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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맞는 날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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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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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숙 / 수필가

   
 

경쾌한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왔다. “나, 지금 코로나 백신을 맞고 왔어.” 건강하고 행동이 민첩한 50년 지기 친구다. 그녀의 소식이 고마웠지만 한편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은퇴한 후 코로나로 외출할 일이 없었다. 사람과 대면하지 않는 것이 최선책이라 생각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머뭇거렸다.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어 면역저하 약을 먹는 터라 선뜩 나서질 못했다. 접종에 대해 주치의와 상담을 했다. 주치의는 “부작용에 대한 염려가 많지만 백신은 정밀한 임상시험을 통해 최종 관문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안심하고 인터넷으로 예약을 시작했다. 망설이는 동안 골든타임을 놓친 탓일까. 예약이 힘들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여러 차례 들어갔지만 여전히 기다리라는 문구가 떴다. 신문에서 ‘백신 대란’이라는 타이틀을 보았다. 공급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라고 했다. 2차까지 이뤄지려면 아마득했다. 내가 벌써 접종 제2차 순위인 고령 노약자가 됐음을 실감했다.

아침을 먹으며 혹시나 전화기를 보니 이메일이 왔다. 예약할 수 있으니 스케줄을 잡으라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식탁에서 부리나케 예약했다. 장소는 알리소 비에호 소카 대학으로 잡혔다. 차례가 왔다는 기쁨 뒤에 염려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면역력이 없는 나로서 생존하고 싶은 솔직한 반응일 것이다.

당일 아침 일찍 딸이 동행해줬고, 손자도 할머니의 안전한 백신 접종을 위해 기도했다고 했다. 알리소 캐년 산자락에 위치한 넓은 캠퍼스를 향하는 길은 한산했다. ‘산속으로 길을 잘못 들었나’ 생각하는 사이에 긴 줄을 이룬 차량이 눈에 띄었다. 줄을 서서 신원 확인을 마치고, 빙글빙글 돌며 큰 강당에 도착했다.

화이자 코로나 백신 접종을 했다. 다음 접종 또한 3주 후 같은 시간으로 예약했다. 부작용 점검을 위해 15분간 대기한 후 안심하며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안개가 걷힌 캐년의 등선이 푸르른 빛을 더해줬다. 팔이 뻐근하고 몸이 추운 증세가 나흘 동안 계속되다 사라졌다.

한 달 후에 정기 검진이 있어 피검사를 했다. 백신을 맞은 후 항체가 얼마나 생겼는지 궁금했다. 검사 결과 항체가 생기지 않았다고 했다. 복용하는 약 때문이니 꼭 2차 접종을 하라고 의사가 당부했다. 기대가 무너졌다. 실망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다음을 기약했지만 접종 날짜가 10일 뒤로 연기됐다. 기다리다 보니 기회가 왔고, 2차 접종까지 마쳤다. 이제 가족과 이웃에게 폐 끼칠 염려가 없으니 홀가분하다. 집단면역을 위해 나도 한몫을 했다고 할까?

백신은 선물이다. 백신이 개발되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온 세계를 옭아맨 죽음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이 틀림없다. ‘미생물에 대한 자기방어'라는 면역을 정의 이상의 넓은 의미로 생각해 본다. 잘 살고, 잘 늙어가기 위해 노년기 건강 관리가 필요하다. 신체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명상과 유산소 운동으로 긴장을 완화해 주고, 즐거운 취미 활동으로 우울, 불안감을 방지해야 한다. 면역으로 세상의 바이러스와 대결해 버텨내길 원한다. 더불어 정신과 마음의 면역력을 어떻게 기를까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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