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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노벨 과학상’ 일본 추월 자신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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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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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섭 / KAIST 기계공학과 교수

금메달처럼 노벨상도 시간 필요
규제를 소재·부품 국산화 계기로

   
 

해마다 10월이 되면 한국 사람들은 이웃 나라 일본의 노벨상 수상 소식에 부러움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언제쯤 한국에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까. 필자는 이 질문에 매우 긍정적인 입장이다.

이렇게 자신하는 첫째 이유는 과학기술계 사정을 상대적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 이유는 ‘양정모 사례’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의 노벨상을 이야기할 때마다 “양정모 선수를 아느냐”고 질문한다. 양 선수를 아는 젊은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반면 어른들은 대부분 양 선수를 잘 기억하고 있다.

1960, 70년대 한국 사람들의 꿈은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고 손기정 선수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의 감격과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달 수밖에 없었던 암울했던 시대 상황을 회고했다. 그러던 중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선수가 해방 이후 처음 금메달을 땄다. 당시 신문 호외 제목은 ‘민족의 숙원 이룩’ 이었다.

그런 양 선수를 요즘 젊은 학생들은 왜 모를까. 일본은 1928년 첫 금메달 획득 이후 한국이 첫 금메달을 딴 76년까지 모두 65개의 금메달을 보유했다. 한국은 48년간 일본의 금메달 소식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금메달 120여개를 보유한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30년간 한국의 금메달 숫자는 일본을 훨씬 웃돈다.

요즘 한국 학생들에게 양 선수는 120여개 올림픽 금메달 가운데 하나를 의미할 뿐이다. 거기에는 어른들이 느끼는 나라 잃은 설움과 가난은 없다. 학생들은 금메달을 민족의 숙원이라고 더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앞으로 노벨상도 그렇게 될 것이다.

과학기술 연구의 역사가 100년이 넘은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은 30년이 채 안 된다. 노벨상은 통상 20~30년 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수여되는 사실을 고려하면 한국이 당장은 어려워도 머지않은 미래에는 노벨상 수상이 가능할 것이다.

최근 한·일 갈등 상황을 일컬어 수출 보복, 경제 침략, 심지어 ‘기해왜란’(己亥倭亂)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필자는 ‘기득권 포기’라고 이해한다. 지난 20여년 한국의 과학기술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한국 기업들은 빠르게 국제 경쟁력을 확보해 왔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장벽이 일본의 부품·소재 산업이었다.

부품·소재는 특성상 오랜 연구 기간이 필요하다. 어렵게 국산화에 성공한 경우에도 일본의 터무니없는 가격 인하에 휘둘려 상품화와 대기업 납품에 실패하는 사례가 다반사였다. 한발 앞서 연구하고 상품화한 일본기업의 기득권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수출 규제 조치는 수십 년간 쌓아온 일본 제품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 비록 일시적 수급의 어려움에다 자칫 생산이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품·소재 기업들에는 시장이 열렸고, 과학기술자들에게는 급박하게 연구·개발(R&D)에 몰두하고 성공시켜야 할 명분과 사명감이 생겼다. 대기업들에도 근시안적 전략에서 벗어나 국내 중소기업들과의 장기적인 상생의 소중함을 깨닫는 기회가 생겼다.

일본은 이번 조치로 기득권 포기와 함께 신뢰를 무너뜨리는 어리석음도 함께 범했다. 아베 총리에게 더 고마운 것은 시점이다. 일본이 언젠가 꼭 쓰고 싶었던 정책, 한국도 언젠가 한 번은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 올해 일어났기 때문이다. 만일 일본의 한국 배제 정책이 한국의 과학기술이 충분한 준비가 안 됐던 10년 전에 있었으면 어떠했을지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하지만 연구소와 공장에서 집중하고 노력하면 나름대로 대응이 가능하다. ‘반도체 신화’에 이어 부품·소재 산업에서 새로운 신화를 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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