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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 일본에 지지않겠다" 큰소리 쳤는데.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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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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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 논설고문

   
 

역사상 국민의 분발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명연설은 2차 대전 당시 영국의 처칠이 독일 히틀러의 침공을 기어이 분쇄하고 말겠다는 1940년 6월 4일 국민 담화를 꼽는다.

"우리는 절대로 히틀러에게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갈 것이다. 하늘에서, 해안에서, 들판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언덕에서도 싸울 것이다. 설사 영국이 전부 점령당해도 바다 위 해군 함대에서 히틀러의 저주가 제거될 때까지 불굴의 정신으로 싸울 것이다.
" 연설이라기보다 차라리 최면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일본이 2019년 8월 2일 수출심사우대국(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각의 결의를 단행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 국무회의를 열고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다. 경제 보복은 가해자의 적반하장이다. 세계경제에 민폐를 끼치는 이기적인 행위다. 일본을 뛰어넘겠다"고 집념어린 발언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의 스피킹을 듣는 순간 나는 처칠의 연설을 떠올렸다. 두 국가 지도자 연설 가운데 어느 쪽 톤(tone)이 더 강한가.

처칠은 불구대천의 적에 대한 분노였던 반면 한일은 전통 우호국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 대통령이 일본 총리를 향하여 "내가 너를 넘겠다"고 하는 발언은 결코 약하다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 대통령 담화 이후 한국도 즉시 일본을 화이트리스트 명단에서 빼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섰다.

그러자 한국 주가는 2000선, 환율은 달러당 1200원 선이 와해돼 버렸고 일본 증시도 2%급락했다. 양국에서 날아간 돈만 아마 100조원도 넘을 것이다.

바로 이 순간 미국의 트럼프는 중국에 3000억달러 수입 물품에 10% 추가 관세를 올린다고 선포했다.

독일의 채권 금리는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로 내려앉았다. 전 세계 경제 기류에 전운이 자욱하다.

한국은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얻어맞은 격이다. 더 무서운 일은 과거 같으면 한일이 싸우면 미국이 화해시켰는데 트럼프도 시진핑과 싸우느라 제 코가 석 자여서 이제 중재자도 없다.

한일 간 싸움은 분명 문재인-아베 양국 국가 지도자의 정면 충돌이 가장 큰 원인이다.

두 지도자의 감정 대립이 격화된 데는 `잘나갈 때 조심하라`는 가장 쉬운 격언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2015년 외교청서에서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에서 한국을 빼버려 `함께하지 못할 나라`로 먼저 규정했다.

문재인-아베의 첫 상면은 2017년 9월 유엔총회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였다. 당시 취임 4개월 후 문 대통령 지지율은 80%를 넘나들어 기세등등했다.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한미는 동맹인데 한일 간 사이는 무엇이냐"고 묻자 문 대통령은 "한미는 동맹이지만 한일은 동맹이 아니다"고 아베의 면전에서 발언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2월 9일 평창 동계올림픽에 어렵게 찾아온 아베와 약식 정상회담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아베는 "북한이 비핵화를 진전시키지 않으면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그것은 주권의 문제이며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내정 간섭"이라고 쏘아 붙였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문 대통령은 아베가 공들였던 위안부재단 해체를 결정했고 그러고 나서 대법원은 강제징용 판결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혔다.

이제 전 세계가 한일 간 싸움을 알아 버렸고 누구에게 귀책 사유가 있는지 판정을 내릴 것이다.

그 축은 대법원 징용배상 판결에서 시작한다. 한국은 일본이 역사 문제를 무역 문제에 결부시켰으므로 이번 사태의 책임자라고 한다.

일본은 대법원 판결이 난게 문재인 정부의 사법부 개편 이후로 의심하며 판결 후 중재 요청 등을 한국이 거절했으므로 문재인 정부가 적반하장이라고 주장한다. 지난번 한국 국회의원들이 도쿄에 갔을 때는 "제3국과 중재위 구성을 받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게 일본 측 의견이었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이 전면전을 벌이는 상황으로 언제까지 갈 순 없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국가 지도자의 책임이고 의무다.

한 국가의 운명은 주어진 조건과 선택이 합쳐진 결과다. 지도자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면 국가는 실패하고 현명한 선택을 하면 국가는 성공한다.

지도자의 도덕성은 개인의 도덕성과는 달라야 한다. 국가 지도자는 결과가 성공해야만 도덕적일 뿐이다.

냉정하게 헤아려 보면 `일본을 넘어서겠다`는 한국의 결의는 일본이나 국제사회에는 천둥소리로 들릴 것이다.

중국이 2049년 세계 1등을 하겠다는 제19차 전당대회 결의 때문에 미·중 무역전쟁으로 저 난리가 났는데 식민 지배의 감정이 켜켜이 쌓인 한국이 일본을 넘겠다는 것은 그보다 더 거친 언사다. 한일 간 투키디데스 함정의 선언으로 들릴 수 있다.

투키디데스는 세상을 움직이는 동기는 두려움, 이기심, 명예 등 3대 요소이며 특히 이 가운데 이기심이 국가 간에는 가장 큰 동인이라고 갈파했다.

일본은 미국의 중재도 듣지 않고, 자신의 이기심에 따라 1차, 2차 보복을 해나갈 뿐 이제 더 이상 아베의 발언도 들려오지 않는다.

외무 차관이 문 대통령이 무례한 결정이라며 모욕적인 발언을 내뱉는가 하면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빼도 하나도 아프지 않다는 식이다.

문재인과 아베 양국 정상은 두 개의 닮은꼴이 있다. 첫째, 측근의 말도 잘 듣지 않는 `나 홀로 결정`을 독자적으로 밀어붙여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는 점이다.

둘째, 대중의 의심을 받는 측면이 있는 지도자라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측근 양정철이 한일 싸움 프레임으로 총선을 치르면 유리하다고 한 데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것으로 야당은 의심한다. 아베에 대한 의심은 `한국 경제가 따라 오니 앞길을 가로막고 동북아 정세판을 흔들어 재미를 보려 한다`는 음모론이다.

이런 게 사실인지 확인은 안 되지만, 맞다면 역사의 거울로 비출 때 훌륭한 지도자의 조건에는 안 맞는 정신 자세들이다.

정치 지도자는 국민과 민족을 포용해 담고 있는 국가를 부흥시키는 게 첫 번째 임무여야 한다. 그러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번영을 추구하는 국가끼리 협력을 추구해 협력자와 동맹을 구축해 국민과 국가의 미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국가 지도자는 그런 의미에서 `불안한 선견지명`을 가질 것을 덕목으로 삼았다. 불안한 선견지명이 무엇인가.

막중한 국가 운명을 책임지는 지도자는 근거 없는 낙관보다는 다소의 비관을 염두에 두고 앞날을 예측해 정책을 결정하라는 뜻이다.

처칠을 훌륭한 선견지명의 리더로 역사가 평가하는 이유는 기만을 꿰뚫어본 그의 혜안 때문이다.

그는 히틀러에게서 체임벌린이 속아넘어가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스탈린보다는 히틀러가 더 위험한 인물임을 간파했다. 1차 대전 때는 볼셰비키를 타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처칠은 히틀러의 출현에는 기꺼이 스탈린과 동맹한 것이다.

   
▲ 김대중 오부치 공동선언

한때 적이었던 국가가 친구가 되고 그 반대도 되는 장면은 이란-이라크 전쟁과 그 이후 과정에서 전 세계가 보았다. 아베 총리도 독일 브란트 총리가 피해를 입힌 폴랜드 희생자 묘지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린 역사를 따라서 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김대중-오부치 간 화해는 한일 정상이 잊어선 안 되는 덕목이었다.

피터 자이한은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미국의 고립주의가 심화돼 미국이 태평양에서 철수하면 중국 천하가 될 터인데, 그때 한국과 일본이 동맹하여 대처하면 중국의 행동이 제약을 받겠지만 한일 간 감정싸움이 심하면 두 나라 모두 핀란드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일은 힘을 합치는 게 유리하다는 충고다.

일본에서 부품 조달이 어려워지자 중국, 러시아 등으로 뛰어다니는 모양인데, 몇 년 후면 중국의 GDP가 일본의 3배가 넘을 것이고, 일본의 GDP는 한국의 3배가 넘는다.

`일본만 아니면 된다`는 식으로 하여 이제 중국에 잔뜩 매달리려 하는가.

옆에서 한일 싸움을 팔짱을 끼고 구경하는 중국(환구시보)은 "한국은 WTO 제소, 미국 중재 부탁,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을 해보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다"면서 "약한 군대가 굳게 지키면 강한 군대에 사로잡히는 법이다"라고 손자병법을 인용해 조롱했다.

한일 정치 지도자끼리 서로 견해가 달라 대치할 순 있지만 국민 감정을 격화시킬 불매운동을 뒤에서 누군가 부채질하는 것은 나중에 돌아오는 길이 멀어져 위험하다.

양국 최고 지도자 간 틈새가 벌어질 여지를 메워주는 게 청와대 참모진의 역할이다.

대법원 판결이 1965년 6월 한일 청구권 협약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것이라면 그 토대 위에 그해 12월 맺은 한일 국교 정상화도 무효가 돼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이 긴밀하게 사태를 파악하여 옳은 정보를 대통령에게 제공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조국 민정수석이 동학란, 죽창가를 들먹이고 한일 전면전이 붙은 8월 2일에도 페북에 불매 운동을 독려했다. 조국은 병자호란 때 김상헌과 뭐가 다르냐는 말이 나오는데, 그는 역사에서 충신이었나 간신이었나.

한일 전면전이 선포된 것처럼 보이는 지금 우리는 두 갈래 길에 서 있다.

우선은 8월 28일 화이트리스트가 발효하기 전까지 한일 간 대립 완화책을 도모하는 길이며, 미국 등의 중재를 최대한 도모하는 길이다.

또 하나는 정말로 일본을 넘는 길을 찾아보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결의는 미사여구만 늘어놓은 게 아니라면 월나라 구천의 와신상담과 견줄 만하다.

이순신의 12척으로 왜구 133척을 물리치기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한국이 세계 12위에서 한 단계 오르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데 세계 3위 일본을 꺾겠다고 한다. 말로만 하는 것은 뻥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제 `일본 이기는 3년 계획`을 내놔보라.

나는 이것이 문재인 정부 2년간 소진시켜버린 한국 경제 체력을 복원시킬 천우신조의 기회라고 본다.

민노총 위주 친노조·대기업 적폐시와 법인세 강화, 탈원전, 주52시간 근무제, 소득주도성장 등을 그대로 둔 채 일본을 넘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노와 사, 대기업-중소기업이 힘을 합쳐 일본에 대항하겠다"고 선언했다. 그전엔 대기업을 적폐시했으며 현재의 청와대 참모나 경제장관들도 이런 정책을 갖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문 대통령은 제조업을 키우고 기술 패권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한 만큼 이제 경제장관, 청와대 참모를 그에 걸맞은 사고를 지닌 인물로 바꿔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시장경제 프렌들리 국가로 재창조할 희망을 문 대통령이 준 셈이다. 이는 이낙연 총리가 말한 전화위복의 기회다.

분명 한국 경제는 미·중 싸움 격화, 한일 간 전면전으로 1%대 성장으로 추락할 위기에 빠졌다.

이런 누란지위에 대통령, 총리 그리고 여당과 내각이 총단결하여 기술 패권 시대에 승리하겠다니 한국은 분명 국운이 좋다.

다만 재계가 30년을 걸려 이루지 못한 핵심 부품 국산화를 홍남기 부총리가 5년 만에 뚝딱 해결할 것 같은 장담은 불안하다.

모든 부품을 국산으로 하는 것은 남미의 종속이론이며 그로 인해 남미는 망하고 말았다.

   
▲ 박정희 대통령

지내놓고 보면 이번 한일 싸움의 배경은 196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 개발은 빨리 하고 싶고 돈은 없어서 청구권 자금을 받는 명분을 대충 정한 데 따른 혼란이다.

1965년 1인당 GDP를 보면 쿠웨이트 4331달러, 미국 3665달러, 스웨덴 3006달러, 캐나다 2740달러, 영국 1851달러였다.

일본 889달러, 칠레 699달러, 가봉 448달러, 잠비아 300달러, 필리핀 189달러, 인도 121달러, 그리고 한국 106달러의 순위와 크기를 한번 음미해 보시라.

박정희는 일본에서 배상금 유무상 8억달러를 받고, 그보다 1년 전에 베트남전에 군대를 파병하고, 서독에 광부를 보내고 이어 1966년에 간호사를 보냈다.

경제 발전을 위해 포스코, 경부고속도로, 소양강댐을 짓고, 통신공사를 만들고 하는 데 돈이 부족해 광부, 간호사, 파병 군인들 월급을 담보로 보증세워 국가가 돈을 빌려 한국의 경제 발전 토대를 닦았다. 오늘날 한국의 1인당 소득이 3만4000달러를 넘는데, 저 위에 있는 필리핀, 가봉, 멕시코, 인도 등의 소득수준을 한번 찾아보라. 남미 1등국 칠레의 1인당 GNI는 2만2540달러로 한국보다 34%나 낮다.

문재인 정부가 대(對) 일본 승리 3년 계획을 제대로 세우고 착착 실천에 옮긴다면 역사는 박정희를 뛰어넘는 첨단 산업을 일군 영웅으로 평가할 것이다.

그 확률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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