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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의 사모곡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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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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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 논설위원

   
 

“나는 왜 이곳에 와 있나. 나를 낳은 엄마는 누구일까. 나는 버려진 건가, 아니면 길을 잃은 것인가. 내 모습은 한국 사람인데 언어와 행동이 다르다. 그렇다면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스웨덴의 한인 입양아 출신 아스트리드 트롯찌가 1995년 자서전 ‘피는 물보다 진하다’에서 제기한 의문들이다. 트롯찌의 고민은 해외 한인 입양아 출신 22만명의 공통된 화두일 것이다. 스웨덴의 한인 입양아 출신 수잔 브링크(본명 신유숙)도 그중 한 명이다. 고 최진실이 열연한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의 실제 주인공인 그는 1966년 입양된 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정체성 혼란으로 일그러진 성장기를 보냈다. 남동생으로부터 “이 중국 애와는 같이 살 수 없다”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18세에 미혼모가 되고 두 번 자살을 시도한 그는 1989년 입양아 관련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친어머니를 극적으로 찾았다. 그의 사연은 가족의 의미와 해외입양 문제에 대한 사회적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장뱅상 플라세 전 프랑스 국가개혁장관. 그는 가장 성공한 한인 해외 입양아로 꼽힌다. 고아원에서 7세 때 입양된 그의 성공 뒤에는 양부모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다. 피부색으로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지 않도록 친구들에게 배려를 부탁했고, 나폴레옹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온갖 책을 다 구해다 줬다. 자신을 버린 나라로 생각해 한국에 관한 기억을 애써 지우려 했던 그였지만 역시 피는 물보다 진했다. 언젠가부터 한식을 좋아하게 되었고, 수원의 고아원을 찾아 유아기 때 흔적을 더듬어보기도 했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한·프랑스 문화교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저는 언제나 마음속에서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어요.” 스웨덴의 한인 입양아 출신 여의사인 산드라 요한나 영 록미엘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1981년 입양된 그는 2013년부터 매년 한국을 찾았지만 가족 상봉은 이뤄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길 바라며 이렇게 성장한 내 모습을 보고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좋겠어요.” 죄의식 속에서 살았을 어머니에 대한 이해심이 대견하다. 딸을 평생 그리워했을 친모가 부디 용기를 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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