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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너머 인간이 무서워진 세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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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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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 제작총괄 겸 논설주간

동물과 인간 접촉 막기는 난제
‘산해진미’의 탐욕 계몽이 최선
발원 뒤 국가 간 조기 차단 등
인류 차원 상생 시스템이 시급

# 1996년 2월 초. 아프리카 가봉 작은 마을. 한 소녀의 증언

   
 

“애들이 개 데리고 사냥을 나갔어요. 호저를 잡으러 간 건데, 대신 침팬지를 가져온 거예요.” “개가 잡은 건 아니고?” “아니요. 죽은 침팬지를 발견해 마을로 가져왔어요. 썩어서 배가 부풀고 악취가 났죠.” “그걸 왜….” “그게 뭔 상관이에요. 마을 사람들이 고기를 보자 아랑곳하지 않고 좋아라 했지요. 침팬지 살을 발라내 땅콩 잔뜩 들어간 소스를 발라서들 요리해 먹었어요.” “….” “고기에 손댄 사람들은 죄다 피 토하고 설사를 해댔지요. 29명이 죽었고요.” “사냥갔던 애들은?” “다 죽었죠. 그런데 개들은 안 죽었어요. 이상한 건 그 직전 프랑스 군인들이 마을 주변에 야영을 왔는데…. 낡은 활주로를 재건설하려 한 건지, 숲에 총을 쏴대고. 숲 곳곳에 침팬지 열세 마리가 널브러져 있었어요.”

치사율 88% 에볼라 바이러스의 발병이다. 바이러스의 발원과 경로를 좇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데이비드 콰먼이 『인수공통전염병의 열쇠』에 기록한 현장 인터뷰다. 초기 인간은 위험한 동물을 마주치면 줄행랑을 놓거나 나무 위로 피신했다. 교만의 길로 들어선 건 무기, 도구와 불을 갖게 되면서였다.

# 2002년 11월 16일. 중국 광둥성 포산

“46세 공무원이 쓰러진다. 집고양이, 뱀을 재료로 한 식사 준비를 도왔다. 각종 볶음조리를 맡던 선전의 요리사가 비슷한 증상이다. 광저우로 이송된 그는 앰뷸런스 의사 등 6명을 감염시킨다. 1월 말 근처 중산을 찾은 해산물 도매상 저우 줘펑이 발병, 의료진 등 수십 명을 전염시킨다. 그는 시장의 박쥐, 사향고양이 등 야생동물 식재료 가게도 왕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역시 콰먼이 추적한 사스(SARS)의 출발. 팬데믹에 돌입한 코로나19와 비슷하다. 박쥐, 원숭이 등 5000여 종 포유류를 자연 숙주로 살아온 바이러스가 ‘포유류 영장목 인간과(科)’의 유일한 종인 인간에게로 서식지를 옮겨 오는 구도다. 발원의 차단? 쉽지 않다. 당장 먹을 게 부족한 열대우림 인간들에게 ‘문명’을 들먹이며 동물 접촉 말라고 하긴 면구스럽다. ‘산해진미(山海珍味)’의 동의어인 인간의 야생동물에 대한 ‘권력 욕망’이나 ‘호사’만큼은 자제하자! 이 정도 계몽은 가능하겠다.

번식력 강한 인간이 벌목·난개발, 밀렵으로 동물의 삶터를 잠식한 게 바이러스 확산의 으뜸 요인이다. 바이러스는 동물 숙주엔 치명상을 주지 않으며 생을 이어간다. 숙주가 사라지면 살 곳도 없으니…. 숙주가 줄어 병목현상을 맞은 바이러스의 출구에 스스로를 노출시킨 게 인간이다. 평화의 공존을 무시한, 가장 영리한 동물의 업보(業報)다.

최악은 치사율, 전파력을 모두 갖춘 놈의 등장. 숙주를 옮겨 탄 그들은 생존율을 높이려고 돌연변이, 유전자 재편성의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글로벌 바이러스 예보(GVF)’의 창립자인 네이선 울프는 영화에서나 본 ‘좀비’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톡소플라스마 곤디라는 기생충에 감염된 쥐는 그토록 싫어하던 오줌 냄새의 고양이를 매력적 상대로 본다(『바이러스 폭풍의 시대』). 일종의 정신분열. 이 병원체는 어떤 경로든 결국 고양이를 찾아가는 기막힌 녀석이라 쥐를 고양이에게 끌리게 한 뒤 고양이 배 속에서 노후를 즐긴다. 진정한 바이러스의 공포는 늘 발원 그 다음이다.

# 다시 2003년 2월 21일. 홍콩 메트로폴 호텔 911호

“저우 줘펑의 사스를 치료한 지 2주 된 64세 의사 류 젠룬. 감기 기운에도 조카의 결혼식차 홍콩 메트로폴 호텔 911호에 체크인한다. 복도 중앙 엘리베이터 맞은편 방. 바로 9층의 16명을 감염시키며 ‘수퍼 전파자’가 된다. 904호 캐나다 할머니는 귀국 직후 온 토론토를 감염시킨 뒤 아들에 뒤이어 숨진다. 토론토 인근 간병인인 필리핀 여성이 부활절 휴가차 고향을 찾는다. 동에서 서로, 다시 동으로. 바이러스가 지구를 주유한다. 다리도 없는 놈이….”

코로나 팬데믹에서 보듯 발병 뒤 인간의 대응이란 조기 차단과 격리뿐이다. 부자 나라의 전유물이자 제대로 하면 12~18개월, 20억 달러가 든다는 코로나 백신의 개발 즈음엔 새 변종이 기다릴 터다. 마스크, 손씻기와 2m의 사회적 격리가 인간이 찾은 유일한 무기. 포유동물에게서 옮겨 올 채비인 바이러스와의 버거운 싸움이다. 격리의 스트레스, 직원 급료가 더 고통인 이들, 지속될 트라우마…. 맹수보다 서로를 더 경계해야 하는, 인간의 생태계가 처참하다. 무슨 ‘공동운명체’라는 정치 이념도, 입국 금지를 놓고 서로 낯 붉힐 여유도, 유색 인종 배척도 사치다. 인간이 지은 죄, 모든 인간이 대속(代贖)하는 ‘방어 전쟁’이다.

사람이 축구장이면 바이러스는 축구공의 육각형 조각. 이 미세한 킬러를 막아내려면 개별 국가·민족 간의 이해, 호불호를 이젠 뛰어넘어야 한다. 유엔이나 세계보건기구 등의 주도로 발원 직후 지역·국가 간 자동 차단, 방역 공조 등 인류 차원의 상생 시스템을 새로이 짜야 할 때다. 경쟁? 남이 안전해야 나도 안전한 새로운 세계화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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