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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서 ‘고구려문화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하다광개토대왕릉비에 따른 패널들의 다른 해석, 열띤 토론 이어져
이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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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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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 / 한국간도학회 회장]

   
 

북경에서 이틀간의 여유가 있어, 나는 번화가인 시내 음식점에서 5원짜리 국수도 사먹어 봤다. 유리창에 가서 갑골문과 고금문에 관련된 책들을 샀다. 그리고 주행거리가 짧은 지하철을 타보기도 했다. 8월 9일 비행기로 심양에 10시 30분에 도착해 13시 54분 통화행 기차에 몸을 싣고 출발했다. 23시에 도착해 통화빈관에서 숙박한 후 이튿날 8시에 집안행 기차를 타고 가던 중 동포 출신인 요녕대학의 서덕원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도 했다.

드디어 10일 오후 5시에 집안시 취원빈관에서 도착해 오후 7시에 환영연회에 참석했다. 한국에서 온 교수들의 수가 많아 보였다. 남북한 학자와 중국, 일본, 홍콩, 대만의 학자들이 200명 가까이 모였다. 고구려문화국제학술회의는 중국조선사연구회와 한국해외한민족연구소와 공동개최를 했다. 11일 8시에 학술회의 개막식이 거행됐다. 주최 측인 중국조선사연구회 부회장인 풍홍지(馮鴻志) 교수가 사회를 보았으며, 중국조선사연구회장인 박문일 연변대 총장이 개막사, 이윤기 소장이 격려사를 했다. 각국 대표는 축사를 하였고, 집안시장은 환영사를 했다.

8시30분부터 시작한 오전의 첫 발표는 집안박물관장 경철화의 ‘중국에서의 호태왕비 연구’였다. 두 번째는 김일성 종합대학의 현명호 교수의 ‘광개토왕릉비 신묘년 기사에 대해’, 세 번째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이형구 교수의 ‘광개토대왕릉비문중 변조된 倭자 고증‘, 네 번째는 북한 사회과학원 강인숙 교수의 ’광개토대왕릉 비문을 통해 본 고구려의 건국연대‘ 다섯 번째는 연변대 박진석 교수의 ’好太王碑 別体字考‘로 진행했다.

그러나 경철화의 첫 발표 시간에서 큰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에서의 광개토대왕릉비 연구는 1981년 박진석 교수가 ’광개토왕비문의 신묘년 기사를 시론함‘을 ’조선사통신‘ 제3기에 발표하면서 시작됐으며, 이듬해부터 왕건군, 유영지, 대만의 고명사로 이어졌고, 왕건군과 방기동의 5년 동안의 답사와 연구 결과가 1984년 출판한 것이 ’호태왕비연구‘였다고 했다.

토론시간에 청화대의 동포교수인 정인갑 교수가 경철화 관장에게 한 질문이 ’중국이 갖고 있는 대 고구려에 대한 인식이 무엇인가’였다. 이에 경철화 관장은 “고구려는 중국의 변방 약소 민족국가”라고 대답했다. 이 한마디에 학술세미나장은 일순 정적이 감돌았으며, 여기저기 수군대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의 박시형 박사는 큰 소리로 “중국의 어느 史書에 고구려가 중국의 변방 약소민족 국가”라는 글귀는 없다고 외쳤다. 고구려에 대한 중국공산당 역사관의 실체가 처음 남북한 및 일본 등의 학자들 앞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2년 중국의 동북공정을 공식화하기 10년 전의 대사건이었다.

휴식시간에 박문일 총장은 정인갑 교수를 보고 괜한 질문을 했다면서 몹시 언짢아했다. 세 번째 발표자인 이형구 교수는 “광개토대왕릉비문중 변조된 신묘년 기사의 ‘倭’자는 酒匂景信 일당이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을 만들 때 원래의 ‘倭寇大潰’를 일본에 유리하도록 석회를 발라 ‘倭滿倭潰’로 바꾸어 놓았다”고 주장했다.

북한 사화과학원 강인숙 교수가 발표한 논문은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B. C. 277년으로 보는 관점은, 1989년 연변대 ‘제1회 조선학국제학술회의’에서 3자의 의견이 합의된 ‘고구려 건국연대를 적어도 B. C. 3세기 이전으로 보아야 한다’는 연변대학의 강맹상, 북한의 박진욱, 한국의 이일걸 3인의 주장과 매우 근접하다는 사실이었다. 강인숙은 그 근거로 주몽의 즉위년인 갑신년과 누락된 5대왕의 통치년 수 및 ‘당회요’에 인용된 ‘고구려비기’의 ‘유국 900년설’을 들었다.

광개토대왕비문의 별체자(別体字)에 대한 논문은 8개 유형의 별체자를 분석했다. 같은 자를 다르게 표현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토론자인 서강대 이종욱 교수는 비문의 별체자는 같은 자의 이체자(異体字)가 아니고 전혀 다른 자의 별체자로 보아야한다는 반론을 제기했다.

박진석 교수의 논문에 대한 단국대학의 이호영 교수의 질의 내용은 광개토대왕릉비의 같은 자의 다른 형태는 오자가 아닌 같은 자일 수도 있고 글쓴이가 미학적으로 쓴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고자(古字)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고구려가 한자를 수입해서 사용했다는 박진석 교수의 주장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 고고학적으로 산동지역의 도편이나 갑골문자의 연대와 요하지역 문화도 황하지역이나 반파지역 보다 1000년이 앞섰다는 중국학계의 발표로 봐서 한자를 만든 이는 창힐(蒼頡)이며, 창힐 문자와 고조선 문자가 동일한 자임이 밝혀졌다. 따라서 한자는 동이(東夷)인과 서화(西華)족이 함께 사용하며 각기 발전시켰다고 봤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는 한자를 동방문자로 불러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점에 대한 박 교수의 견해를 듣고자 했다.

토론자인 이종욱 교수의 반론에 대해 재반론을 제기한 나에게 사회자인 연변대학 강맹산 교수가 발언권을 주었다. ‘광개토대왕릉비문 중의 별체자는 같은 자의 이체자’라는 박진석 교수의 이론에 대한 이종욱 교수의 반론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즉 광개토대왕릉비문는 고구려의 명문장가가 글을 짓고 최고의 명필가가 글씨를 썼다. 서예가는 가능한 같은 글자라도 글씨체를 같게 쓰지 않고 다르게 쓰는 게 불문율이다. 마치 한시(漢詩)의 칠언 율시 중 56자의 한자(漢字) 중 같은 자를 사용해 품격이 떨어지기 때문에 동일한 글자를 쓰지 않고 같은 뜻의 다른 글자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원칙이다. 이와 같이 광개토대왕릉비문 역시 예술의 불문율을 지켜, 이 비문의 별체자는 같은 글자의 이체자라는 박진석 교수의 이론이 맞다고 재 반론했다.

10분간의 휴식 후 ‘유적지의 유물의 과학적 보존방법에 대해 한국과학기술원 실장과 한국문화재관리국 학예연구관인 안희균의 발표 후 점심식사를 했다. 오후에는 길림성 사회과학원 연구소장인 양소전의 사회로 발표자 및 토론자의 토론 및 답변이 있었고 10분 휴식후 종합토론(자유토론)이 있었다.

이 시간에 연변대학의 나이 젊은 이종훈 강사가 북한의 팔순이 넘은 박시형 박사에게 질문을 했다. 왜 광개토대왕릉비에는 대 중국관련 기사가 없었는지 답변을 요구했다. 이에 박시형 박사는 오래전 쓴 글이라서인지 기억을 더듬고 나서 “아마 중국과 관련이 없었기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라고 답변했다.

이종훈 강사의 질문에 대한 박시형 박사의 답변 내용은 매우 미흡해, 다시 사회자에게 이에 대한 보완 설명이 필요하니 발언권을 요청해 발언할 수 있었다. 광개토대왕릉비문의 대 중국관련 기사에 대해서는, 단재 신채호선생의 저서인 ’조선상고사‘에 1920년대 단재가 집안을 방문하는 중에 만난 영자평(英子平)이라는 소년의 이야기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왜 광개토대왕의 선비 정벌에 대한 기록이 없느냐는 질문에 영자평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비가 풀밭 속에 묻혔다가 최근 영희(榮禧)가 이를 발견하고 그 비문 중에 고구려 - 토지를 침탈한 자구(字句)는 모두 도끼로 쪼아내고 인식할 만한 자구가 없어진 곳이 많다, 그 뒤에 일본인이 이를 차지해 영업적으로 비문을 박아 팔매, 왕왕 자구가 마모된 곳에는 석회를 발랐으며, 진실한 사실은 삭제되고, 위조한 사실이 첨가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능비에 대 중국관련 기사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본래 있었지만 쪼아내고 석회를 발라 왜곡시켰기에 없어졌다. 그 부분이 광개토대왕의 대외 정복 사업 연대와 같다고 했다.

이번 학술세미나에는 남한의 교수들도 많이 참석하였지만 연변대학에 근무하는 안면이 있는 젊은 학자들도 많이 참석했다. 내일의 둘째 세미나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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