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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미쓰비시, 中 강제징용 피해자에 첫 보상금 지급…"불법은 인정 안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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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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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 / 기자

中 징용 피해자 30명,1700만원씩 첫 보상
3785명 집단 소송, 합의 4년 만에 지급
변호사 "경제적 보상 불과, 불법성 부인"
"韓 대법원 '개인청구권 유효' 판결 정당"

   
▲ 2014년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제출된 중국 강제징용 피해자 사진. 1944년 9월 일본에서 촬영됐으며 '미쓰비시 마크가 들어간 모자를 쓴 사람 이외에는 강제 연행된 중국인 노동자들'이라고 적혀 있다. [동이밍 변호사 제공]

중국 산둥성 지난시보(濟南時報)는 지난 7일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이 2차 대전 중 강제로 끌고 간 중국인 30명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했다고 보도했다. 유가족 30명은 1인당 10만 위안(1700만원)을 받았다. 일본 전범 기업 미쓰비시가 중국인에 처음 내놓은 보상금이었다.

류환신(劉煥新) 산둥성 강제징용피해자연합회 회장은 “비록 액수는 크지 않지만, 이는 수십년간 이어져 온 문제 제기를 통해 얻어낸 결과”라며 ”전쟁이 불러온 죄악과 범죄가 잊혀져선 안 되며 향후 미쓰비시의 ‘흑역사’를 밝혀나가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7일 중국 산둥성 지난시에서 강제징용 피해 유가족 30명이 미쓰비시 중공업으로부터 1인당 보상금 10만위안(1700만원)을 처음 지급받았다. [치뤼망 캡쳐]

그동안 보상을 받기까지 과정은 길고 험난했다. 중국 정부는 1972년 ‘일ㆍ중 공동성명’에서 전후 보상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으며 문제를 비껴갔다.

민간에서 문제 제기가 이뤄진 건 1990년대 들어서다. 1944년 9월 일본군에 의해 33세의 나이로 고향 산둥성에서 일본의 미쓰비시 광업주식회사의 한 광산으로 끌려갔던 류롄런(劉連仁)이 1996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최초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도쿄 지방법원은 2001년 7월 그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 정부가 전후 구제의무를 위반했다며 유가족에게 2천만 엔(2억 원)의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그러나 4년 뒤 도쿄 고등법원이 판결을 뒤집었다. 2007년 대법원은 원심을 확정하며 중국이 청구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배상 책임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후 대법원 판결은 여타 중국 피해자들의 줄소송에 인용되며 전부 기각되는 근거가 됐다.

   
▲ 1944년 중국인들이 강제 징용돼 작업했던 일본 규슈 미야자키현 미쓰비시광업주식회사가 운영하던 작업장 배치도. [동이밍 변호사 제공]

반전의 계기는 중국 정부의 개입이 시작되면서다. 2014년 중국 인민 항일전쟁박물관이 일본 강제징용 대상자 3만4282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종전 70년을 앞두고서였다.

산둥성에서 끌려간 사람만 9177명. 그해 2월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소송이 재개됐다. 사망자 722명을 포함한 3765명의 유가족이 원고로 참여했다. 생존자는 단 4명, 10대 때 일본에 끌려갔던 80~90대 노인들이었다. 이들은 노구를 끌고 도쿄 법정에 나가 자신들이 겪은 강제노역의 참상을 증언했다.

   
▲ 일본 미쓰비시 광산에 강제 징용된 중국인 허쉐진(何學勤). 허씨는 2016년 소송 제기 당시 생존해 있었으나 이후 2017년 사망했다. [동이밍 변호사 제공]

미쓰비시 측은 결국 2016년 6월 원고 측과 합의를 성사시켰다. 피해자 3765명에 대해 1인당 10만 위안(1700만원)을 지급한다는 조건이었다.

법원의 판결은 나오지 않은 채 소송은 종결됐다. 합의서에는 "중국 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성실히 인정한다"는 문장과 "깊은 반성", "심심한 사과"란 표현이 들어가 있다고 당시 중국신문망은 전했다. 미쓰비시 측은 보상금 외 1억엔(10억 원)을 기념비 건설비로 제공하고, 실종자·피해자 조사비로 2억 엔(20억)도 지급하기로 했다.

   
▲ 소송 변호를 맡은 동이밍(董一鳴) 대표 변호사는 11일 본지와 화상 인터뷰를 했다. 그는 1996년 첫 소송부터 지금까지 24년간 중국 강제 징용 피해자 변호를 맡아왔다. [박성훈 특파원]

11일 소송 변호를 맡은 동이밍(董一鳴) 대표 변호사를 중앙일보는 인터뷰했다. 그는 96년 첫 소송부터 지금까지 24년간 중국 강제징용 피해자 변호를 맡아왔다.

그의 첫 반응은 중국 현지 보도는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동 변호사는 “이번 미쓰비시 합의금 지급은 중요한 두 가지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합의를 빠르게 이행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가해 기업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손해배상을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경제적 보상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배상은 자신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반면, 보상은 적법하지만, 상대에 피해를 끼쳐 이를 물어줄 때 사용된다.

동 변호사는 ”미쓰비시 측이 보상금을 지급하면서 보낸 화해합의서에는 ‘배상’이란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며 “또 이를 외부에 공개하지도 않는 등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돈만 내놔 사실상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 변호사는 한·일간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와 관련,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지지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대법원은 2018년 한·일 국가간 협정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개인의 배상 청구권은 유효하다는 취지로 판결했고, 일본은 역사적 협정을 뒤집었다며 지금도 반발하고 있다.

동 변호사는 “2차 대전 당시 벌어진 반인륜 범죄와 인권 침해가 과연 양국간 합의 방식으로 법적 책임을 종결시킬 수 있는 문제인가”라며 “한국이 법 해석을 통해 과거 협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일본 기업의 한국 재산 압류에 나선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

   
▲ 중국 산둥성 지난시보는 지난 7일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이 2차대전 중 강제로 끌고간 중국인 30명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했다고 보도했다. [지난시보 캡쳐]

동 변호사는 이 같은 한국의 움직임을 중국도 주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한국의 움직임은 중국 법조계에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며 "적어도 중국 변호사계는 한국 법원의 이런 법 집행 과정에 동의하고 있다. 향후 중국 강제징용 피해 노동자들의 소송을 추진하는데 본보기가 되고, 추진력을 더해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가장 안타까운 일이 무엇인지를 묻자 "소송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살아계셨던 생존자들이 지금 아무도 남아있지 않는다는 점"이라면서 "너무 늦게 시작했고,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점"이라고 했다.

   
▲ 박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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