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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선거 '접시의 덫'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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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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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하 / 논설위원국장

   
 

요즘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들린다.

"선거권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고 권리행사를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투표 안 하면 무시당한다." "한인의 목소리를 잘 전달해 한인사회 정치력 높이자." "재외선거에 관심을 갖자." 4월15일 한국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 4월1일부터 6일까지 진행되는 재외선거 참여 촉구의 말들이다. 단체장, 총영사관, 교계 인사들까지 나서고 있다.

그분들께 송구하지만 시니컬하게 대답한다면, "할 수 있게 해줘."

2007년 6월28일 헌법재판소는 재외국민 선거권 제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듬해 연말까지 법을 정비하라는 사실상 위헌 결정이었다. 헌재의 명령에 정치권 즉 국회는 '마지못해' 재외국민 참정권 법안을 본회의 통과시켰다. '속모를 해외 표'에 영향 받기 싫은 정치권과 '나도 국민의 한 사람' 재외국민의 대결은 일단 재외국민이 이긴 듯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제동을 걸었다. 슬쩍 '접시'를 바꿨다. 이솝우화에서 여우가 두루미를 초대해 놓고는 넓은 접시에 고깃국을 대접한 것 같은 모양새다. 뭔가 좋은 걸 내놓은 것 같은데 실상은 제대로 먹을 수 없게 했다.

'접시의 덫'은 이랬다.

투표방법을 공관투표로 국한했다. 선거인등록을 하기 위해 또 투표하기 위해 공관을 방문해야 한다. LA한인타운에 사는 유권자가 LA총영사관을 방문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여긴 땅덩어리 어마어마한 미국이다. LA총영사관 관할 지역만 봐도 중ㆍ남가주를 포함한 캘리포니아 절반과 애리조나, 네바다, 뉴멕시코 등 4개 주다. 이 지역의 총 면적은 110만 ㎢. 대한민국(남한) 전체가 10만 ㎢인 것에 비하면 무려 11배나 크다.

애리조나 피닉스에 사는 유권자가 LA총영사관에 투표하러 비행기 타고 오고 가야 하나. 차를 운전한다면 300마일 X 2. 그것도 2차례나. 적어도 3일 코스다.

항의가 빗발치고, 정치권 저희끼리 생각해도 난센스였다.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 투표소를 공관 외 인근 지역에 한두 개를 추가 설치했다. 또 선거인등록은 인터넷이나 우편으로 할 수 있게 했다. 그러면서 마치 획기적으로 재외선거를 바꾼 것처럼 떠벌렸다. 유권자 등록과 투표라는 두 가지 절차를 거쳐야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제도에서, 유권자 등록을 쉽게 했으니 '이제 편하고 쉽게 투표하세요'라며 선심쓰는 모습을 보였다.

재외국민과 해외 한인사회가 요구한 것은 '우편(인터넷) 투표'다. 공관에 가서 투표하기엔 너무 머니 집에서 우편으로, 인터넷으로 투표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핵심(우편투표)은 잘라내고, 변죽(우편등록)만 울린 여우(정치권)는 우편투표가 부정의 우려가 있다며 절대불가를 고수했고, 두루미(재외선거인)는 하다 하다 지쳐서 아니면 뭘 몰라서 이상한 접시의 음식을 먹고 있는 꼴이다.

정치적 선진국인 미국, 영국, 독일 등은 우리와 반대로 공관투표를 배제하고 우편투표만 허용하고 있다. 가뜩이나 외교ㆍ민원 업무로 바쁜 공관에서 투표를 하게 되면 공관과 선거인 양측이 다 피해를 볼 뿐이라는 합리적인 생각이다.

부정투표 운운하며 나라마다 선거제도는 다르다는 정치권에 묻자. "미국, 영국, 독일 국민은 공명정대하고 제나라 국민은 불순하다는 말밖에 더 되느냐?"

이미 오래전 선거 주무부서인 중앙선관위에서도 우편투표 도입을 국회에 개정의견으로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조차 무시한 정치권은 투표율 저조를 내세우며 재외선거 무용론까지 펼치고 있다.

해외 한인사회가 재외선거 참여 촉구를 외치고 있지만, 문제는 정치권이 짜놓은 '접시의 덫'이다. 그 접시를 깨는 쪽에 한마음으로 나서야 한다.

여우는 결코 두루미를 위해 호리병을 만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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