한다. 동행이 와닿지 않는다.

배우자는 그런 면에서 동행인, 동지가 되기 힘들다. 매일 가까이서 보기 때문이다. 물리적 거리를 확보할 수 없어 온갖 추한 모습이 그대로 노출된다. 외면만이 아니다. 위선, 유치함, 간교함, 때론 사악함까지 드러날 수 있다. 가까우면 사랑할 수 있지만 존경하기 힘든 이유다.

이희호 여사가 남편 DJ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는 달랐다.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남편을 떠나 보내고 그해(2009년) 말 출간한 자서전 '동행'에서다. 책에는 김 전 대통령의 '짧은 거리·뒷면'이 담겨있다. "남편은 군것질을 좋아한다. 인절미를 비롯한 떡과 사탕 종류를 즐겨 먹는다. 여름에는 딱딱한 아이스바를 자주 먹는다. 특히 붕어빵을 아주 좋아했다."

수퍼 엘리트 여성운동가인 이희호는 3차례의 낙선으로 빈털터리에 애까지 둘 딸린 김대중과 결혼한 이유를 짧게 이야기했다. "잘 생겼잖아요." 왜 결혼했느냐는 질문에는 이런저런 소리 늘어놓는 법이 아니다. "예쁘잖아요" 못지 않게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한마디였고 배려였다.

1962년 결혼 직후 남편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대선 후보로 나선 남편 찬조연설에서 "만약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습니다"라고 외쳤다. 1972년 미국에서 한국의 독재 상황을 알리던 남편에게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편지를 썼다. 옥중의 남편에겐 "무엇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라고 했다. 추위를 잘 타는 남편이 불을 때지 않는 교도소에 있는데, 자신만 따뜻하게 지낼 수 없다며 냉방에 꿇어 엎드려 기도를 하다 정신을 잃기도 했다. 2년 6개월간 수감 중인 남편에게 보낸 책만 600권에 달했다. 책을 미리 구해 읽고 중요한 대목에 마크를 했다. 면회 가서 기도를 하면 '하나님 내 남편 살려주세요'가 아니고 '하나님 뜻대로 하십시오'였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보낸 편지에는 "당신의 생이 평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욱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라며 "당신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르게 살기 위해 발버둥쳤습니다. 그래서 받은 것이 고난의 상입니다"라고 썼다.

"남편과 함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한길을 걸었다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랐던 이 여사는 대한민국이 실제적 민주화로 첫 발을 내디딘 6·10 민주항쟁의 날 영면했다. 14일 이 여사는 평생 동지이자 동행인 DJ 곁으로 떠난다.

동행이라는 마차의 두 바퀴는 사랑과 존경이다. 사랑은 따라가는 것이고 존경은 이끌어주는 것이다. 사랑은 이끌어주는 것이고 존경은 따라가는 것이다.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동행의 바탕은 기쁨도 영광도 아니다. '함께 울어줄 사람', 고난이다.

김 전 대통령은 세상을 뜨던 그해 2월 7일 일기에 글을 남겼다.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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