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이 괴한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21세의 백인 남성인 용의자는 17일(현지시간) 조지아주 애틀랜타 근교 체로키 카운티의 마사지숍과 애틀랜타 시내의 스파 두 곳에서 충격적인 살인극을 벌였다. 사망자 중 6명은 아시아계이다. 용의자가 페이스북에 중국 혐오 글을 올린 점,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듯 아시아계가 운영하는 3곳의 업소를 약 1시간에 걸쳐 차례로 찾아가 범행을 저지른 점, 마사지숍이나 스파가 아시아계의 상징물로 여겨지는 미국 내의 분위기, 범행 당시 용의자가 '모든 아시아인을 죽이겠다'고 말했다는 목격자의 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 범죄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현지 수사당국은 범행 동기와 관련해 성 중독이나 아시아계 혐오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용의자가 인종적 동기로 범행한 것은 아니며, 자신이 성 중독 가능성 등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진술했다는 이유에서다.

애틀랜타, 로스앤젤레스(LA) 등지의 한인회와 미국 의회의 한국계 의원들은 이번 참사가 증오 범죄일 가능성이 큰데도 경찰이 범행 동기를 성 중독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인종 문제와 관련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미국 경찰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실상이 드러나야 해결책도 나올 수 있다. 미국 수사 당국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건의 전모를 명명백백하게 밝혀줄 것으로 촉구한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점은 인종 혐오 정서가 미국 사회 일각에 엄연히 똬리를 틀고 있고 '트럼피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미ㆍ중 무역 전쟁 등이 겹치면서 더욱 확산할 조짐까지 있다는 것이다. 정신적인 이유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직접적인 범행 동기일 수도 있겠으나 아시아계 혐오 분위기가 일정한 작용을 했을 공산은 여전히 크다. 사건이 알려지자마자 대다수가 인종 혐오 범죄로 인식할 정도로 미국 내의 아시아계 증오 분위기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한인을 겨냥한 범죄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사건 직후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으나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매우 염려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로 연대와 협력의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지금 오히려 증오와 차별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개탄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인류의 공동선을 훼손하는 미국 조지아주의 반인도적 범죄를 강력히 규탄한다. 때마침 국가정보국(DNI), 연방수사국(FBI) 등 미국의 정보당국은 인종적 이유로 촉발된 극단주의자와 과격주의자가 미국 내 테러 위협 중 가장 치명적이라면서 극단주의자의 공격이 올해 한층 더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부터 미국 내에서 증오범죄가 크게 늘었다는 보고도 잇따르고 있다. 분열 극복과 통합을 기치로 내세운 바이든 행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기대한다. 한인들의 불안감이 큰 만큼 우리 정부와 현지 공관도 미국 당국, 그리고 한인 단체들과 협력해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차제에 국내에서도 외국인에 대한 차별 정서가 심화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서울시와 경기도가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코로나 진단 검사를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데 대해 로이터 통신은 외국인 혐오를 부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는데 외국인만 코로나 감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가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바이러스는 인종을 가리지 않는다. 빈발하는 외국인 노동자 집단 감염을 막기 위한 조치이겠으나 보편적 인권의 측면에서 좀 더 세심하게 가다듬고, 배려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