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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독립운동가 최재형…우수리스크서 재탄생최재형 선생 옛집, 독립운동기념관으로 재탄생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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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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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형 선생 연해주 독립운동 대부.

12일(현지시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기념비가 선 최재형은 당시 한인 동포 사이에서는 '최 페치카'로 불릴 정도로 물심양면으로 동포들을 지원한 인물로 평가된다.

최재형기념사업회 등에 따르면 페치카는 러시아어로 벽난로를 뜻한다. 추위가 혹독한 시베리아에서는 집마다 페치카를 설치하는데 선생이 동포들에게 어떤 존재로 각인되고 추앙받았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1860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출생한 최재형은 9살 때 가족과 함께 연해주로 이주했지만 굶주림에 가출했다.

그는 며칠간 노숙을 하다 항구에서 러시아 선장 부부에게 발견돼 양육됐다. 11살부터 6년간 러시아 상선을 타고 수습 선원으로 세계를 일주하며 견문을 넓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러시아 극동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와 통역하며 언어소통 문제로 차별받던 한인 동포들을 도왔고, 이후 군납 사업을 하며 크게 성공했다.

경제적 부를 쌓은 그는 한인 동포 후손들의 교육을 위해 30여개 학교를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우수 졸업생에게는 장학금 주며 대도시로 유학을 보냈고, 이들이 돌아오면 모교 교단에서 동포 후손들을 가르치도록 했다.

그는 어려움을 겪는 한인에게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손을 내밀었고, 이런 그를 동포들은 페치카라는 애칭을 붙여 불렀다고 한다.

최재형은 사업가로서 거둔 부를 자신이 아닌 일제가 강제 침탈한 조국의 독립을 되찾는 데 썼다. 그를 두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실천,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언급하는 이유다.

그는 1908년 독립운동 조직인 동의회를 조직했다. 의병부대인 대한의군에 무기와 숙식을 제공했고, 이듬해에는 동포 신문인 대동공보를 인수해 사장을 맡았다. 1909년 안중근이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의거를 배후에서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최재형선생기념관 내부 모습.

안중근이 하얼빈으로 떠나기 전 최재형 집에서 사격 연습을 했고, 그가 소지한 신분증이 대동공보 기자증이었다는 것은 이를 보여준다.

1911년에는 항일 독립운동 단체인 권업회를 조직해 초대 회장을 맡았고, 일제에 강제 폐간된 대동공보를 대신해 1912년 권업신문을 발간하기도 했다.

1914년 러시아 한인 이주 50주년 준비위원장,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한러한족회장을 지냈다. 1919년 중국 상해에 들어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초대 재무총장에 임명됐으나 취임은 하지 않았다.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벌이던 최재형에게 죽음은 잔혹하게 찾아왔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는 혁명 세력인 볼셰비키 적군과 반대파인 백군 간 내전이 벌어졌다.

당시 일본군은 내전에서 백군을 지원했는데 적군 공격을 받아 크게 타격을 입자 공격에 가담한 이들을 색출하겠다며 한인사회에 대한 무차별적 학살을 저질렀다.

1920년 4월 5일 최재형 선생을 포함한 여러 독립운동가가 일본군에 연행됐고 그는 이틀 뒤인 7일 일본군에 총살된다.

당시 일본군은 최재형이 압송 중 탈출을 시도해 사살했다고 주장했지만, 그가 어떤 경위로 순국했고, 시신은 어디에 묻혔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인 수원대 박환 교수는 저서 '페치카 최재형'에서 "최재형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맞은 최후의 시간은 가장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함부로 처리되었음을 추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최재형의 육신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3·1운동 100주년이자 순국 100주년을 앞둔 올해 그는 생전 독립운동에 집중한 우수리스크에서 기념비로 재탄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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