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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과 메카, 로마… 3대 유일신 종교는 인류를 살리려 聖地를 비웠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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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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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남식 /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전 세계적 전염병 창궐, 모든 종교 집회·행사·전통 심각한 타격
비었지만 공허하지 않다. 안전을 위한 공동 노력의 상징이기에
신이 주는 본질 회복 기회 아닐까, 종교의 가치는 사람이라는…

   
 

이슬람 성지 메카. 하람 대사원이 텅 비었다. 순례객으로 늘 북적이던 곳이다. 무슬림들은 어느 곳에 있든지 메카 방향을 찾는다. 하루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하며 순례를 꿈꾼다. 하지만 사우디 왕실은 성지 출입을 막았다. 올 7월 대순례도 취소할지 모른다는 소문이 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올드시티 성전산. 통곡의 벽 광장 역시 휑하다. 검은 옷 입고 귀밑머리 내린 초정통파 유대교 종교인(하레디)들이 삼삼오오 모여 기도하던 곳,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며 경전 토라를 읽던 곳이다. 너른 광장 위로 비둘기만 날고 있다.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 광장과 예루살렘 성묘교회. 구세주가 태어나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곳이기에 기독교인들이 그리워하는 곳이다. 지금은 인적이 드물다. 모두 코로나19가 가져온 생소한 풍경이다.

잔인한 4월, 모든 종교 숨을 죽였다

바이러스는 3대 유일신교인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의 성지를 비워냈다. 전쟁 때도 순례객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성지의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섞인 바이러스의 공포는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올해 4월은 종교에 잔인한 달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4월 8일부터 16일까지 유월절(passover)을 지냈다.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학정에 신음하던 히브리인들이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나기 전 겪었던 기적을 기념하는 절기다. 유대인에게 출애굽은 정체성의 근원이다. 이방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하는 민족사의 극적 장면을 간직한 해방의 날이기도 하다. 이때가 되면 옛 전통에 따라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굽고 저녁마다 성대한 만찬을 한다. 그러나 올 유월절은 달랐다. 이스라엘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 미무나(Mimouna)라고 하는 유월절 이후 잔치를 최소화하도록 집마다 통제했다. 회당에 모여 토라를 읽으며 절기를 기념하는 집회도 통제했다. 파라오의 역병이 아닌 21세기의 역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4월 12일은 기독교의 핵심 절기인 부활절이었다. 대개 성탄절이 더 크고 화려하고 밝은 절기로 비치지만 본질상 기쁨과 슬픔이 혼재한 날이다. 아기 예수가 죽음을 위해 이 땅에 성육신한 날이기 때문이다. 반면 부활절은 순수한 기쁨과 승리의 절기다. 고난과 죽음을 이긴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대교의 유월절처럼 올해 기독교의 부활절도 코로나19를 피하지 못했다. 바티칸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 부활절 미사를 성도들의 참석 없이 집전했다. 코로나 사태로 피해가 극심했던 밀라노의 두오모 대성당에서는 부활절 밤 색다른 공연이 열렸다. 오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홀로 노래를 부르며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모든 성도를 위로했다. 많은 개신교회도 '모이는 예배' 대신 '흩어지는 부활의 예배'를 드렸다. 부활을 믿지만 동시에 이 땅 공동체의 건강과 안전도 책임져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고민이 담겼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략 오는 24일 금요일에 이슬람권에서는 라마단이 시작된다. 인류에게 코란이 계시된 날을 기념하며 무슬림들은 한 달간 금식한다. 이슬람의 5대 기둥이라는 행동 규범 중 하나다. 일출과 함께 금식이 시작되고 해가 지면 모여서 함께 예배한 후 곧이어 하루의 이프타르(Iftar) 만찬을 나눈다. 라마단의 현대적 의미는 금식을 통한 약자의 고통 이해와 연대다. 그러므로 매일 밤 만찬은 흥겹고 푸짐하다. 여유 있는 이들이 음식을 베풀고 함께 나누어 먹는 공동체의 축일이다. 특히 라마단 기간 밤에 별도로 드리는 타라위(Tarawih) 특별 기도는 알라 앞에서 공동체의 경건을 모으는 시간이다. 라마단만큼 이슬람 공동체의 속 깊은 결속과 연대의 정서를 다지는 시간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올해 라마단은 함께 모이기 힘들 듯하다. 이슬람권 각국 정부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올해 이프타르 만찬 및 공동 예배를 금지할 것으로 보인다.

종교는 성지·제도 아닌 사람이다

감염병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종교 집회가 주목받고 있다. 이스라엘 초정통파 유대교 공동체에서 대규모 감염이 일어났고 종교인인 야코브 리츠만 보건부 장관이 확진받기도 했다. 그는 이스라엘 방역 책임자다. 인도의 한 무슬림 집회가 바이러스 확산의 온상이 되면서 인도 사람들은 종교 집회를 걱정하고 있다. '신이 바이러스보다 강하다'며 예배를 강행한 미국의 한 성직자가 감염되어 숨졌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바이러스는 모든 종교를 강타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수천 년 내려온 절기의 전통을 중단시켰다. 순례객으로 그득해야 할 메카와 예루살렘은 적막하다. 소중한 전통과 제의를 지키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신도들은 상심할지 모른다. 그러나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신이 주는 본질 회복의 기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 걸고 지키려 해 온 종교의 가치가 성지나 조직이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담담히 성찰할 때가 아닐까? 그렇기에 비어 있는 메카의 모스크와 예루살렘 성전 통곡의 벽과 로마 베드로 성당 그리고 세계 곳곳 교회의 모습은 묘한 감동을 준다. 물리적으로는 비어 있지만 공허하지 않다. 빈 공간은 사람의 안전을 위한 공동 노력을 상징한다. 신도 간 거리 두기와 공간의 비움을 통해 유월절의 해방, 부활절의 생명, 그리고 라마단의 연대를 종교별로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비움이 곧 영성인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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