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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조선 '고려된장술' 고고성
이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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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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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춘 / 연변오덕된장술유한회사 회장]

   
 

올해는 오덕된장술이 10돌을 맞는 해이다.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조선평양에서 ‘고려된장술’이 바야흐로 세상만방을 향해 우렁찬 고고성을 울린다.

새롭게 깨닫는 선물의 의미

저는 지난 5월 중순, 조선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위원장께 조선에서 생산 계획 중인 ‘고려된장술’을 선물로 올리고자 평양을 방문했다. 조선의 원료와 오덕된장술 양조기술을 융합시켜 빚어내는 된장술을 세계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조선청자기에 담아 그 첫 술병을 올리기 위하여서였다.

저를 안내하는 조선동지들은 술을 선물로 올리려는 동기와 술에 담긴 사연을 편지에 담아서 함께 올리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라며 저더러 직접 편지를 써보라는 것이었다.(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일개 ‘재외동포 기업인’으로써 어찌 한 나라의 수령님께 편지를 쓰랴?!) 그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였고 또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선에서는 작은 선물이라도 그 어떤 어지러움없이 오로지 깨끗한 마음,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면 받아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선물은 어느 개인의 소유가 되는 것이 아닌 나라의 보물로 보관된다는 것, 그리고 그 선물의 행위는 곧 애국, 애족의 정신적 문화 에너지로 승화되어 나가게 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고상하고 차원이 높은 선물의식에 경이로움이 저절로 나왔다. 그에 비해 경제적인 추구에 무게 중심을 실은 저의 마음이 괜히 가소로워졌다.

같은 일이지만 성스러운 마음가짐에 따라 사물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높은 정신적 소양을 갖추자면 한참이나 멀었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하기도 했다.

귀국 후 저의 일상은 쉴 틈이 없었다. 해마다 치르는 ‘된장의 날’(6월 9일) 행사를 준비하느라 바빠도 김정은 위원장님께 정성껏 편지를 올려야겠다는 다짐은 저의 사유공간에서 떠나지 않았다.

6월 26일, 나는 몇번이고 또박또박 수정을 거친 편지를 소지하고 북경을 거쳐 평양행 중국국제항공 CA121편에 몸을 실었다. 과연 이번 걸음은 어떤 좋은 결실로 이어질까 하는 한껏 부푼 마음을 지니고…

통일된장술을 만들자

오후 4시 20분, 비행기는 무사히 평양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놀랍게도 공항에는 지난번 방문차 나를 접견해주시던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참사이신 한정철 동지께서 만수대창작사의 진석 과장 동지와 함께 친히 마중하러 나와 주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나를 벤츠 승용차로 안내하였다. 차에 앉자마자 한정철 참사동지는 저에게 “선생님의 선물은 이미 원수님께 올려 보냈다.”고 하면서 이제 곧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는 감격해서 어안이 벙벙한 저에게 “된장술은 이미 나라적인 관심사로 되였다”고 하면서 사실의 자초지종을 말하는 것이었다. 된장술을 평양에서 합작하여 생산하겠다는 저의 의사를 상급기관에 보고하자 상급에서는 이미 된장술에 관한 내용을 자기들보다 더욱 자세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된장술의 발명과정에 대하여서도 더 잘 알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상급에서는 진정으로 된장술을 우리 조국에 와서 생산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면, 이 회장의 뜻을 이루어주라고 하면서 장차 통일술로 만들어가기로 했다는 결정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된장술을 ‘고려된장술’이라 명명하고 조국의 국주와 명주만 전문 생산하는 공장인 대동강식료공장에서 생산하도록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이로써 된장술은 일약 조선의 국주 대열에 나란히 서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이것은 조국의 식품산업발전사에 길이 남겨질 기적같은 일이라고 하면서 내일 대동강식료공장을 직접 찾아가서 향후 세부적인 사업계획을 작성해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일이 이토록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리라고는 나도 그렇거니와 조선 측의 동지들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넘어야 할 아리랑고개를 또 한 번 넘은 듯 한 느낌이었다. 호텔에 도착하여 김정은 위원장님께 드리는 편지를 정중하게 건네주는 순간 나는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살아있는 뜨거움을 느꼈다. 아! 드디어 오래된 꿈이 현실로 변하는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같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남북 경제문화교류의 물꼬가 트이면 남북의 시장을 개척하여 함께 나누는 통일술은 물론 그 브랜드시너지효과로 세계시장을 종횡하게 될 것이요, 또한 그 덕분에 우리 연변의 자그마한 의란진 련화동촌은 세계 최대의 된장술원액 공급기지로 부상하게 될 것이니 자연히 심장의 박동이 더욱 쿵닥거리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평양에서 평생 뜻 깊은 생일을 보내다

평양에서 와이파이 요금을 지불하면 위챗이 가능하다. 아침에 일어나 위챗을 열어보니 숱한 축하인사가 들어왔다. 오! 나의 생일날이었던 것이다. 일부러 생일날을 맞춰온 것은 아니지만 생일을 평양에서 지내리라고는 정말로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을 보니 5시였다. 내가 이 세상과 만나 두 주먹으로 고고성을 울리던 시간이었다.

음력기준으로 55년 5월 25일 새벽 5시에 태어났으니 나의 어머니는 내가 5개의 5자를 달고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니 다섯 손가락을 움켜쥐면 주먹이고, 주먹을 펴면 다 퍼주는 운이니, 그래도 남에게 주면서 사는 인생이 편안한 운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시였다.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머니는 평양에서 나를 임신하여 6개월 만삭이 되어서 중국에 나가있는 나의 아버지를 찾아 막무가내로 중국 흑룡강성 해림으로 떠났었다고 했다. 어찌 보면 나의 혈맥에 조선의 DNA가 한조각이나마 흐르고 있는 셈인 것이다. 나는 호텔방 창문 커튼을 펼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희붐이 밝아오는 동녘하늘에 진붉은 물결이 여울지고 있었다. 뜨거운 아침 해를 밀어 올리는 것은 살아있는 밤의 침묵이었을 것이다. 어둠을 뚫고 곧 해가 솟아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이 평양의 굉장한 장면을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찐하게 사진 찍어 두었다.

운이 좋았다! 호텔의 뷔페식 조찬에 마침 미역국이 있었다. 혼자 흥미롭게 생일날 아침을 먹는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무척 입맛이 돌았다. 그런데다가 워낙 입이 ‘하수구’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무엇이든 없어서 못 먹는 식성인데다 기분까지 업 되었으니 밥을 두 그릇이나 뚝딱 먹었다.

절묘함이 따라줘 참으로 좋은 날! 아침에 한정철 참사동지께서 친히 나오셔서 나를 안내하여 대동강식료공장으로 업무회의를 하러 떠났다. 대동강식료공장은 김정일 장군이 생전에 친히 배려하시어 2009년 9월 29일에 세워준 나라의 국주와 명주를 전문 생산하는 기업체이다. 운명을 같이 하게 될 것이라는 신의 뜻이었을까?! 된장술 역시 2009년 9월 29일에 탄생하게 되여 올해 마침 10주년이 된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대동강식료공장의 조형철 지배인과 조선술협회 최현실 회장이 이미 공장마당에 마중나와 있었다. 두번째 만남이라 더욱 친근했으며 옛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연변에서 보내온 원료술 샘플을 가지고 이미 자기들의 맛과 기호에 맞추어 ‘고려된장술’ 신제품을 만들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맛과 향이 연변에서 생산되는 된장술과는 좀 다른 면이 있지만 이곳 사람들의 입맛과 신세대가 지향하는 향에는 아주 가까웠다. 어찌 보면 통일술 시장으로서는 더욱 완벽함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모두가 엄지를 내밀었다. 역시 절묘함이라 하겠다. 오덕된장술 탄생 10주년의 해인 나의 생일날에 ‘고려된장술’이 통일된장술의 운명을 안고 합작 양측의 공식인정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주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사업계획을 검토하고 상호 합의에 이르렀다.

당연히 저녁은 내가 한턱 쏘기로 했다. 마침 조선 라선특별구 흑룡강성 대표처의 오기호 대표도 평양에 일 보러 왔다가 합류하였으니 분위기는 더욱 화끈하였다. 여러 지인들의 축복 속에서 탯줄을 심은 고향인 평양에서 추억을 남길만한 생일파티를 보냈다.

요즘은 문화시대,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한다. 생생하고 재밌는 이야기, 감동적이고 뜻이 있는 이야기가 짙을수록 그 사물의 의미와 그 속에 담긴 매력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고려된장술이 통일된장술로 발전되어 나아가는 과정에 더욱 즐겁고 건강한 이야기가 분수령처럼 솟아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년 7월 8일 새벽,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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