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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 속 몸에 밴 혁신 리더십… “인도 최고 수출품은 CEO”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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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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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라 / 국제부 기자

글로벌 기업 지휘하는 인도계 파워
뜨거운 교육열에 생존력 뛰어나… 완벽한 영어 소통능력도 강점
다문화사회서 ‘갈등 조율’ 체득
대담한 해결책 찾는 능력 뜻하는 ‘주가드 정신’도 성공 비결 꼽혀

   
 

“인도의 최고 수출품은 인도 경영자들이다.”

   
▲ 조유라 국제부기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미국 대기업을 속속 장악하고 있는 인도계 경영자 열풍을 두고 내린 진단이다. 지난달 30일 ‘컴퓨터 공룡’ IBM은 아르빈드 크리슈나 클라우드사업 총괄(58)을 새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이달 1일 경영난에 빠진 공유부동산 업체 위워크는 부동산 베테랑 산디프 마트라니(57)를 구원투수로 영입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모기업 알파벳, 노키아, ‘포토샵’으로 유명한 어도비시스템스, 마스터카드 등 굴지의 기업 수장도 모두 인도계다. 최근 몇 년간의 일도 아니다. 1982년 컴퓨터 제조회사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세운 비노드 코슬라, 1988년 데이터 저장업체 샌디스크를 만든 산자이 메로트라 공동 창업주 등 인도계는 수십 년 전부터 미 정보기술(IT) 업계를 좌지우지해왔다. ‘인디안 마피아’ ‘인도는 CEO 배양접시’란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인도계 미국인의 소식을 전하는 온라인 매체 아메리칸바자에 따르면 MS, 알파벳 등 인도계 미국인 CEO가 이끄는 상위 7개 기업의 2018년 총매출은 약 3600억 달러다.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35위 국가인 말레이시아(약 3650억 달러)와 비슷하다.

미 인구통계국에 따르면 2018년 미국의 인도계 이민자는 약 398만 명. 3억3000만 명의 1%를 조금 넘는다. 중국계(약 476만 명)보다 적은데도 왜 유독 인도계 경영자의 약진이 두드러질까.

○ 완벽한 영어·치열한 경쟁·뜨거운 교육열

타임은 인도계 CEO 전성시대의 비결로 영어와 치열한 경쟁을 꼽았다.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인도에서는 사실상 영어가 공용어다. 힌디어는 수도 델리를 비롯한 북부 일부에서만 통용되고 중남부에서는 수십 개 현지어가 쓰이기에 서로의 소통을 위해서도 영어가 필수적이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능숙한 영어를 구사한다.

13억 인구, 극심한 빈부격차 등으로 자국 내에서의 경쟁도 매우 치열하다. 인도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이면 일반인보다 뛰어난 생존 능력을 탑재했다고 볼 수 있다. 인도 최고 명문 인도공과대(IIT)에는 상위 1% 인재가 몰린다. 인도 정부는 독립 9년 만인 1956년 한국 KAIST와 비슷한 이 학교를 세워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미국 사회에서 성공한 인도계의 상당수가 이 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왔다.

인도계 이민자는 미국에서 교육열이 가장 뜨거운 집단으로도 꼽힌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6년 기준 25세 이상 인도계 미국인의 77.5%가 학사 이상 학위를 지녔다. 미국 태생 미국인(31.6%)보다 2배 이상으로 높다. 미 정부가 과학·기술·공학·수학 전공 유학생에게 부여하는 실습 허가 중 56%를 인도 유학생이 갖고 있다. 역시 2위 중국(24%)의 배를 넘는다.

인도는 숫자 ‘0’, 미적분학 기초인 ‘무한급수’ 개념을 가장 먼저 사용한 나라다. 인도 학생들의 수학과 과학 실력 역시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오화석 인도경제연구소 소장은 “인도는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의 목표를 수학 능력 향상에 맞춘다. 이것이 IT, 재무, 회계 분야에서 인도계의 약진으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 주가드와 갈등 해결 능력

주가드(Jugaad)는 힌디어로 즉흥적이고 대담하게 기발한 해결책을 고안하는 능력을 뜻한다. 특정 매뉴얼이나 기존 성공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돌발 상황이 닥칠 때마다 스스로 상황에 맞는 답을 내놓는 태도를 뜻한다.

미 경영전문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주가드 정신을 인도계 CEO들의 성공 비결로 꼽았다. 2009년 타타자동차가 인도 저소득층의 구매력을 감안해 에어백, 라디오, 파워스티어링 등 주요 부품을 없앤 약 230만 원짜리 자동차를 출시했다. 몇 년 후 가전업체 고드레지는 진흙이 냉매 역할을 해 전기가 필요 없는 약 4만 원짜리 ‘미티쿨’ 냉장고를 출시했다. 이처럼 인도에서는 평범한 현대인의 상식을 깨는 싸고 저렴하며 기발한 혁신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그 원동력이 주가드인 셈이다.

2014년 사티아 나델라가 MS 수장에 오른 후 MS는 주력 사업을 윈도, 오피스 등 소프트웨어(SW)에서 클라우드 사업으로 바꿨다. 기존 주력 사업의 경쟁자가 거의 없고 막대한 돈을 잘 버는데도 모험을 감행한 이유 역시 주가드 정신에 기인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CNN은 “인도에서는 아침에 양치질할 때 수도꼭지에서 물이 제대로 나올지부터 걱정해야 한다. 이렇게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수용하고 인내해 온 힘은 기업 수장에게 큰 원동력이 된다”고 진단했다.

다인종, 다언어, 다종교 사회에서 자란 인도 경영자들은 갈등 조절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을 얻고 있다. 김찬완 한국외국어대 인도연구소장은 “인도계 경영자들은 어릴 때부터 다국적 기업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공생하는 방법을 터득해왔다. 생김새, 언어, 종교가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수십 년간 부대끼며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블룸버그 역시 거대한 인구학적 특성이 만들어 낸 환경이 인도 학생들을 단순한 천재가 아닌 ‘사회성 천재’로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인도계 리더 중 독재자형이 드물다는 의미다. 13년간 펩시콜라를 통치한 인드라 누이 전 CEO는 “4567명의 직원을 뒀다면 이들을 단순히 4567이란 숫자로 생각하면 안 된다. 그들에게는 펩시코 이후의 삶이 있다.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하라”고 충고했다.

○ 정·학계에서도 영향력 증가

미 정계와 학계에서도 인도계의 영향력이 늘고 있다. 집권 공화당의 차세대 대선 후보로 꼽히는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48)가 대표적이다. 그의 부모는 1960년대 미국으로 이주한 시크교도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유엔 대사인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최초의 여성 및 인도계 주지사, 최초의 인도계 유엔 주재 미국대사란 기록도 갖고 있다. 야당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뛰고 있는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56·캘리포니아)도 모친이 인도계다.

1980년대 미국으로 온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59)는 빈곤 퇴치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저서 ‘자유로서의 발전’으로 유명한 아마르티아 쿠마르 센 전 하버드대 교수(87)도 1998년 아시아 국적자로는 처음 노벨 경제학상을 탔다.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인도계가 경제사회적 성공을 거둔 후 자금력을 바탕으로 정계에 입김을 행사하는 유대계의 노선을 따라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2016년 기준 인도계의 가구당 소득은 약 10만 달러(약 1억2000만 원)로 백인 가구 소득보다 약 2배 높다.

○ 미중 패권 다툼의 반사이익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으로 반중 정서가 확산되면서 인도계가 반사이익을 누린다는 평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상당수 중국 학생, 교수, 연구원들은 잠재적 산업 스파이로 의심받고 있다. 이들의 기술 탈취도 빈번하다. 중국이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 등 미 대표 IT 기업의 중국 내 서비스를 차단한 것도 미 재계의 반감을 부추기고 있다. 중국계와 달리 서구 사회의 근본이념인 민주주의에 익숙하다는 것도 인도계의 강점이다.

인도계의 활약상이 두드러질수록 인도 내부의 인재 유출도 심각해지고 있다. 유명 기업의 인도계 CEO 중 인도 국적을 유지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인도인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인도인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가족지향적이며 해외에서 거주한다고 해서 모국의 가족 및 친척들과 단절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오히려 해외에서 자리를 잡는 대로 고국의 가족들에게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해외 이주를 장려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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