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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디아스포라
코리아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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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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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수 / 칼럼니스트

   
 

우리가 이민 온 후 2000년대 들어 한국사회도 급속히 다민족화, 다문화화라는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 국제결혼에 의한 이주자로 발생한 현상이지만 우리가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겪었던 다민족, 다문화 사회에의 진입을 한국인들은 나라 안에서 서서히 겪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자기의 거주 국내에서 받아들이는 다 민족, 다 문화는 서양문화권이라는 뉴질랜드에 소수 민족으로 이주해와 겪게 되는 문화충격과는 현저히 다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구촌 시대라는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어떻게 형성해 나가야 될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다.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은 민족 분산 또는 민족 이산으로 번역 할 수 있는데 같은 민족 성원들이 세계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는 과정뿐만 아니라 분산한 동족들과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와 공동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디아스포라는 그리스 어 ‘dia’ (영어로는 ‘over’, 우리말로는 ‘ㅡ를 넘어’)와 동사 ‘spero’ (영어로 ‘to sow’), 우리말로는 ‘뿌리다’)에서 유래되었다. 유대인들의 방랑에 대한 대명사가 되기도 한 이 단어는 근대 이후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과 집단의 이주에 대한 것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재외 동포를 말할 수 있는데 한반도가 처한 특수한 상황에 따라서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지구상의 180여개 국가에 740여 만의 재외 동포가 한반도 외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는 남북한 전체 인구의 약 10%에 이른다. 이는 인구대비 가장 디아스포라가 많은 유대인과 그다음 아일랜드인, 세 번째 많은 이태리인에 이어 4번째 규모가 많은 민족이 되었다. 이주 국가 수로는 단연 1위이다. 실로 지구상에 해가지지 않은 민족이 된 것이다.

이주 시기별로 조선 말기 1860년대부터 1910년까지, 1910년에서 1945년까지의 일제시대, 조국 분단 후 남한과 북한에서 이주한 동포 등 다양하다. 한국정부가 정착 이민제도를 추진한 1962년 이후에는 새로운 기회의 땅을 찾아 미국, 서독, 남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으로 이민 물결이 이어졌다. 이민 역사가 오래된 미국의 경우 이민 시기에 따라 구포(舊胞), 중포(中胞), 신포(新胞)로 불리어 지고 있다. 그리고 8.15 광복 전에 공산권 나라에 이주한 동포와 비 공산권에 이주한 동포들을 분류하는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공산권 나라들과는 1990년 대 이후 한국과 국교가 수립되고 비즈니스, 또는 유학차 한국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기에 현지에서 같은 민족이지만 단일한 동포 사회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중국한인회라고하면 한국 출신 동포로 구성되어 있고 독립국가연합의 한인회들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출신이 아닌 경우 한국 내에서의 법적 지위도 다양하게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한국=Korea 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조선=Korea 라는 등식을 가지고 있기에 외국인들이 Korea를 인식하는데 혼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지인들이 ‘Where are you from?’ 이라고 물을 때 우리는 당연히 ‘Korea’ 라고 대답하지만 그들은 다시 묻는다, ‘South or North?’ 라고. 정체성(Identity)이 확립된 성인들은 문제가 없지만 어린 차세대들에겐 정체성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일이다. 공식 명칭은 남한 정부의 ‘대한한국’은 ‘The Republic of Korea(ROK)’이고 북한 정부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DPRK)’ 이다. 조선 말기부터 러시아의 연해주로 이주해서 살다가 1937년 스탈린 정부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추방된 동포들을 우리는 고려인이라 부르고 있지만 영어로는 Korean 이다. 연변조선족이라고 부르고 있는 그들도 Korean 이다.

우리 조상들의 디아스포라들은 일부는 굶주림을 피해 유랑 길을 택하거나 일제에 의해 쫓겨나거나 강제로 끌려왔으며, 일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망명길을 택했고 어떤 경우는 잘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에 사기를 당해 이역만리에 팔려 왔다. 제 발로 떠났든 쫓겨났든 해방 전 이주자들의 타향살이는 고달팠다. 물론 1960년대 이후 신 이민으로 서독광부/간호사, 남미로의 농업이민, 미국으로의 기술이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한국이 경제 부국이 되기 시작할 무렵 1990년대 이후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로 이주해 온 동포들은 좀 더 나은 편이었다.

뉴질랜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당면한 현실과 앞으로의 과제는 어떤가? 뉴질랜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성격은 매우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다. 코리안의 뉴질랜드로의 이민은 1988년부터로 잡아도 30여 년에 불과하다. 그리고 뉴질랜드 정부의 필요에 의해 투자 이민 또는 일반 이민으로 온 남한 출신 동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지구촌 시대에 좀 더 나은 생활을 개척해보고 후세들에게 더 넓은 생활 터전을 마련해주겠다고 이민 길을 택했다. 30년의 세월 동안 1세대는 은퇴 나이가 되었고 1.5세대는 사회에 진출했으며 2세대들도 이미 성장해 부모의 곁을 떠나 독립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뉴질랜드 교육을 받았고 뉴질랜드 문화, 풍습에 익숙해져 있다. 영어도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고 있다. 학업, 예체능, 기술면에서 이곳 키위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주류인 유럽 계 키위들이 백인 사회에 편입시켜주고 있는가? 아무리 문화적으로 동화되어도 피부 색깔, 골격, 눈동자 색깔 등은 동화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Where are you from?’ 이라는 질문을 받을 때 철학자가 아니더라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라는 자책을 하게 되는 것이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지 그래’ 라는 말을 들을 때는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이민 1세대들은 자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을 심어주는 일이 시급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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