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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 우리네 부모님들이 있을 자리는 어디
정음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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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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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화 / 연변대학 사회학과 

“자식이 있는데 왜 같이 안 살아요?” 하는 질문이 사뭇 생소하게 느껴지는 요즘 세상. 이제 우리에게 조손 3대가 한 지붕아래 오순도순 살아가던 ‘가족신화’는 지나간 옛말이 된 듯하다. 생활습관이 달라서, 따로 사는 게 편해서, 자식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서… 이유도 가지가지, 표현방식 또한 각양각색이다. “니들도 바쁜데 짐이 되지 말아야지” 약간은 기대하면서도 자식의 처지를 따뜻이 헤아려주는 신중한 부모가 있는가 하면 “니들 신세는 절대 안 진다” 제법 호기로운 ‘독립선언’을 발 빠르게 해버리는 성급한 부모도 있다. 뭔가 부모님들 쪽에서 더 눈치를 보이거나 질색팔색하는 기혼자녀와의 세대동거다.

“육십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세에… 팔십세에… 구십세에… 못 간다고 전해라, 백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노래 가사처럼 세상은 바야흐로 '백세시대'의 문이 열리고 글로벌 고령화의 큰 흐름은 한층 거세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인생 륙십을 넘기면 충분히 장수했다 하여 동네방네 떠들썩 축하했었던 우리네 환갑도 칠순, 팔순, 구순, 백수잔치로 미뤄지고 주위에는 장수노인들로 차고 넘친다.

문제는 이러한 평균수명의 연장이 꼭 행복하고 여유로운 노년의 삶과 정비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인간의 신체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서서히 각종 기능의 저하와 면역력의 감소를 동반하기 마련이며 여러 가지 질병과 사고의 위험이 증가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이다.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쇠약으로 인해 별것 아닌 일에도 쉬이 서운해 하고 보기 싫은 '꼴'들도, 하고 싶은 말들도 점점 많아지며 세대 간의 갈등 또한 깊어지기 일쑤다. 거기다 효자효녀들만 살고 있는 동화 속의 세상도 아니요, 어느 자식이나 모두 연로한 노부모를 케어 할 수 있는 능력과 형편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냉정한 현실. 그래서 노후난민이나 고독사와 같은 불편한 사회적 이슈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백세시대, 정작 길어진 노년의 삶으로 인해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이 퍽이나 멀어진 우리네 부모님들. ‘노년이 즐거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노년이 지겹기만 한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육체와 정신이 쇠락해가면서 더 이상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네 부모님들이 있을 자리는 어디며 어디여야 편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 노부모 부양의 여러 양상들을 두루 살펴보면서 가족이란, 부모자식관계란 과연 어떤 것인지 새삼스런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부모와 자식 사이는 평생을 걸쳐 지속되는 가장 친밀한 인간관계이며 그 안에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교환성 원칙이 내포되어 있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주고 키워줄 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건강하고 기력이 있을 때까지 그 자식이 낳은 자식들을 돌봐주고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등 든든한 버팀목으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러 그 부모가 노쇠해지고 자식에게 의존적이게 됐을 때 자식은 부모로부터 받은 도구적•경제적•정서적 자원을 다시 돌려드리는 호혜의 원칙을 지켜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배은망덕’, ‘불효막심’의 큰 죄를 짓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식의 손길이 필요한 부모를 직접 돌보지 못할 때 그에 대한 불안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며 “내 사정이 변변치 못해서”, “일이 너무 바빠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끝없는 변명과 구실들을 찾아가며 애써 자신을 합리화시킨다.

하지만 부모와의 동거를 통한 노후보살핌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장기적인 노환과 의존상태의 일상화는 그러한 노부모를 돌보는 자식에게 이루 다 말 할 수 없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감을 가져다준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 그리고 형제자매 사이에 불화와 갈등을 초래함으로써 가뜩이나 버거운 노년의 삶을 더 숨 막히게 만들기도 한다.

요즘은 사람들의 관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와서, 또 자식세대의 초국가•초지역적 이동으로 인해 따로 살면서 가사도우미를 고용하여 부모님의 돌보게 하거나 양로원 같은 시설에 노부모를 맡기는 가족들이 심심찮게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믿음직한 가사도우미를 찾기 어렵다든지 치매나 성격 등 노부모 쪽 원인으로 도우미가 견디지 못해 일을 그만둔다든지 변수가 너무 많아 큰일이다. 도우미를 금방 부모님 댁에 데려다주고 출근했는데 직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만두겠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얘기며, 한 달 사이에 도우미를 다섯명 바꿨다는 얘기… 웃기고 슬픈 이야기 투성들이다.

그런가 하면 양로시설에 들어갔을 경우에도 마냥 그리운 것이 가족이고 집이다. 보태여 그 곳 역시 타인들로 구성된 하나의 작은 사회인지라 노인들 사이의 다툼과 갈등이 다반사이고 경영자와 직원들은 그런 문제가 노인들에 대한 신체적 보살핌보다 더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시설에 들여보냈다 해서 “만사태평, 근심걱정 끝!”이 아니다. 자식들이 찾아오기를 어린애마냥 손꼽아 기다리는, 그래서 자주 찾아드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만 정서적인 안정감과 행복감을 되찾는 부모님들.

우리네 부모님들이 삶을 마무리할 곳, 거기가 어디면 가장 적합한 것인지, 어떻게 해드리는 게 가장 바람직한 것인지, 고령화와 저출산, 핵가족화와 인구이동 등 시대적 격변 앞에서 우리 사회도, 개개의 가족도 아직은 모두가 많이 방황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시행착오적 단계에 머물러있는 상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이 어디가 됐든 삶의 끝자락에 선 부모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의 따뜻함이며 자식은 영원히 부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천륜의 도리이다.

“따로 살다가 움직이지 못할 때는 양로원에 가지뭐”를 입버릇처럼 외우는 요즘 부모님들. 정신이 온전한 상태에서 “죽을 때는 니들이 책임져라”, “너네 집으로 가겠다”를 선뜻 먼저 꺼내는 부모는 거의 없다. “내리 사랑”이라고 자식에게 부담을 주는 게 마냥 미안하고 어색하기만 한 우리네 부모님들이기에 부모자식관계는 사실상 비균형적 호혜관계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경제력을 갖추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둔다 하더라도 정작 늙음과 질병이란 사람을 한없이 무기력해지게 만드는 그런 무서운 존재. 그러니 절대 자식신세를 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그 앞에서는 한낱 부질없고 민망한 오기에 불과할 뿐이다. 여차할 때에는 자식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자식에게 베푸는 마지막 보은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을 보낸 뒤에야 몰려올 못해드렸던 것에 대한 후회와 통탄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따스한 봄날 오후, 골목길 언덕에서 해볕쪼임을 하는 동네 어르신들을 뵌 적이 있다. 왠지 모를 애잔함과 처연함이 확 안겨왔다. 오가는 대화도 거의 없이 그냥 쪼르르 모여앉아 있을 뿐인데 고독과 외로움들이 물씬 풍겨오던 그 풍경이 오래도록 잊어지지 않는다.

유엔의 전망에 따르면 2030년 65세 이상 인구가 10억 명에 이르게 될 것이라 한다. 급속한 고령화에 대비해 국가와 지역사회는 양로정책과 보건체계의 확립에 바삐 움직인다. 가족안의 사회, 사회안의 가족이란 말이 있듯이 서로가 분리된 철저한 사회부양도 완전한 가족부양도 있을 수 없다. 우리네 부모님들 그리고 언젠가는 노년의 삶을 맞이하게 될 우리 자신을 위해서 개개의 가족 역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백세시대, 노부모의 마지막을 돌본다는 것,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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