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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잃은 그들의 흔적을 보면…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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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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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선 / 논설위원

   
 

최근 한 달 남짓한 사이 외국 땅을 두 번 밟아볼 기회가 있었다. 먼저 카자흐스탄. 여름휴가를 미뤄 10월 초 관훈클럽 해외문화유적 답사에 합류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방문지는 바슈토베 언덕의 토굴 흔적이다. 소련 공산당은 1937년 연해주 지역 한인 17만여 명을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화물열차와 가축 운반 열차에 짐짝처럼 실린 한인들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이동 중에 1만5000명 정도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소련은 한인 수만 명을 카자흐스탄 동남부 우슈토베 기차역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내동댕이쳤다. "살아남든가, 죽든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그 황량한 벌판에서 한인들은 우선 찬바람을 피해야 했고 기차역에서 5㎞가량 떨어진 바슈토베 언덕에 토굴을 파야 했다. 이제 그곳엔 갈대밭만 무성하다.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1937년 10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토굴을 짓고 살았던 초기 정착지`라는 돌비석이 서 있을 뿐이다.

이때 소련 공산당이 연해주 한인들을 그처럼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이주시킨 이유가 어이없다. 당시 소련과 일본 사이에는 긴장이 고조되던 중이었다. 소련 공산당은 `한인들이 일본과 내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들을 일본에서 멀리 분리시킨 것이다. 그 소련을 이어받은 러시아는 지금도 한국과 일본을 위협하고 있다. 그들이 또다시 한국과 일본을 한통속으로 취급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를 놓고 영원히 원수지간으로 지내기라도 할 듯 대립하고 있다.

두 번째는 오키나와. 이달 초 미국 정부 초청으로 일본 내 미군 주둔기지를 둘러봤다. 오키나와는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과 미군이 격전을 벌였던 곳이다. 한국 청년도 징병·징용으로 끌려와 1만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숨진 사람들 이름을 새긴 오키나와 평화공원 `평화의 초석`에는 한국인 400여 명 이름도 새겨져 있다. 가슴아픈 사실은 이들 이름이 한국 380명과 북조선 82명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비석에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남북 구분 없이 끌려와 똑같은 고통을 겪었건만 죽어서 남북으로 갈라져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할아버지 세대의 나라 잃은 설움은 이렇게 중앙아시아에도, 태평양 섬에도 얼룩져 있다. 그들의 흔적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카자흐스탄에서 강 게오르기 알마티국립대 교수를 만나 토론했다. 그는 공산주의 시절을 경험한 고려인이다. "한국이나 북한 중 어느 쪽을 조국으로 생각하는지, 이념 성향이나 출신 지역은 그런 판단에 어느 정도 기준이 되는지" 물었다. 대답은 명쾌했다. "내 할아버지는 북한 해주 지역 출신이지만 나는 경남 진주 강씨다. 남북한 중에서 조국이 어디냐고 묻는 것은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들에게 지금 이념이나 출신 지역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부강한 조국이 그들에게 의지가 될 뿐이다.

서울로 돌아와 보니 안보와 경제를 둘러싸고 걱정이 가득하다. 한일 지소미아 종료와 한미 방위비 줄다리기 속에 우리 안보를 지탱해온 한·미·일 동맹이 흔들거린다. 한국은 4대 강국 속에서 점점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뚝뚝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광화문·서초동·여의도에 갈등과 증오가 넘쳐나고 사생결단식 편 가르기가 진행된다.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과 동지가 존재하지 않듯 이웃 간에도 마찬가지다.

비록 지금은 생각이 다를지라도 우리는 언제든 동반자가 될 수 있는 사이다. 서로 그렇게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 임기 반환점을 돈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기울여야 할 일도 국민 통합이다. 인재 탕평을 하든, 정책 탕평을 하든 갈라진 국민이 서로 마음을 열도록 대통령부터 앞장을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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