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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궁극의 투표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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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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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덕 / 논설실장

전 죽어가고 있어요. 숨을 못 쉬겠어요. 정말 죄송해요, 엄마.'

   
 

26세의 베트남 여성이 영국행 냉동 컨테이너 안에서 보낸 문자는 우리 뇌리를 아프게 친다. 냉동고에 숨어 기회의 땅으로 가려던 39명은 모두 죽었다. 비극은 2000년 여름의 사건과 겹친다. 유럽과 영국을 잇는 도버항에서 대형 트럭 짐칸을 열어젖힌 세관원은 후끈한 악취에 놀랐다. 58명의 중국인 밀입국자 중 생존자는 두 명뿐이었다.

다른 나라로 떠나는 이들이 다 이처럼 절박하게 목숨을 거는 건 아니다. 20년 전 프랑스공화국의 상징 마리안상의 모델로 뽑힌 21세의 레티시아 카스타가 런던으로 이사 간 건 세금 탓이었다. 한 해 200만파운드를 버는 그가 파리에 살면 소득세와 사회보장세, 부유세를 합해 131만파운드를 내야 했다. 하지만 런던에 살면 소득세와 국민보험료 79만파운드만 내면 됐다. '프랑스의 얼굴'에게도 절세가 중요했다.

지구촌 인구 77억명 중 7억명은 다른 나라에 가 살고 싶어한다. 못사는 나라 인구의 40%는 잠재적 이민자다. 부자나라의 순찰대와 장벽은 이들을 결연히 막아선다. 유엔은 현재 지구촌 이민자를 2억7000만명으로 추산한다. 베를린장벽 붕괴 후 세 배로 늘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후 부자나라로 진입하는 문은 빠르게 닫히고 있다.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줄잡아 750만명에 이른다. 1960년대 인구가 너무 빨리 늘어 걱정이던 정부는 해외이주를 적극 장려했다. 해외이주 신고자는 1976년 4만6000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서는 한 해 1000명에도 못 미친다. 우리 경제가 잘나갈 때는 역이민도 크게 는다. 1995년에 나는 아메리칸 드림을 좇다 한국으로 유턴하는 교포들이 급증해 한 해 5000명 안팎에 이른다고 썼다. 기분 좋은 기사였다. 뉴욕타임스가 곧바로 받아 쓰는 바람에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전체 역이민은 지난해 2000명을 밑돌았다.

요즘 이민을 화제에 올리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미국 투자이민 요건이 50만달러에서 90만달러로 오르기 전에 막차를 타려는 이들로 설명회장이 붐비고, '말레이시아 어느 지역은 살기 좋다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현지 답사를 하는 이들도 많다. 한국을 뜨려는 이유는 가지가지다. 좋은 일자리를 얻고 싶다, 아들딸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하고 싶다. 세금이 너무 늘어 재산을 못 지킬까 불안하다, 한반도에 전쟁이 터질까 겁난다, 넌덜머리나는 정쟁과 위선적인 정치인들이 너무 싫다, 미세먼지 없는 나라에 살고 싶다….

이민은 궁극의 투표다. 이민이야말로 (표를 얻는 쪽에는) 가장 진솔한 아부라는 말도 있다. 누군가가 더 나은 삶을 좇아 한 나라를 뜨기로 한 결정에 정치적 해석이 따르는 건 당연하다. 지난여름에는 과연 문재인정부 들어 한국을 떠나는 국민이 급증한다는 게 사실이냐를 두고 일부 언론과 여야 정치권이 갑론을박하기도 했다.

외교부 통계는 믿을 수 없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1년 이상 장기체류자로 출국한 내국인은 한 해 8만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외교부에 해외이주자로 신고한 이는 한 해 800여 명에 그친다. 통계가 부실하니 정교한 정책이 나올 수 없다. 상품과 서비스 교역은 그토록 정밀한 통계를 내면서 오늘날 국가경쟁력에 가장 중요한 두뇌자본의 유출입에 대해서는 깜깜이다.

재외공관과 각 부처가 달려들어 어떤 인재가 빠져나가고 들어오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두뇌자본 유출입을 관리할 컨트롤타워도 만들어야 한다. 이민청이든 인적자본관리처든 상관없다. 우리가 글로벌 인재를 끌어들일 매력자본을 얼마나 갖췄는지도 끊임없이 자문해봐야 한다. 글로벌 특급 인재와 부자들은 한국에서 살고 싶어 하는가. 자유를 찾아 떠나는 홍콩 시민들은 왜 한국으로 오지 않는가. 더 나은 삶을 좇는 이들에게 한국은 과연 모든 것을 걸 만한 기회의 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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