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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찾은 평양에서 본 남북관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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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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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징이 / 베이징대 교수

   
 

2년 만에 다시 찾은 평양은 여전히 활기가 넘쳤다. 차량 2부제를 실시하는데도 거리를 달리는 차량은 2년 전보다 많아진 느낌이었다. 버스나 무궤도전차, 궤도전차 같은 대중교통 수단은 택시에 비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상점과 식당도 2년 전보다 훨씬 많아진 느낌이었다. 여명거리에만도 80개가 넘는 음식점이 들어섰다고 한다. 골목에까지 늘어선 음식점들은 질과 가격으로 고객을 끄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저녁 8시가 넘었는데도 대형 마트나 작은 상점들은 사람들로 붐볐다. 올해 엄청난 태풍이 북한을 관통했지만 북한 전 인민이 동원돼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한다. 농사 작황은 지난해보다 많이 좋아졌는데, 포전담당제(가족 단위 개인영농 방식)가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재작년 두차례의 평양 방문에서 필자가 집요하게 던진 질문은 사상 초유의 유엔 제재 국면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찾은 평양은 그 질문이 무색하리만치 변화하고 있었다. 도처에 새로 세운 건축물들이 한민족 특유의 전통 색채로 가을 단풍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단풍이 우거진 모란봉에는 여기저기 한복 차림의 노인들이 흥겨운 춤판을 벌이고 있었다. 평양은 분명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어떤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15만 평양시민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문 대통령이 올 줄도, 연설할 줄은 더더욱 모르고 경기장을 찾았던 평양시민들은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하였다고 한다.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고 한다. 최고의 결심을 최고의 느낌으로 확고히 믿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토록 어마어마하게 희망을 부풀렸지만 평양시민들 앞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커졌다고 한다.

북한은 지난해 평양선언 후 적어도 금강산과 개성공단 중 어느 하나는 문이 열릴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 믿음은 올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로까지 이어져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설비점검을 위한 개성공단 기업주들의 방북조차 남한 정부에 의해 8차례나 거절되는 것을 보면서 북한은 한국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고 한다. 문제는 자의든 타의든 오늘의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북한 주민들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연설을 직접 들었던 평양시민들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강조했던 문 대통령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는 또다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일까? 북한 학자들은 오늘의 북한이 건설의 전성기로부터 건설의 대번영기로 들어섰다고 했다. 북한은 갈마 관광지구, 삼지연 관광특구, 양덕 온천관광지구와 같은 대형건설을 마무리하면서 자신감이 엄청 높아진 느낌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금강산 관광시설 철거를 언급한 배경으로는 금강산지구 관광시설도 같은 맥락에서 북한식으로 “혁명적”으로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구상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북한 학자들은 굳이 한국이 아니더라도 국내를 포함한 많은 (금강산) 관광객들을 유치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북한의 변화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은 군수공업의 새로운 역할이었다. 생활필수품 생산에서부터 온천관광지구의 스키장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서 군수공업이 엄청나게 큰 구실을 한다고 한다. 결국 북한이 경제건설에 주력할수록 남북관계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다시 긴장으로 갈 확률은 그만큼 낮아질 것이다. 경제건설로 엄청 큰 판을 벌이고 있는 북한이 스스로 남북관계의 판을 깨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에 대한 적개심도 그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남북관계가 풀릴 것이라는 확신이 자신감에서 우러나왔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한국이 행동으로, 결단력으로 신의를 지키라는 것이었다. 이제 공은 한국으로 넘어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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