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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노믹스, 우리의 불길한 미래인가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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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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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덕 / 논설실장

日 쇠퇴 막으려는 몸부림
우리는 뭘 배울 것인가
그저 따라할 것인가

   
 

아베 신조가 일본 최장수 총리의 장정을 시작하기 직전인 2012년 초 당시 자민당 중의원이던 마치무라 노부타카를 만났을 때였다. 그는 한국을 보면 두 가지가 부럽다고 했다. 일본 총리가 해마다 바뀌는 것과 달리 한국 대통령은 5년 동안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 수 있다는 점이 부럽고, 일본은 5%인 소비세율을 올려야 해서 노심초사하지만 한국은 처음부터 부가가치세율을 10%로 정할 수 있었다는 점이 부럽다는 것이었다. 그는 당내 최대 계파 수장으로서 아베와 총재 경선에 나섰다 패했다. 잠시 중의원 의장을 지낸 후 2015년 별세했다. 하지만 아베는 마치무라가 부럽다고 한 일을 다 했다. 개헌을 못해 `장이 끊어지는 느낌`이라고 했지만 민주화된 한국의 어떤 대통령보다 오래 집권했고 소비세도 10%로 올렸다.

그는 외교나 개헌보다 저돌적인 경제 정책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공격적 통화 살포와 재정 확대, 구조 개혁이라는 세 가지 화살로 표현되는 아베노믹스는 고령화와 디플레이션으로 `우아한 쇠퇴`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던 일본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몸부림이었다. 아베노믹스는 레이거노믹스만큼이나 유명했다. 사실 선진국 경제는 대부분 `일본화`하고 있다. 늙어가는 인구와 꺼져가는 성장 동력으로 고민하는 나라들은 아베의 실험을 자기 일처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한국의 관심은 각별했다. 물론 아베 정부의 공격적 통화 살포가 근린궁핍화 효과를 내기 때문이기도 했다. 2012년 말부터 지금까지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21% 절하됐다. 실질실효환율로 따지면 이 기간 엔화 가치는 16% 가까이 떨어지고 원화 가치는 1% 올랐다. 일본 기업과 가장 치열하게 맞붙는 한국 기업들은 그만큼 혹독한 담금질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가 아베노믹스의 성패를 예의주시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한국 경제의 일본화 속도는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우리는 인구 감소와 디플레이션의 악몽이 엄습할 때마다 일본을 돌아봐야 한다.

지난 8년간 밀어붙였던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나는 부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실패라고 본다. 아베 정부는 당초 2년 안에 2% 인플레이션 목표를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성장률도 2%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물가는 줄곧 0%대에 머물렀다. 올해는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성장률은 평균 1% 남짓했다. 기업들은 벌어들인 돈을 그냥 깔고 앉아 있다. 실업률은 2%대로 떨어졌지만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물론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을 끊고 미약하나마 성장을 이룬 것은 결코 적지 않은 성과다. 하지만 그를 위해 퍼부은 가공할 화력과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아베 집권 기간에 일본은행이 돈을 풀면서 사들인 자산은 1조8000억달러에서 6조3000억달러로 폭증했다. 일본은행이 사준 국채만 국내총생산(GDP)의 100% 가까이 된다(이 비율은 미국 연준의 5배다). 정부는 GDP의 240% 가까운 빚을 지고 있다. 지금처럼 금리가 제로이거나 마이너스일 때는 아무 문제가 없다. 정부와 기업은 공짜로 돈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공짜는 언젠가 비싼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영원히 공짜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판타지를 믿지 않는 한 아베노믹스의 화살도 어느 순간 바닥이 나리라고 봐야 한다. 그 전에 확실히 과녁을 맞혀야 한다.

아베의 실험은 재정과 통화정책으로 아무리 돈을 뿌려도 인적 자원과 혁신 역량을 늘리고 제도 개혁과 구조조정을 이뤄내지 못하면 반짝 효과에 그친다는 걸 보여줬다. 우리는 그들의 실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 경제가 일본보다 내공과 저력이 약하다면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경제는 갈수록 일본을 닮아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결국 아베노믹스와 같은 절박한 베팅에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아베노믹스는 우리의 불길한 미래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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