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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독립지사 묘역,친일파와 분리된 독자적인 묘역을 조성해야
유로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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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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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독립전쟁사에 한 획을 그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1943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서거한 지 78년 만에 국내로 봉환되어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비록 많은 늦은 감이 있지만 '거룩한 장군의 귀환'은 그 의미가 매우 크며, 지금까지 독립지사에 대한 예우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홍 장군은 가난한 평민 가정에서 태어나 1895년 을미사변을 계기로 의병 활동 등 항일운동에 뛰어들었고, 1910년 국권 상실 뒤엔 1911년 연해주로 망명해 조선 접경지대를 무대로 국경을 넘어 일본군을 습격하는 등 무장투쟁을 벌였다.

3.1 운동 이듬해인 1920년 봉오동 전투를 이끌며 일본군 157명을 사살하고 300여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전과를 올렸고, 그해 10월에는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청산리 전투에 제1연대장으로 참가하여 압승에 기여했다.

총을 들고 싸우며 항일무장투쟁사에 빛나는 전과를 남기고 민족의 존엄을 과시한 장군은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연해주로 이동했다가 광복 2년 전인 1943년 10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사이 부인과 큰 아들, 그리고 두 번째 부인과 아들 모두 일제의 고문으로 숨지는 비극이 이어졌다.

1937년 소련 스탈린 정권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옮겨가 현지 고려인 사회의 오랜 ‘정신적 지주’로 추앙받아왔지만, 냉전 시기 국내에서는 우익 계열 독립운동 지도자들에게 밀려 업적에 합당한 조명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번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계기로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독립운동가가 재조명되어야 하고, 아직도 해외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찾고 되살리는 일은 분단으로 인한 이념 대립을 뛰어넘는 일이어야 한다.

특히,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지향했던 생의 궤적을 억지로 지우거나 왜곡하는 식의 편협함은 이제 버려야 한다.

홍범도 장군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했고, 레닌을 직접 만나 권총을 선물 받은 일화도 유명하다. 항일독립운동 당시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념을 넘어 협력하며 일제 군국주의에 맞서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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