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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의 힘이 필요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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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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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홍욱 / 정치·국제에디터

한·일관계가 빙하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소재를 1차 타깃으로 삼았고, 한 달 뒤에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한국을 예고대로 뺐다. 한국은 맞대응을 선언했다. 양측의 충돌, 피해는 점점 가시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갈등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 어디까지 치달을지 알 수가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런 상황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올 초부터 ‘한국을 아프게 할’ 구체적 실행 계획을 짰고, 그 시나리오대로 일본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의 선도자처럼 굴더니 통상을 보복수단으로 삼는 것은 언행불일치 아니냐는 비판, 가뜩이나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에 괜한 소란을 일으키냐는 국제사회의 우려에는 귀를 닫았다. 일본의 조치는 한국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 절대 아니고, 문제가 있는 한국의 수출관리제도 때문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때그때 바뀌는 말은 장기간 준비치고는 논리 구조가 어설프다는 것을 드러낸다. 누가 뭐라건 한국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겠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한·일 갈등 상황은 빨리 수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 판결을 구실로 시작된 보복조치는 경제·무역 문제로 가시화했다. 민간 분야 교류도 줄어들고 있다. 안보 분야로 번질 조짐이다. 그동안 양국이 과거사와 독도 문제로 숱하게 얼굴을 붉혔지만, 한·일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정경분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근간이 허물어지니, 양국관계는 파국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최측근들이 “한국과는 신뢰가 깨졌다”고 하는 말은 지금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 책임을 온전히 한국에 묻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럼에도 신뢰가 없다고 대화를 못하는 건 아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대화의 필요성은 커진다. 문제를 풀 생각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것이다. 관건은 지금 서로가 그럴 의지가 있냐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비판하면서도 “우리 정부는 지금도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일본이 한국으로선 납득 불가한 부당한 조치를 거둬들이면 대화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당장 일본이 반겨줄 리는 만무해 보인다. 외무성 부대신이 TV에 나와 문 대통령의 ‘적반하장’ 표현을 문제 삼으며 “품위 없는 말을 쓰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무례하다”고 막말을 할 정도다.

악화일로인 상황은 양국의 미래에 불안감을 던진다. 젊은 세대의 반일, 반한 감정이 가슴 깊숙이 새겨지면 다음 세대에서의 한·일관계도 힘겨워진다. 한·일관계사에서 2019년이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는 지금부터 양국이 하는 일에 달려 있다. 반전의 계기가 필요하다. 현재로선 양국 정부도, 국민도 너무 격앙돼 머리 맞대고 진지하게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다. 아베 총리의 구상이 한국과의 마찰을 유발해 숙원인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개헌을 실현하고, 중국의 부상으로 쪼그라든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라면 한·일 충돌은 장기화·만성화된다.

한국은 미국을 쳐다본다. 미국의 주요 동맹 간 갈등이 미국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동북아 안보 지형 관리에 파장이 미치게 된다. 한국의 대응 카드로 거론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도 그러하다.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한·미·일을 삼각끈으로 묶기 위해 미국이 강하게 원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GSOMIA에 대해선 강한 우려의 메시지를 던지는 미국 입장이 분명치 않다. 한·일 사이의 일이라고 거리를 뒀던 미국은 양국에 ‘현상유지 협정’으로 중재를 시도하는 듯하더니, 일본이 이를 무시하고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결정한 이후에는 ‘중재자’가 아니라 ‘대화 촉진자’ 역할을 할 뜻을 내비쳤다. 미국 국무부는 “한·일이 창의적 해법을 찾기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계속 관여는 하지만 해결책을 모색할 당사자는 한·일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미국의 적극성에 기대기보단 한국이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일본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제를 재편하려 한다면 일본의 진실한 사과와 반성이 없는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해결을 장담할 수도 없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 판결에 응하지 않는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강제매각으로 현금화하는 시점이 또 한번의 중대 분수령이 될 터이다. 이대로 가면 예상 시기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한국 외교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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