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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 이웃과 함께 하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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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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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범 / 민권센터 선임 컨설턴트

1984년부터 이민자와 동행
21일 설립 35주년 기념 갈라

   
▲ 1984년 퀸즈 잭슨하이츠에서 민권센터의 전신 뉴욕청년봉사교육원을 설립한 고 윤한봉 선생과 창립 멤버들

  

   
▲ 2006년 전국을 휩쓸고 뉴욕에서 40만의 군중이 결집했던 이민개혁 촉구 이민자 대행진에 참가한 청년학교(민권센터 전신)와 한인들. [민권센터]

이민자 권익옹호 단체 민권센터가 설립 35주년을 맞았다. 1984년 퀸즈 잭슨하이츠에서 커뮤니티 활동의 뜻을 품은 10여 명의 한인 청년들이 씨를 뿌린 비영리 커뮤니티 단체다. 민권센터 창립 멤버들은 청춘의 모든 시간과 재원을 아낌없이 퍼부어 단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한겨울에 사무실 난방비가 없어 외투를 껴입고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회의를 하고, 플리마켓에서 옷을 팔아 예산을 마련하면서 오직 열정만을 무기로 객관적 어려움을 주관적 의지로 돌파했다. 그들의 헌신을 바탕으로 이제 민권센터는 한인, 아시안 등 이민자 커뮤니티를 아우르며 나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한 단체로 자리매김 했다. 오늘의 단체 면모에 개념어를 동원하면 권익옹호, 정치력 신장, 사회봉사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모든 활동들을 다른 단어로 집약하면 사람 그리고 이웃이다.

서류미비자 실질 도움 주력

약 10년 전, 뉴저지에 거주하는 서류미비자 A씨는 어느 날 갑자기 가족과 생이별했다. 차량국에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러 갔다가 이민단속국으로 넘겨져 구치소에 수용됐다. 매일 장시간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하던 남편은 부지불식간에 사라진 엄마를 애타게 찾는 어린 자녀들의 양육까지 떠맡아야 했다. 없는 살림에 부인을 구명하고자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남편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민권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민권센터는 즉각 A씨 석방 운동에 돌입했다. 소속 이민 변호사가 케이스를 담당하고, 보석금을 모금하고, 뉴저지 이민단속국 앞에서 집회를 하고, 단체와 교회들을 순회하며 탄원서 서명을 받으며 전방위로 뛰었다.

한인 동포들도 우리의 노력에 화답했다. 어느 동포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보석금에 보태라며 출근하는 직원 편에 후원금을 건네주었다. 어떤 동포는 본인도 신분 없이 살며 서러움을 겪었다는 사연을 적은 손편지와 함께 후원금을 보내주었다. 우리의 절박한 노력은 결실을 맺어 A씨는 수개월간의 구치소 생활에서 풀려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민 법원 재판에 임하게 되었다. 실로 오랜만에 애써 밝은 표정으로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밥을 차려주던 A씨의 발목에는 이민단속국이 설치한 전자 발찌가 채워져 있었다.

B씨는 드리머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 청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여느 친구들과 다름없는 꿈을 꾸는 청소년이었다. B씨는 대학 입학 원서를 작성할 즈음에야 본인이 남들과는 다른 처지임을 발견했다. 영주권 취득을 시도했던 부모는 담당 변호사의 부실한 업무 처리로 실패했다. 새로운 희망의 장으로 여겼던 미국이 절망의 땅으로 변모한 순간이었다.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은 서류미비 청년 구제책인 DACA를 공표했다. B씨와 같이 미국 사회의 그늘에서 숨죽여 살던 드리머들이 민권센터로 물밀듯이 찾아 왔다. 무료 DACA 신청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우리는 그들의 DACA 신청을 도우면서 한편으론 드리머 청년들도 조직했다. 일부 드리머 친구들은 본인의 구제를 넘어 부모님, 더 나아가 모든 서류미비자들을 위한 이민개혁 캠페인에 결합했다. B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본인의 DACA 신청을 하러 왔다가 열혈 자원봉사자가 되어 맹활약했고 결국 정식 실무자로 선임됐다.

나는 지금도 2013년 그날의 장면을 뚜렷이 기억한다. 뉴욕 일원의 단체들이 '이민개혁을 위한 뉴욕연맹' 결성 집회와 기자회견을 맨해튼에 소재한 한 교회에서 개최했던 날이었다. B씨는 드리머이자 민권센터의 대표로 연설했다. 연설하는 도중 그는 본인 가정의 스토리를 소개하며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에서 돋는 슬픔을 누르며 떨리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정치권에 이민개혁의 조속한 실현을 촉구했다. 언론사에 보낼 사진을 찍고 있던 나는 예배당 한쪽 구석으로 숨어 들어가 오열을 쏟았다. 드리머들은 과거는 아프고 현실은 어렵고 미래는 불투명한 캄캄한 처지에서 생존의 길을 찾으며 오늘도 사투하고 있다. 민권센터는 B씨의 어머니가 드디어 영주권을 취득하도록 도왔다.

이민자 권익·정치력 신장 결실

민권센터는 두 마리 토끼를 쫓는다. 연방과 지역 차원에서 법제화를 통한 올바른 이민 정책을 추동하면서 동시에 당장 생활이 어려운 동포들을 돕는 봉사 프로그램도 가동한다. 푸드스탬프와 메디케이드를 포함한 공공 혜택 신청, 저소득층 세금보고, 시민권 신청, 영주권 카드 갱신 및 이민법과 주택법 상담까지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봉사한다. 매년 민권센터는 봉사 실무진과 소속 변호사들이 3000여 명의 한인과 이민자들에게 500만 달러 상당으로 계상되는 혜택을 각종 봉사 프로그램을 통해 제공한다.

2019년 우리는 뉴욕주 차원에서 괄목할 정책 승리를 거두었다. 연초에 주의회를 통과한 뉴욕주 드림액트가 시작이었다. 드림액트가 법제화되면서 서류미비 대학생들도 주정부의 학자금 지원을 받고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는 길이 열렸다. 새 운전면허증 정책은 2002년부터 시작된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경우다. 2001년 파타키 주지사는 소셜번호가 없는 주민들의 운전면허증 취득과 갱신을 불허하는 행정명령을 공표했다. 2007년 스피처 주지사는 이민 신분에 상관없이 운전면허 취득을 허용하는 행정 명령을 발동했으나 반이민 세력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철회했다. 당시 65개 단체로 구성된 '평등한 운전면허 취득을 위한 뉴욕 연맹'의 주관단체 중 하나로 캠페인을 이끌었던 청년학교(민권센터 전신)는 쓰라린 패배의 상처를 안았다. 그리고 올해 마침내 '그린라이트 연맹'이 주관한 캠페인이 성공을 거두어 주의회에서 법안이 통과돼 뉴욕주는 모든 주민에게 운전면허증 취득을 허용하는 미국 내 13번째 주가 되었다.

렌트 안정법의 개혁도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그간 뉴욕에선 기존의 렌트 안정법이 가진 허점들로 인해 대형 임대 회사들의 전횡이 비일비재했다. 민권센터도 적극 가담한 '평등한 주택 정의 연맹'은 주의원들과 협력하여 9개 개혁 패키지 법안들을 추진했고 그 중 7개가 주의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뉴욕주는 반세기 만에 가장 강력한 세입자 보호 법률을 보유하게 되었다. 물론 주 차원의 정책 승리는 2018년 선거에 따른 주의회의 정치 구도 변화가 큰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정치 구도의 변동도 이민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선거 참여로 이루어낸 결과다.

민권센터는 지난 35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 능력이 부족하여 소망하는 바를 미처 다 이루지 못한 적은 있었지만 이민자 권리를 지키는 현장에서 한 번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오는 21일 오후 6시30분 플러싱 대동연회장에서 열리는 민권센터 35주년 기념 갈라에 많은 동포들이 참석하고 후원하여 중요한 선거와 인구조사가 있는 2020년을 향한 비전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한인 동포들이 작은 묘목이었던 민권센터를 튼실한 나무로 성장시켰다. 민권센터는 동포들이 키워낸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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