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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政과 한글보급운동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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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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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 논설위원

   
 

일제강점기 두 신문사의 ‘한글보급운동’은 길이 잊지 말아야 할 역사다. 1920년대 후반에 시작된 이 문맹퇴치운동은 국채보상운동과 쌍벽을 이룰 정도이기 때문이다. 1930년 무렵 조선의 인구는 2043만7219명, 100명당 취학률은 겨우 19.9%였다. 학령인구가 245만여 명이었으나, 전국의 1710개 보통학교생 48만7878명과 1만1469곳의 서당에 다니던 학동 16만2247명만이 문자를 접할 뿐이었다. 그래서 이 문맹퇴치운동이 더 돋보인다.

조선일보는 1929년 7월 14일부터 ‘아는 것이 힘, 배워야 산다’는 표어를 내걸고 귀향남녀학생 문자보급운동을 전국적으로 시작했다. 수강생은 7∼49세로 다양했지만, 12세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정진석 편 ‘문자보급운동교재―조선일보·동아일보 1929∼1935’) 1930년에만 900여 명의 학생 강사로부터 1만567명이 한글을 깨쳤다. 교재 ‘한글원본’은 이 해 9만 부, 이듬해에는 30만 부, 1934년에는 100만 부를 찍었다. 한글 배우기 열풍을 잘 말해준다. 한글원본과 산술로 구성된 교재는 조선일보가 직접 제작·인쇄·배포한 것이다.

동아일보의 ‘글장님 없애기 운동’도 빼놓을 수 없는 왜정(倭政) 치하의 업적이다. 애초 운동 개시 D데이는 1928년 4월 1일이었다. 그러나 3월 29일 총독부 경무국의 긴급명령으로 중지되고 말았다. 1870년대 러시아에서 청년 귀족과 학생들이 사회 개혁을 이루고자 일으킨 브나로드운동을 연상시킨다는 핑계였다. 브나로드(v narod)는 러시아어로 ‘민중 속으로’라는 뜻. 하지만 동아일보의 글장님 없애기 운동은 3년 뒤인 1931년 시작돼 4년간 계속됐다. 교재는 학생 별동대로 불린 계몽대원들을 통해 방방곡곡 보급됐다. 동아일보의 문자보급운동은 총 298일 동안 5751명의 대원이 전국 1320곳에서 210만 부의 교재로 9만7598명의 ‘글장님’에게 광명을 선사했다.

동아·조선 두 신문의 한글보급운동은 1935년 여름방학을 기해 내려진 총독부의 중지령으로 중단됐다. 5년 뒤, 일제는 ‘창씨개명’으로 불리는 일본식성명강요 정책으로 조선인의 민족혼을 말살하려 들었지만 제2차대전 패전으로 두 손 들었다. 일본 기업 DHC 인터넷 방송의 한 출연자가 “일본에서 만든 교과서로 한글을 배포” 운운한 망발에 기가 막혀, 국내 두 신문사의 한글보급운동을 돌아봤다. 

   
▲ 황성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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