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19.8.19 월 17:45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본국지논단
광복절 74돌을 맞이하며
경향신문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8.14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세계화 담론이 우리 사회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다. 당시 정부는 세계화를 국정 과제로 적극 추진했다. 세계화는 국가 간 교류가 증대함으로써 국가 간 관계가 새로운 변화를 겪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 간 교류의 양적 증대가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였다면, 그 관계의 질적 변형은 세계화(globalization)로 명명됐다. 세계화 현상을 ‘인터내셔널리제이션’이 아니라 ‘글로벌라이제이션’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세계화를 지탱해온 양 축은 정보혁명과 신자유주의였다. 정보혁명이 24시간 투자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금융자본이 세계경제를 주도하게 했다면, 신자유주의는 자유화·탈규제·민영화를 내세워 ‘미국식 자본주의’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강제하게 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말한 ‘보수의 시대’란 1980년대부터 열린 이 신자유주의 시대 또는 세계화 시대를 함의한다.

세계화 시대에 제동을 건 것은 2008년 금융위기였다. 금융위기의 다른 이름은 ‘대침체’였다. 대침체란 1929년 ‘대공황’에 빗댄 말이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대침체의 서막을 알렸다. 대침체는 서구 국가들의 잇단 부채 위기로 이어졌다. 30여년 동안 표준적 세계관으로 군림해온 신자유주의는 결국 고장 났고, 사회과학자들은 물론 정책입안가들은 세계화에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지난 10여년간 진행된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가장 주목할 변동 중 하나는 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말한 ‘중심부 투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해온 미국은 중국의 도전을 받게 됐고, 지구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 간의 도전 및 응전이 세계경제를 뒤흔들어 왔다. 1980년대에 일본의 도전을 물리친 바 있는 미국은 이제 중국의 굴기(起)를 꺾기 위해 무역 전쟁을 불사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세계경제 및 정치가 미국 주도의 ‘1극’에서 미국과 중국 주도의 ‘2극’으로 분화되며 균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변동은 포퓰리즘의 부상이다. 포퓰리즘은 인기 영합 정책인 동시에 정체성 정치다. 정체성이란 존재의 이유를 알려주고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받게 하는 사유와 감정을 뜻한다. 정체성 정치란 종교·인종·젠더·민족 등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들이 훼손되는 것에 분노하며 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체성 정치는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표출하는 동시에 정치세력에 의해 동원된다.

정체성 정치로서의 포퓰리즘 사례들은 미국의 우파 트럼프주의에서 스페인의 좌파 포데모스까지 다양하다. 일본 아베 정부의 통치 역시 반다원주의와 반지성주의라는 포퓰리즘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준다.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우치다 다쓰루가 강조하듯, 아베 정부는 경제성장과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면 시민의 자유와 입헌민주주의를 거침없이 제약하려는 ‘일본의 싱가포르화’를 추구한다. 민족주의는 포퓰리즘으로 재무장돼 새로운 통치 기술로서의 힘을 얻는다.

이 짧은 글에서 내가 말하려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세계화의 현주소다. 오늘날 세계화는 자신의 내적 긴장을 증대시킨다. 정보혁명의 가속화는 경제의 지구적 네트워크를 강화시키는 반면, 포퓰리즘의 발흥은 정치의 애국주의 망탈리테를 소생시킨다. 세계주의와 민족주의가 제로섬 관계가 아닌 동시 증진 관계라는 새로운 시대의 문턱 위에 우리 인류는 서 있는 셈이다.

둘째는 변화하는 동북아시아다. 지구적 헤게모니를 놓고 중심부 투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잃어버린 20년’을 포퓰리즘으로 보상 받으려는 일본이 각축하는 것이 21세기 전반 동북아의 현주소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이러한 흐름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다. 예를 들어, 현재 진행되는 일본의 경제 보복의 직접적 원인은 강제징용 배상이라는 역사적 문제이지만, 그 배경적 요인의 하나는 대내적으로 애국주의를 고취시키며 대외적으론 한국 경제의 부상을 견제하고 제어하려는 아베 정부의 극우 포퓰리즘에 있다고 봐야 한다.

내일은 광복절 74돌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광복절이 안겨주는 감회는 남다르다. 광복(光復)의 의미는 빛을 되찾는 데 있다. 그 빛의 의미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 민족의 자존과 독립, 이웃 국가와의 공존과 상생에 있을 것이다. 민족의 자존심을 위한 정신과 기술의 당당한 독립을 추진하되, 동북아의 미래를 위한 평화와 번영의 항구적 모색을 추구하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라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