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석 / 뉴욕뉴저지유권자센타 소장 ]


“투생 루베르튀르”는 아이티의 흑인 독립군 지도자다. 이름의 의미는 ‘모든 성자들의 각성’이란 뜻이다. 1794년, 프랑스가 해외 식민지에서 노예제를 폐지한다고 발표하자 ‘투생 루베르튀르’는 프랑스에 대항하던 독립항전을 프랑스와 협력하여 아이티에서 스페인과 영국군을 몰아냈다. 이어서 ‘투생 루베르튀르’는 자유·평등·박애의 이념을 갖춘 볼테르의 프랑스 혁명사상에 감명을 받고서 노예해방과 아이티의 독립을 위해서 프랑스군과 협력했다.

그러나 프랑스 본토의 나폴레옹은 생각이 달랐다. 아이티를 식민지화하여 그곳을 교두보로 하여 북미대륙에서 영국을 몰아낸다는 야심을 품었다. 아이티의 원주민과 흑인들은 다시 2만 명의 나폴레옹 군대와 싸워야 했다. 독립군 지도자 ‘투생 루베르튀르’의 뛰어난 지략과 판단력으로 나폴레옹 군대는 점점 패색이 지터졌다.

그들은 속임수를 썼다. 프랑스의 지휘관은 ‘투생 루베르튀르’와 단 둘이서 평화논의를 한다고 정중히 초대를 했다. ‘투생 루베르튀르’는 그 초대에 응했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프랑스로 압송되었다. 나폴레옹은 그를 스위스 접경지역의 험준한 산중에 만들어진 감옥에 가두었다. 아이티 독립의 위대한 지도자인 ‘투생 루베르튀르’는 나폴레옹의 감옥에서 고독과 추위에 떨다가 1803년 4월 7일 폐렴으로 죽었다.

루베르튀르는 옥사했지만 흑인 독립군들은 결사 항전하여 결국에 프랑스 군대를 몰아냈다. 1804년 1월 1일 독립을 선포하고 공화국의 이름을 ‘높은 산’이란 뜻을 지닌 원주민어 ‘아이티’로 지었다. Haiti는 프랑스식 발음으로 ‘아이티’(한국에서는 이렇게 부른다)라 하지만 미국에서는 헤이티[heiti]라고 발음한다.

식민제국주의에 맞서 무력항쟁으로 독립을 쟁취한 신생 아이티 공화국의 그 이후 앞길은 그야말로 험난했다. 심지어 미국은 남부 농장 지대의 흑인 노예들이 봉기할까봐 아이티를 60년 동안 나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운 프랑스는 1825년 다시 아이티를 침공했다.

아이티의 독립으로 인하여 프랑스가 1억5천만 프랑의 손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며 이를 물어내라고 협박을 했다. 당시 프랑스가 미국에게 루이지애나를 8천만 프랑에 팔았으니 1억5천만 프랑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이다. 이 돈을 아이티는 1948년에 가서야 모두 갚았다. 143년 동안 빚을 갚은 것이다. 19세기 말에는 나라 예산의 80%를 프랑스에 바쳐야 했다.

독립은 했어도 정부에 돈이 없으니 외국 상인들이 경제의 실권을 장악했다. 아이티가 개혁을 시도하려 할 때마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은 방해를 했다. 아이티의 민족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이들 국가들은 변란을 일으켜 자기들의 이익을 대변해 줄 아이티인 매판세력을 키웠다. 200년 동안 무려 32번의 쿠데타가 외세의 사주에 의해서 일어났다.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하여 약소민족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미국의 윌슨 대통령도 1915년 아이티를 침공해서 식민지화 했다.

중남미 국가들의 민족해방운동을 우려한 미국은 아이티를 독립 공화국으로 인정한 후에도 계속해서 ‘반공의 요새’라 부르면서 아이티의 철권적인 친미 독재정부를 지원했다. 그 악명 높은 30년간의 철권통치 독재자 뒤바랄리에 부자 대통령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귀에는 “파파독, 베베독”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아이티에 그나마 서광이 비추어진 것은 1980년대 중반에 횡행한 카돌릭계내 해방신학의 영향이었다. 가톨릭 신부이며 해방신학의 신봉자인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복음도 중요하지만 가난 퇴치가 우선”이라고 주장하면서 비폭력과 화해를 슬로건으로 정치권에 들고 나왔다. 그가 1990년 말 아이티 국민의 절대 다수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지진 발생 후 대통령궁을 장악한 미군 (사진출처 : 연합뉴스)

경제운용을 독점하고 있는 친미 매판세력들이 그냥 둘리가 없었다. 아이티 군부는 1991년 9월 쿠데타를 일으켜 아이티를 빨갱이 나라로 만들고 있다고 공격을 퍼부으면서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몰아냈다. 이 과정에서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사수하려는 수천 명의 아이티 국민들이 군인들에게 학살당하기도 했다.

1994년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UN은 아이티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합법적 대통령으로 인정받는 아리스티드를 대통령직에 복귀 시켰다. 아리스티드 대통령은 연임제한에 걸려서 물러났다가 2000년 말 대선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다시 대통령에 당선 되었다. 2001년 부시 정부가 집권 후 아리스티드의 좌파 성향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미국 정부는 아이티에 가혹한 경제 제재조치를 취했으며 각종 국제기구에도 압력을 가하여 아이티에 대한 경제원조와 차관을 막았다.

또한 부시 행정부는 암암리에 아리스티드 반대파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며 아리스티드 정부를 교체하려는 공작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었다. 오늘날 아이티의 정부가 이렇게 최악의 상황이 된 것은 미국의 경제제재와 국제금융기관의 차관 봉쇄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아이티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필자는 어제 아이티의 지진 참사의 현장을 취재차 다녀온 후배 특파원을 만났다. 오죽 했으면 그가 울먹이면서 현장을 이야기 했겠는가……. 자연재해인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아이티는 외세와 그 매판세력들이 걸핏하면 일으킨 인공 지진으로 풍비박산이 난 나라였다. 미국이 앞장서서 복구와 재건을 입에 담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아무도 그것을 그대로 믿질 않는다. 역사에 대한 회개와 반성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티를 위해서는 ‘기도’(진정)해야 할 일이다. 아이티 국민이 인공지진과 자연지진을 모두 이겨내고 아이티를 그들의 국부인 ‘투생 루베르튀르’의 나라로 , 그야말로 ‘모든 각성한 성자들’의 나라로 만들도록 성원하고 돕는 일은 문명국가 시민의 임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