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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희망을 꿈꾸며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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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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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희 / 작가

   
 

일본에 다녀왔다.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우리보다 잘사는 일본을 볼라치면 부러움과 함께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를 통해 부를 이루고 그들의 문화를 꽃피웠듯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쳐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려 할 때 서구 열강들은 자신들의 잇속을 따져가며 일본에 동조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자신은 친일파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미국은 필리핀이 필요했고,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암묵적 합의가 일본의 의도를 용인한 것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청나라, 러시아, 일본 세 나라 간의 전쟁인데도 전장은 조선 땅이었다. 애꿎은 조선인만 희생되고 국토는 폐허로 변했다. 러·일전쟁을 취재했던 미국 종군기자 잭 런던은 당시의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전쟁이라고 이야기했다. 조정의 관리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백성들은 낮에는 산속에 숨어 있다 밤이면 내려와 필요한 것을 챙겨 다시 산으로 숨는다며 이 전쟁의 부조리함에 대해 역설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일본이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조선은 일본의 생명수 역할을 해왔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부의 국고가 바닥났을 때, 청·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청나라로부터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받아냈다. 당시 청나라의 일 년 예산의 2.7배에 해당되는 금액과 함께 요동반도까지 넘겨받았으니 이문이 큰 장사였던 셈이다. 그걸로 일본은 비어 있는 곳간을 채우고 러·일전쟁에 필요한 군함을 구축하는 등 군국주의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 후 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갑자기 신흥 부자국가로 도약했다. 전쟁에 참가한 영국 등에 군인들이 입을 내복과 필요한 군수물자를 수출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는 한국인의 피와 눈물이 섞여 있었고, 한국에서 실어간 자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디 그뿐일까.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무조건 항복으로 패망했을 때 한국에서 6·25전쟁이 일어났고, 일본이 전쟁 물자를 대면서 또다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일본이 오늘날 세계 경제대국으로 우뚝 일어설 수 있었던 데는 국민의 근면성과 탄탄한 기초학문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조선의 덕도 한몫 단단히 보았다. 그런 탓에 오늘의 한·일 양국의 갈등이 더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정세는 100년 전의 상황과 비슷하다. 그러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함에도 그저 갈등과 분노만이 보일 뿐이다. 국가가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개인의 삶도 나아지는 법. 반대로 개인의 삶이 아무리 풍요롭다 하더라도 국가가 불안하면 개인의 안전은 보장받기 힘들다. 그러니 국익과 공익을 위해 조금은 자신의 것도 나눌 줄 아는 지혜와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지금 한마음으로 국가의 희망을 꿈꾸고 궁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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