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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21세기 황제 시진핑의 '중국 통합' 시험대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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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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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 /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중국 반환 22년 홍콩… 아직 공산당 통제에 길들여지지 않아
홍콩 크게 흔들리자 대만까지 들썩, 베이징의 고민도 깊어져

   
 

중국과 홍콩이 손을 맞잡고 췄던 탱고는 스텝이 꼬인 지 오래다. 이제는 스텝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형국이다. '범죄인 인도법'을 두고 벌어진 중국과 홍콩의 갈등이 연일 지구촌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97년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이 중국에 귀속한 지 올해 22년이다. 중국의 자본이 과도하게 들어오면서 부동산·증시 등의 영역에서 홍콩 사람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생활고가 깊어졌다는 게 이번 사태의 큰 요인으로 꼽힌다. 아울러 150여 년의 영국 식민지 시절 누렸던 법치(法治)와 자유(自由)의 틀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홍콩 시민의 불안감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1997년 홍콩 반환 때 중국은 50년 시한의 '한 나라 두 체제(一國兩制)' 약속을 내걸었다. 홍콩 대다수 사람은 현지의 범죄인을 중국에 넘기는 법이 그 근간을 흔드는 조치라고 간주한다.

하지만 홍콩 사태를 제대로 보려면 보다 심층적이고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은 전통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 '중앙'과 '지방', '통제'와 '이탈'이라는 중국의 오래된 통치 역학 구조다. 하나로 묶여 어엿한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 중국의 구성은 복잡하다. 공산당에 몸담기 직전인 27세 마오쩌둥(毛澤東)은 이런 말을 했다. "중국을 22개 성(省), 3개의 특구(特區), 2개의 속지(屬地) 등 27개 구역으로 나누자. (…) 우리 후난(湖南) 사람들은 스스로 각성해 자결(自決)과 자치(自治)를 행하면서 후난 공화국을 세워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의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고(殺人多),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流血多)"고 했다. 후난에서 태어난 20대 청년 마오쩌둥은 자신의 고향을 중국으로부터 떼내고자 했던 분리·독립주의자였던 셈이다. 신해혁명(辛亥革命)을 이끌었던 쑨원(孫文)도 "중국의 각 지역은 사람들의 습성이 각기 다른 기후 조건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는 중앙집권과는 잘 맞지 않는다. 미국식의 연방제도가 가장 적합한 구조"라고 했다. 이른바 느슨한 연합, 즉 연성자치론(聯省自治論)의 제창이다. 그러나 공산당 발기인으로 활동하던 마오쩌둥, 임시 대총통의 자리에 오른 쑨원은 분리와 독립, 분권(分權)과 지방자치에 관한 견해를 모두 철회하고 전통적인 중국 왕조의 통일적 판도를 구상한다. 21세기판 황제로 불리는 시진핑 주석은 전임자들에 비해 한층 더 강력한 중앙 통치를 꿈꾼다.

   
▲ 지난 10일 홍콩국제공항에서 홍콩 시민들이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라는 말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중국 정부가 개정을 추진했던 ‘범죄인 인도법’의 완전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홍콩 사태를 계기로 지지율이 크게 오른 대만 민진당의 차이잉원 총통이 지난달 미국을 방문했을 때 지지자들과 악수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은 예로부터 강력한 중앙집권의 권력이 생겨나 안정적인 구도를 이루고자 했던 오랜 역사 과정이 펼쳐졌던 곳이다. 그러나 통일적인 구도를 형성했다가도 분열할 때가 매우 많았다. 따라서 중앙은 지방의 통제를 늘 고심했고, 그 이탈을 항상 경계했다. 현대 중국도 마찬가지다. 국토의 통일을 지상의 과제로 꼽는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매우 이질적이어서 중심으로부터 이탈하려는 경향이 다른 곳에 비해 높은 신장(新疆)위구르, 티베트에 대한 통제가 특히 유독 강한 이유다.

중국 집권 공산당은 최근 지난 40년의 개혁·개방 기조를 벗고 중앙 권력 집중화와 민간 부문 통제를 강화하는 등 보수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개혁·개방 과정에서 생겨난 심각한 부패 등으로 나름의 위기의식이 작용했을 듯싶다.

이번에 홍콩에서 대대적인 반발이 일어난 건 중앙 권력을 강화하려는 집권 공산당의 의도와 자유·민주적 가치에 오랫동안 익숙해져 있던 홍콩 시민들의 삶이 충돌한 결과이다. 홍콩은 영국 식민지 생활을 접고 중국의 판도로 회귀한 지 20년이 갓 넘은 '신생 지역'이다. 공산당 중앙의 통제에 길들여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홍콩에 대한 통제 강화를 위해 공산당이 내민 '범죄인 인도법'이 홍콩의 강력한 반발을 불렀다. 공산당 중앙이 강요하는 통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식민지 시절 동안 누렸던 자유와 법치(法治)의 유혹이 여전하다. 이번 사태로 홍콩의 반(反)중국 정서는 줄어들 기미가 현재로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홍콩 문제는 단지 홍콩에 그치지 않는다. 그 여파가 대만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대만은 홍콩과는 다른 역사 과정을 거친 곳이다. 국민당 장제스(蔣介石) 정부가 옮겨가 중국의 '간판'을 걸었지만 청(淸) 이전까지는 중국의 판도에 본격적으로 들지 않았던 지역이다. 따라서 오래전에 그곳에 이주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정체성과 함께 현 집권 민진당(民進黨)을 중심으로 독립 성향까지 드러내고 있다. 홍콩 문제가 돌출한 뒤 대만의 국제정치적 요소가 뒤를 이어 불거지고 있다. 대만에 대한 첨단 무기 판매의 문호를 다시 열고,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의 방문을 '이례적으로' 허용한 미국의 조치가 그렇다. 아울러 곤두박질치던 독립 지향의 민진당 지지율이 홍콩에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급상승한다. 이 경우 내년 초 실시할 예정인 대선에서 민진당의 승리는 거의 확실해 보인다.

중국이 굴기하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의 충돌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번 홍콩 사태로 그 가능성은 크게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홍콩은 그 시발점에 불과할 수 있다. 전선이 대만으로 확산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중국이 외교관계를 맺을 때 상대국에 요구해왔던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원칙이 도전에 직면한다. 중앙으로부터 먼 지방, 그래서 힘이 느슨하게 미치는 지역은 늘 권력 중심에 선 중국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고민이자 '아킬레스건'이었다. 마침 베이징으로부터 아주 먼 홍콩에서 반중 시위가 이어졌고, 통제가 더 힘든 대만이 들썩인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서방의 공격력이 중국의 이런 약점을 직접 노릴 경우 양측의 대립은 아주 깊어진다. 요즘의 홍콩 사태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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