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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일본’과 양심적 일본인, 영화 ‘주전장’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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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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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 논설위원

“당신 누구예요. 뭣 하는 사람이에요. 왜 우릴 두 번 죽일라카는 거예요.”

   
 

영화 <주전장(主戰場)>은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스러운 삶을 강요당했던 이용수 할머니(91)의 호통으로 시작한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설명하러 온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을 향해 이용수 할머니는 울분을 쏟아낸다. “(협상)하기 전에 먼저 피해자를 만나야 될 것 아니에요. 이렇게 한다고, 알려주어야 할 것 아니에요. 모른다고, 나이 많아서 모른다고, 무시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지금 일본은 아베가 사죄했다, 사죄하고 전부 다 배상했다, 이렇게 보도해 가지고 외국까지 다 나가 있어요. 뭐 하는 거예요. 어데 외교통상부예요. 일본 외교부예요?”

<주전장>은 일본계 미국인 감독 미키 데자키(36)가 제작한 역사기록물이다. 일본 내 역사부정론자, 양심적 역사가들의 인터뷰와 실제 일어난 일들을 토대로 일본군 성노예 실체와 그로 인해 유린당한 식민지 여성의 인권을 파헤치고, ‘아베의 일본 우익’도 조명한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일본의 공격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위자료 청구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가 계기였다. 대법원 판결 요지는 일본이 불법적 한반도 강제점령을 인정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강제노역도 인정하지 않았고, 배상도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에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 내용을 들어 배상 문제는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협정문 어디에서 ‘강제’라는 단어는 없다. 일본의 한반도 강제점령은 열강의 묵인하에 이뤄진 부정할 수는 없는 역사다. 일본은 위력을 동원하거나(한일의정서), 어새(御璽)·서명이 없거나, 매국노에 의한 불법 조약·협정(을사늑약·한일병합)을 통해 한반도를 강제 통치했다. 진실이 이런데도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는 하면서도 “한국은 어리석은 국가” “조선 지배는 조선을 발전시키려 한 것” 등 망언들을 쏟아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고이즈미 준이치, 아베 신조 총리 등은 대놓고 태평양전쟁 A급 전범자들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도 했다.

<주전장> 후반부에선 아베를 중심으로 한 일본 우익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아베 총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다. 영화는 그가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일왕 중심의 입헌군주제인 ‘메이지 헌법 체제로의 복귀 운동’을 주도함을 증명해 나간다. 고바야시 세쓰 게이오대 교수는 “정말 무섭다. 그들은 전쟁 전의 일본을 신봉한다. 인권 감각은 없다. 그들은 헌법 개정에 곧 착수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1997년 창설된 일본회의다. 일본 내각의 대다수가 이 조직의 회원이라고 한다. 일본회의가 일본의 정치·행정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회의 의원연맹 도쿄본부장 가세 히데아키의 말에서 일본회의의 인식은 그대로 드러낸다. “중국은 붕괴될 것이고 한국은 일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순간부터 한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친일적인 나라가 된다. 한국은 정말 귀여운 나라다.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말이다.”

2019년 일본과 <주전장> 속 일본은 다 같은 ‘아베의 일본’이다. 그들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100여년 전 일본으로 돌아가려 하고 그 지렛대로 또 한국을 삼은 것이다. 그런 일본을 상대로 완전한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용수 할머니의 호통 속에 하나의 실마리가 있다. 국민이 다친 국가 간 분쟁에서 진실의 규명, 그리고 진심을 담은 사죄와 보상·배상이 없는 한 그 어떤 협정이나 합의도 일시적 봉합에 그칠 뿐이라는 것 말이다. 후세에까지 아픈 역사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일 양국은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역사 청산작업을 해야 한다.

희망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최근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고 사죄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일본 국민의 공통 인식”이라며 경제보복 철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영화 <주전장>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도 고바야시 교수, 와타나베 미나 액티브 뮤지엄 관장, 도쓰카 에쓰로 인권변호사 등 양심적 일본인들의 증언 때문이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가 열리는 나고야에 전시되는 것 역시 일본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런 움직임이 모아지면 아베의 일본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한·일관계의 정립을 위해서라도 아직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미키 감독은 영화 말미에 위안부 지지자들에게 당부한다. “최악의 이야기, 과장에 초점을 맞추지 말아 달라. 일본 우익들의 주장에 박차를 가할 뿐이며 일본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도 박탈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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