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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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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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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창 / 논설위원

   
 

봉오동은 중국 지린성 왕칭현의 두만강변 지역 이름이다. 10개의 작은 마을에 200여명이 살던 궁벽한 오지였다. 러시아 국경까지는 40㎞, 북한 국경까지는 18㎞에 불과했다. 독립군 지휘관인 최진동은 1908년 청나라의 지방관청으로부터 봉오동 일대 토지를 사들여 개간했다. 독립군은 물론 일본 압제를 피해 국경을 넘어온 이민자들을 끌어 모아 한인촌을 세웠다. 험준한 골짜기가 25㎞에 달할 만큼 깊어 독립군이 농사짓고 군사훈련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1920년 6월7일 홍범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 등 독립군 연합부대는 산발적 전투를 벌이며 일본군 제19사단의 추격대대를 봉오동 계곡까지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삼면이 막힌 골짜기에 매복해 있던 독립군의 총공세에 일본군은 157명 전사, 300여명 부상이란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독립군 손실은 4명 전사, 2명 부상에 불과했다. 독립군이 일본 정규군에 거둔 첫 대규모 승리였다. 독립군 사기는 충천했고 4개월 뒤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으로 이어졌다.

영화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가 개봉 5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해 주목받고 있다. 원 감독은 “피해와 굴욕의 역사가 아닌, 저항과 승리의 역사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독립군 숫자는 몇 명인지 알 수가 없다.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오늘은 독립군이 될 수 있다.” “나라 뺏긴 서러움이 우릴 복받치게 만들고 잡아 일으켜 괭이 던지고 소총 잡게 만들었다.” 영화 속 독립군 간부가 외치는 명대사다. 제작진은 홍범도 장군이 아니라 죽기를 각오하고 일본군을 봉오동까지 유인한 이름 없는 독립군의 활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한 한·일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이라 이 영화는 관객의 이목을 끌고 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너무 당연한 메시지를 전하는 ‘국뽕 영화’라는 비판도 있지만, 천신만고 끝에 독립군이 승리할 때 뭉클한 감동이 몰려온다는 호평도 나온다. 원 감독은 “이렇게 뜨거운 승리의 역사를 이제야 영화로 만들게 된 것이 영화인으로서 부끄럽다”고 밝혔다. 그래서 영화 흥행에 더 관심이 쏠린다.

   
▲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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