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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10년의 회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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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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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 / 논설위원

   
 

일본은 10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2009년 자민당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쥔 민주당 정권은 동아시아 중시 노선을 들고 나왔다. 요즘도 가끔씩 한국을 찾는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한·중·일과 아세안, 인도, 호주, 뉴질랜드가 참가하는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내놨다. 간 나오토 총리는 2010년 한일병합 100년 사죄담화를 발표했다. “한국인들 뜻에 반해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냈다. (중략)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심정을 표명한다.”

백여년전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부르짖으며 동아시아를 뛰쳐나갔던 일본이 이웃나라들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전후(戰後)질서가 균열하던 1990년대부터였다. 미·소냉전이 해체되고, ‘잠자던 거인’ 중국이 급부상하는 정세변화는 안보를 미국에 맡긴 채 경제에 매진하던 호시절의 종언을 뜻했다. 일본 경제를 휘감던 거품도 꺼졌다. 일본이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내놓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평양을 방문한 것은 탈냉전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안간힘이었다. 민주당 정권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은 그 최대치였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의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공약은 미국의 역린(逆鱗)을 건드려 좌초했고, 2010년 센카쿠 열도 해역에서 벌어진 중국 어선과 일본 경비정의 충돌 사태 이후 동아시아 중시 노선은 파탄했다. 중국의 기세에 놀라 한국의 옷소매를 부여잡았지만 한국은 뿌리쳤다. 미국 역사학자 존 다우어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 대해 “아시아에서 냉전전략의 일부로 영토 분쟁의 소지들을 조약 곳곳에 심어놨다”고 했는데 그 덫이 정확히 일본을 겨냥한 셈이다. 민주당의 서투른 국정운영에 일본 국민은 리버럴(진보)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배외주의와 반지성주의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허울만 남은 전후체제를 물리적으로 해체해 버렸다. 아베 2기 체제는 일본에 만연한 이러한 열패감을 빨아들여 부활한 것이다.

일본이 좌충우돌하던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의 대응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달성하면서 일본에 기를 펴게 됐지만, 그에 걸맞게 관계를 재구축하고 대일외교의 원칙과 관행을 가다듬는 노력에는 소홀했다. 보수·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일본에 협력적인 태도가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는 타산이 건전한 관계설정 노력을 방해하고, 풀어야 할 문제를 어정쩡하게 방치토록 했다. 박정희의 친일경력 때문에 선거에서 곤욕을 치른 박근혜는 일본을 3년간 피해다닌 끝에 한·일 위안부 졸속합의라는 덜컥수를 뒀다. 이명박의 2012년 독도 방문과 일왕 비판발언은 무신경·무원칙의 소산이다. 가만 놔둬도 한국땅인 독도가 졸지에 분쟁수역이 돼버렸고, 동일본대지진 때 위로성금까지 보낼 정도로 호조였던 양국관계에 생채기가 났다. 일본의 한국전문가는 “최근 한·일관계를 보면 한국이 일본을 무시하는 차원을 넘어 무신경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보복 사태는 길게 보면 동아시아 전후 질서의 후과(後果)다. 한국은 해방을, 일본은 민주주의 체제를 제손으로 이루지 못했다. 남의 손으로 이뤄진 해방은 친일청산을 불가능하게 했으며, 그 회한과 정념(情念)이 일본에 과도하게 투사됐다. 패전국 일본은 미 점령군의 편의에 따라 천황제가 유지됐고, 과거청산과 민주개혁이 중도에 그친 것이 우경화의 토양이 됐다. 강경보수 아베 정권의 출현은 당시부터 예비된 셈이다. 민주당의 동아시아 노선을 뒤집어 친미노선으로 회귀한 아베 정권은 미국의 위임을 얻어 동아시아 질서를 주도하려 든다. 그 아베 정권이 지금 한국에 싸움을 걸어온 것이다.

수출규제에 독가스 전용 가능성까지 들먹이는 아베 정권의 적반하장이 괘씸하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할 수는 없다. 이웃이 싫다고 이사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대일외교를 좀 더 정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건전한 일본 시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고, 도덕적 우위도 지킬 수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도 일본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대미·대중외교에 들인 에너지의 절반이라도 쏟았더라면 한·일관계가 이토록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야당 대변인 시절 한·일국교 정상화에 찬성론을 폈다. 반대투쟁이 격렬하던 당시 그에게 ‘사쿠라’ ‘매국노’ 비난이 쏟아졌지만, 무조건 반대는 국익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소신을 지켰다. 그가 강조하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지금의 대일외교에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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