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홍/ 본지 발행인]

지난 2014년 한국 국세청은 인도네시아에서 여러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승은호 회장에게 1000억대의 세금을 부과했다 해서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 이유는 승 회장이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동시에 한국 거주기간이 길어 ‘한국 거주자’에 해당한다며 세금부과는 적법하다고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에서는 ‘어느 재산가가 재수 없게 걸려들었구먼’류의 반응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세계한인사회, 특히 세계유력 한상(韓商)들의 반응은 매우 민감했다. ‘아니 승 회장이 현 정권에 무엇이 밉보여서 세금폭탄 세례를 받았느냐’는 투의 격렬한 반응이 나왔다.

승 회장은 즉각 자신이 소득세법상 ‘비거주자’에 해당한다며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서초세무서장을 상대로 종합소득세 등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 재판과정에서 핵심 쟁점은 국내거주자 판단요소인 ‘중대한 이해관계자의 중심지를 어디로 볼 것인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는 해외교포가 본국에서 더 오래 살았느냐 아니면 해외거주지에서 더 오래 살았느냐를 따지자는 것이다.

지난 2018년 1심 재판부는 승 회장을 한국거주자로 판단하고 승 회장에게 부과한 1천억 중 73억만 취소해 사실상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때 승 회장은 인도네시아에서 코린도그룹을 창설하여 인도네시아 전체 20대 그룹으로 성장하다 보니 한국의 언론들이 앞다투어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유명세가 붙었고 따라서 종친회, 동창회(서울고, 연세대) 등에서 감투를 씌워주고 세계한상대회 공동의장(2007), 국민훈장 모란장(2003), KBS해외특별상(2000), 인도네시아 대통령 국가공로훈장(1994)을 받으면서 이곳저곳에서 오라는 데가 많아 여권이 너덜댈 정도로 한국 방문이 많았다는 것은 사실이었다면서 무엇보다 말띠생 O형인 자신은 역마살이 끼었는지 ‘여기 있으면 저기가 궁금하고 저기 있으면 여기가 궁금해서 한자리에 오래 있지 못한다’면서 한국 체류기간이 길다고 문제 삼아 과도한 세금을 물린다면 외국인이 알까 두렵다고 했다.

지난 2021년 9월 항소심 재판부는 승 회장은 인도네시아 거주자로 인정하고 ‘과세처분을 취소하라’고 판단했다. 현행법상 국내 거주자 판정 요건은 183일 이상 국내 체류가 관건인데 승 회장은 연평균 128일가량 한국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조세 조약상 승 회장은 한국과 인도네시아에 일상적 주소를 두고 있던 인도네시아 거주자로서 소득세 납부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022년 2월 11일 대법원 특별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승 회장이 서초세무서장을 상대로 ‘과세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승 회장의 세금파동은 7년만의 최종 확정으로 ‘세금부과는 무효다’라는 의미다.

▲ 인도네시아 코린도그룹 승은호 회장.[자료사진]

필자는 금번 승은호 회장의 대법원 확정판결을 지켜보면서 사건의 전후 사정 보다는 이면을 더욱 주시해 왔다.

“지난날 한국의 정치사가 나를 그렇게 단련시켜주었는지도 모른다.” 승은호 회장은 말한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 단돈 130만불 갖고 당시만 해도 황야의 벌판 같은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일으켜 놓았노라고.

승 회장의 부친 승상배 회장은 지난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동화기업 창업주로서 한국 재벌급에 속했던 인물이다. 승 회장은 어째서 빈털터리가 되어 친지의 도움을 받아 이 땅을 떠나야만 했을까. 승 회장 부친도 한국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양이 되었는지 모른다.

승은호 회장과의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는 분명 ‘경험철학자’에 속한다.

“양극화를 해소한다고 장사 잘하고 있는 사람의 투자의욕을 꺾어 놓으니 양극화가 줄기는커녕 하향평준화가 되고 말았다. 가진자들은 허리띠를 줄이고 씀씀이 좀 줄이면 된다. 그러나 가진 것 없는 자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구소련이나 북한이 경제 파탄을 맞은 것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라오스를 가보니 경제 형편이 1975년 공산화되기 이전보다 더 비참하더라. 건물은 형편없이 노화되었고 유리창은 파손된 채 방치되어 있다. 공산주의를 선택한 나라마다 모두 피폐해지고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북한 역시 한국이 준 돈으로 정권 유지에 전념할 것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에 전념했다면 최소한 먹고사는 형편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난 10여년간 퍼주기식 햇볕정책은 재고해야 할 정책이다.”

언뜻 듣기에 일개 사업가의 육성이라기보다는 경험철학자의 고뇌쯤으로 들린다.

승은호 회장님,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습니까. 마음으로나마 깊은 우정과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은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하던가요. 승 회장님은 그래도 행복하신분이세요.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 한상들이 회장님에 대한 보이지 않는 응원이 대단했답니다.

한국에서는 재외동포재단 김성곤 이사장님, 무척 마음 고생이 많으셨고 매일경제 장대환 회장님께서는 승 회장님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계한상들을 위해 본국에 든든한 우호 세력을 확보해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