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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대일외교 실패, 반복하는 문재인 정부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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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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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모 / 외교전문기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15년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를 발표하면서 과거사 문제를 반성한 역대 일본 내각의 입장을 소개했을 뿐 자신의 반성은 담지 않았다. 오히려 “러일전쟁은 식민지 지배하의 많은 아시아·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당당히 밝혀서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케 했다. 단언컨대, 아베 담화는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내놓은 과거사 관련 문건 중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박근혜 정부는 아베 담화의 수많은 내용 중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한 문장만을 갖고 담화 전체에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처음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일본과 외교를 못한다고 못 박았다. 위안부 문제로 한·일 갈등이 깊어지고 이로 인해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차질이 생기자 미국은 화해하라는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관계 개선에 나서야 했다. 그러자니 명분이 필요했다. 일본의 태도는 변한 것이 없었지만 ‘노선 변경’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흉물스러운 아베 담화를 긍정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4개월 뒤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졌다. 박근혜 정부는 대일 외교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합리화시키려다 ‘외교 참사’를 일으키고 국정에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문재인 정부의 강제징용 판결 문제 처리 과정은 박근혜 정부와 같은 패턴의 반복이다. 한·일관계를 파탄낼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진 강제징용 문제가 대법원의 최종확정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한 위기의식도,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도 없었다. 판결 이후에는 일본의 협의 요청에 응하지 않고 ‘사법부 결정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며 스스로 퇴로를 끊는 강경 자세를 취했다.

대일 외교에서 감정이 앞서면 안된다.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 외교는 일본 문제를 잘못 다루면 외교의 축이 흔들리게 되는 구조적 취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역사의식이 끔찍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상대가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관계가 아니라서 외교를 못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로는 긴 숟가락을 갖고 가서라도 악마와 마주앉아 식사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외교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무리수였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중단시켜 미국을 판에 끌어들이는 잘못된 대응 카드를 꺼냈다. 이 때문에 한국은 GSOMIA 중단 효력이 발생하기 전인 22일까지 원상복구를 해달라는 미국의 압박을 받게 됐다. 정부는 일왕 즉위식에 특사를 보내고 다자회의장에서 환담 기회를 만드는 등 대화를 적극 시도하고 있지만 상황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앞으로 2주 내에 일본과 문제 해결에 합의하거나 시간을 벌 수 있는 창의적 수단을 마련하지 못하면 ‘매우 험난한 한·미관계’를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시간에 쫓겨 강제징용 문제를 대충 마무리하면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 같은 것이 나올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 갈등에 미국이 개입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바로 직전 정부에서 목도하고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공자는 사람의 수준을 넷으로 분류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生而知之)은 성인에 가깝고, 배워서 아는 사람(學而知之)은 그다음이다. 곤란을 겪으면서 배우는 사람(困而學之)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이며, 최하의 부류는 곤란을 당하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困而不學)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

지금이라도 접근법을 바꿔야 한다. 왜냐하면 한·일관계에서 강제징용 문제는 빙산의 일각이기 때문이다. 한국 헌법은 식민지배가 불법임을 명시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 구조적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충돌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강제징용 문제를 어찌어찌 해결한다 해도 유사한 분쟁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강제징용에 버금가는 난제가 지금 또 닥쳐오고 있다. 이번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13일부터 시작된다.

거듭된 정부의 대일외교 실패가 낳은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한국이 도덕적으로 절대 우위를 가져야 마땅한 역사 문제에서 일본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초현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일 접근법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정부의 용기가 필요하다. 외교안보라인을 전면 개편하고 심기일전하기를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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