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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꿈꾸는 코리안드림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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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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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 소설가

외국인 한국어 공부 ‘격세지감’ / 과학적 표기시스템에 ‘엄지척’ / BTS 한글 가사도 자랑스러워 / 문화로 세계 주인 될 날 올지도

   
 

2016년에 만난 쿠바 아가씨와 가끔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아바나에 3개월 체류할 때 그녀는 나의 스페인어 선생님이었다. 한국에서 미리 6개월간 배운 스페인어로 현지에서 그녀와 더듬거리며 대화를 하곤 했다. 그녀는 이미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문화원에서 한글공부를 해 한국어도 제법 잘했다. 한국어능력시험인 토픽(TOPIK)을 준비하는 그녀의 소원은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에서 일자리를 얻어 쿠바를 떠나는 거였다. 처음엔 스페인어로 메일을 주고받았지만 지금은 한국어로 주고받는다.

해외에서 만난 인상적인 아가씨의 또 다른 기억이 있다. 2013년 봄에 터키의 실크로드를 탐사해 기록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적이 있다. 서쪽 이스탄불에서 동쪽의 이란 국경까지, 가이드 겸 기사가 운전하는 승용차로 관광객이 가지 않는 위험한 험로를 횡단하면서 긴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중부 산악지대를 지나 동쪽 오지의 시바스에 도착했을 때, 작은 선물가게에서 만난 히잡을 쓴 점원 처녀는 진열대 위에 공책을 펴놓고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놀랍게도 한글이었다. 한글 자음과 모음에 터키어 음을 달아 놓고 한글 문장을 수십 번 쓴 두툼한 공책을 보고, 내가 먼저 반갑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한국 사람을 구경할 수 없는 그 동네에서 한국의 작가를 만난 그녀는 놀라서 얼굴이 발개지더니 곧 눈물이 글썽해지며 수줍게 “안녕하세요”라고 화답했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빠져 인터넷을 통해 1년간 독학으로 한글을 공부하던 그녀 역시 멋진 한국에 꼭 가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두 아가씨 모두가 꿈꾸는 ‘코리안 드림’. 내가 젊은 시절에 많이 들었던 ‘아메리칸 드림’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그 꿈을 이루는 매개체가 한글이라는 게 작가인 내게는 의미 있게 여겨진다. 그것이 문학작품을 통해서라면 더 좋겠지만, 한류 드라마나 K팝을 통한 것이면 또 어떤가. 프랑스 파리의 국립동양어문화대(INALCO)에서 한국어문학을 가르치는 지인은 10년 전부터 입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대학의 교실이 모자랄 지경이라 했다. 물론 노래 가사나 드라마 대사에 빠져 한국어에 관심을 가져 입학한 학생이 어려운 한국문학 학위를 받고 다 졸업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제 한류는 세계적인 유행이며, 11일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서 성공리에 공연한 방탄소년단(BTS)은 K팝의 정점을 찍고 있다. 그들이 월드 콘서트 공연을 이어왔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이 도시의 건물도 BTS의 상징색인 보라색 조명으로 대대적인 환대를 해주었다. BTS의 세계적인 영향력이 놀랍다. 무엇보다 그룹의 음악성뿐만 아니라 문학과 철학이 깃든 시대정신의 메시지로 깊은 공감을 끌어내는 노래 가사가 ‘한글’이라는 게 새삼 자랑스럽다. 며칠 전 한글날에는 글로벌 팬클럽인 아미(ARMY, BTS 공식 팬덤 명칭)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직접 한글로 쓴 BTS의 가사와 함께 ‘방탄 때문에 한글 배웠다’ 등의 해시태그를 붙여서 올렸다니 과연 한국문화 선도의 첨병이라 할 만하다.

외국인이라도 한글의 실용적인 알파벳 원리를 배우면, 금방 자신이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물론 한국어는 너무 어렵지만, 단순하고 과학적인 표기시스템이 재미있다며 모두 ‘엄지척’을 한다. 그런데 이런 우수한 우리의 한글 표기시스템을 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또 있다. 말하자면 한글 수출 첫 번째 사례라 할 수 있다. 10년 전 인도네시아 부톤섬의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자신들의 부족어 표기법으로 채택했다. 인도네시아는 1만7000여개의 섬으로 이뤄져 700여개에 이르는 소수민족 언어가 있는데, 로마자로 표기하는 인도네시아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후 이들의 언어는 자연도태되는 상황이 됐다. 찌아찌아족도 독자적 언어는 있지만, 표기법이 없어 고유어를 잃을 처지였다고 한다.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한글교육을 받아 한글보급률이 늘자 급격히 문맹률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언어는 민족의 영혼이며 문화의 정수다. 요즘 경제가 어렵고 수출은 감소하는데, 한글이 매체인 한국문화의 수출은 오히려 활발하니 다행이다. 혹시 아는가. 문화로 세계의 주인이 될 날이 가까운 미래에 올지. 광화문에 앉아 계시는 세종대왕은 상상이나 했을까. 573년 전에 불쌍한 조선 백성만을 위해 자신이 만들었던 한글이 이렇게 뻗어나가게 될 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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