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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국을 몰랐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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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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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 수석논설위원

美 집요한 압박에 ‘회군’한 지소미아 카드
세계 각국, 美 우선주의에 각자도생 모색
보수ㆍ진보 떠나 한국의 살 길 고민해야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1일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 도착한 전사자 운구에 참석해 경의를 표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를 앞장서 이끌고 있는 인물이 트럼프 대통령이다. [연합뉴스]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유보 발표에 일본이 “일방적 승리”라고 강변한 것은 예상한 바다. 수출규제 시작 때부터 말을 계속 바꿔온 일본의 전략도 그렇지만 이번 합의가 ‘어정쩡한 봉합’에 그친 이유가 더 크다.

외형적으론 한일 모두 한 발짝씩 양보한 모양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일본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어져 있다. 일본이 작심하고 휘두른 수출규제가 국장급 대화로 해결될 일도 아닐뿐더러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들고 있는 카드는 ‘지소미아 종료’인데 한번 칼집에 넣은 칼을 다시 뽑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번 결정이 미국의 집요한 압박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미 국방부와 국무부에 이어 의회까지 나선 파상적 설득과 압박이 ‘회군’을 이끈 결정적 요인이다. 일본의 대화 재개 결정은 여기에 장단을 맞춰준 데 불과하다. 정부는 애초 미국이 이렇게 나올 줄 몰랐던 걸까.

한국은 처음부터 지소미아를 한일 간 문제지 미국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소미아는 온전히 미국의 작품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줄곧 한국에 체결을 요청해 온 것이 박근혜 정부에서 ‘결실’을 맺은 것이다. 중국 견제를 제1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을 떠받치는 핵심이 한미일 삼각동맹이고, 그 린치핀(linchpin)이 지소미아이기 때문이다.

그 애착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2009년 4월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핵실험을 강행했다. 그 얼마 뒤 도쿄에서 한미일 국방회담이 열렸는데 주일미군사령관은 긴장 고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미일 3자 협력을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밝혔다. 한미일 간에 밀실에서 지소미아 논의가 시작된 시점이 이때였다.

이런 배경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8월 지소미아 종료 결정 후 “미국이 양해했다”고 한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미국은 자국의 안보 틀과 국가 이익을 훼손하려는 행위를 조금도 용납할 생각이 없다. 일본이 지소미아 종료로 안보에 치명상을 입는데도 버텼던 데는 이를 이용한 측면이 있다.

상식을 뛰어넘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압력에서 봤듯이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두드러졌지만 돌출적이고 예외적인 현상은 아니다. 앞서 2016년 미 대선에 뛰어든 20명의 후보 가운데 미국이 세계 안보와 무역 질서 유지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로 나타나는 국익 추구는 공화ㆍ민주당을 가릴 것 없이 공통된 흐름이다.

세계 각국은 이미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나토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꾸중’을 들은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본만 해도 보이는 것과 다르게 미국에 올인하고 있지 않다. 중국의 부상에 대비해 ‘일중 관계 신시대’ ‘영원한 이웃나라’로 관계 회복을 꾀하고 있다. 미국의 하위 동맹국에서 벗어나 대등한 동맹국으로 승격해 아시아의 맹주가 되는 것이 아베의 전략이다.

한미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절대선으로 삼는 ‘가치동맹’의 시기는 이미 지났다. 우리가 아무리 ‘혈맹’을 강조해도 미국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은 워싱턴을 방문한 여야 3당 원내대표에게 대놓고 ‘동맹 관계의 재설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한미동맹의 틀과 역할 분담을 새롭게 설계하려는 구조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미국의 지정학 전략가 피터 자이한은 저서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에서 “미국이 세계 질서를 요리하던 역할을 계속할지 모른다는 헛된 생각을 떨쳐야 한다. 한국을 비롯해 모두가 새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지소미아 사태는 보수ㆍ진보를 떠나 넓은 시각으로 국익을 고민하라는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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