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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만의 목소리’와 민권의 전진
미주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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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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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 논설위원

   
 

미국 민권 운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설을 하나 꼽으라면 아마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나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가 꼽힐 것이다. 1963년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 광장에서 25만 명이 모인 앞에서 그가 한 연설은 연방 의회가 1964년 기념비적인 ‘민권법’과 1965년 ‘투표권법’을 통과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그러나 이날 연단에 선 유명 인사는 킹 하나가 아니었다. 킹 목사 못지 않게 인종 차별의 장벽을 깬 흑인 여가수가 ‘그는 온 세상을 손안에 쥐고 있다’(He’s Got the Whole World in His Hands)는 흑인 영가를 불러 청중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마리앤 앤더슨이 그녀의 이름이다.

1897년 필라델피아에서 그녀는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아 공연을 하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뿌리깊은 인종 차별과 정규 교육 부족으로 인한 한계를 절감하고 있던 중 로젠월드 재단 장학금을 받아 유럽에 가는 행운을 얻는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별로 없던 유럽에서 그녀는 마음껏 재능을 발휘, 상류 사회 인사들과 교류하며 명성을 떨친다.

특히 당대 최고의 핀랜드 출신 피아니스트인 코스티 베하넨과는 각별한 우정을 쌓으며 그의 소개로 만난 핀랜드의 국민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그녀의 음악성에 빠져 집에 초대해 샴페인을 대접하고 그녀를 위한 곡을 작곡해 주기도 한다. 당대 최고의 지휘자였던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그녀의 노래를 듣고 “백년만에 한 번 들을 수 있는 목소리”라는 극찬을 남겼다. 그 후로 그녀에게는 ‘세기의 목소리’라는 타이틀이 붙게 됐다.

1930년대 유럽에서 나치즘과 파시즘의 물결이 거세게 불면서 흑인 가수의 입지는 좁아졌고 결국 그녀는 미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인종 차별은 여전했다. 후원자들은 위상에 걸맞게 수도 워싱턴의 가장 큰 공연장인 ‘헌법의 전당’에서 연주회를 열려고 했지만 이곳을 관장하고 있던 ‘미국 혁명의 딸들’(Daughters of the American Revolution)이라는 단체는 그녀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대여를 불허했다.

자유와 평등을 이념으로 내걸고 미국 혁명을 했다는 사람들 자손의 이런 모습에 실망한 영부인 엘리노어 루즈밸트는 이 협회를 탈퇴하고 대신 남편 프랭클린에게 이야기해 연방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링컨 기념관 앞에서 공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남편 루즈벨트는 “기념관 꼭대기에서 불러도 상관없다”며 흔쾌히 승낙한다.

그래서 열린 것인 1939년 4월 9일의 링컨 기념관 연주회다. 이날 행사에 현직 연방 대법관과 부통령, 장관 등 7만5,000명이 참석했고 연주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수백만명이 청취했다. 흑인 여가수가 이곳에서 공연한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 후로도 인종차별의 벽을 깨는 그녀의 행보는 계속된다. 루즈벨트 초청으로 백악관에서 흑인 여성으로 처음 노래를 부른데다 1955년에는 역시 흑인 여성 처음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공연한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다. 1937년 프린스턴대 공연 때 묵을 곳이 없자 당시 이 대학 교수로 있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자기 집에서 재워준 일화가 있다. 음악 애호가이자 인종차별 반대자였던 아인슈타인과의 우정은 1955년 그가 죽을 때까지 이어졌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젊은 시절 앤더슨의 노래를 들으며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꿨다.

그녀는 민권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유엔 인권위원회 대의원으로 뽑혔고 대통령 ‘자유의 메달’과 연방 의회의 ‘골드 메달’을 받았으며 음악성을 인정받아 ‘국립 음악 메달’과 ‘그래미 평생 업적상’을 수상했다. 앤더슨은 이처럼 많은 업적을 남기고 1993년 96년의 긴 삶을 마감했다.

오는 27일은 그녀가 태어난 지 125주년이 되는 날이다. 2월은 공교롭게 민권 향상에 기여한 사람들이 많이 태어났다. 12일은 노예를 해방한 링컨이, 14일은 노예로 태어났지만 탈출해 노예 해방 운동에 앞장선 프레데릭 더글러스가, 22일은 유언으로 자신의 노예를 모두 해방하고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돈까지 준 조지 워싱턴이 태어난 날이다. 미국이 1976년 부터 2월을 ‘흑인 역사의 달’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미국은 아직 해결해야할 인종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흑인을 노예로 부리던 건국 초기나, 노예제는 폐지됐지만 합법적인 차별이 공공연하게 행해지던 60년대 이전을 지금과 비교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은 수많은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이다. 60년대 이후 미국으로 이민와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한인들은 이달만이라도 그들의 노고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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