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섭 /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선발주자 따라잡는 것은
대주주의 역량과 비전
벤처기업 육성 말만 요란
`3% 룰`같은 제약적 풍토에
혁신적 기풍 깃들기 어려워

`코로나 블루`를 보내면서 뜻밖의 행복은 K팝과 K비즈니스의 세계적 약진을 바라보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는 넷플릭스 드라마 인기 톱10에 K드라마가 5~6개씩 포함된 적이 종종 있다. BTS는 노래와 춤으로 세계 최고 반열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가전에서 계속 선두를 질주한다. 현대차는 파격적인 전기차를 내놓으며 테슬라 추격에 고삐를 당겼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눈에 띄는 K비즈니스의 약진은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이다. 많으면 55조원 규모로 한국 기업 중 최대 규모의 해외 상장이 될 전망이다. 뉴욕으로 직상장한 경우도 처음이다. 앞으로 실제 사업이 시장의 기대를 쫓아갈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하지만 쿠팡의 상장은 BTS와 비슷한 후발주자 세계화 전략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BTS는 K팝의 후발주자였다. 엔터업계의 선두주자인 JYP나 YG 등과 국내에서 직접 경쟁하기에는 많이 늦었다. 해외 진출도 늦었다. 대신 오지라고 할 수 있는 중남미에 뛰어들어 발판을 구축했다. 중남미 성공을 바탕으로 라틴계 미국인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면서 미국 시장에서 세계적 성공을 거두었다. 후발주자의 역전극이다.

쿠팡도 국내에서는 네이버 등에 한참 뒤지는 후발주자다. 사업 영역도 좁다. 지난 10년간 영업이익을 낸 적도 없다. 그렇지만 뉴욕 투자자들에게 높이 평가받으며 선두주자로 나설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로켓 배송`이라는 독보적 역량이다. 전 세계 이커머스 시장은 아마존과 알리바바의 양대 산맥이 자웅을 겨루고 있고, 나머지 업체들이 그 틈에 끼어들려고 각축하는 상황이다. 아마존은 미국, 유럽, 일본, 인도에서 1등이다. 알리바바는 중국과 주요 동남아 국가에서 1등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알리바바가 최대주주인 라자다가 1등이다.

뉴욕 투자자들은 쿠팡의 역량을 자금력으로 받쳐주면 다른 이커머스업체보다 더 신속하게 배달해줄 수 있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세계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고 할 수 있는 한국에서 성공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이 역량을 복제해서 확장하기 쉽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둘째는 대주주의 역량과 비전이다. 쿠팡이 뉴욕에서 인정받는 데는 벤처 투자의 대부 격인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의 역할이 크다. 쿠팡은 후발주자의 약점을 세계적 대주주가 들어와서 극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벤처업계에는 영업이익을 차곡차곡 쌓은 다음에 그것을 기반으로 회사를 상장하는 전통적 방식이 별로 통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계속 쓰고 적자를 보더라도 비즈니스 기반을 넓힌 뒤 성장 가능성을 투자자들에게 인정받아 주식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하고, 그 과정에서 끌어들인 자금으로 추가 확장하고 사업의 내실을 다지는 방식이 주류가 되어 있다. 이 벤처 투자 게임에서 비전펀드의 성과가 축적되어 있으니까 뉴욕 투자자들이 쿠팡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벤처기업을 육성한다고 겉으로만 요란하게 정책을 내놓을 뿐 사업을 길게 보며 경영진을 진득하게 밀어줄 수 있는 대주주의 역할에 대해서는 완전히 눈감고 있다. 오히려 `3% 룰`과 같이 대주주를 무조건 `나쁜 놈` 취급해서 주주권마저 제약하는 비상식적 법을 집행한다. 정말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면 K커머스나 K팝의 세계적 성공을 제대로 분석하고 그에 걸맞은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굴지 말고 세계 무대에서 약진하는 기업인, 엔터테이너들의 눈높이에 맞춰 넓은 세상을 제대로 보고 행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