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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한복
동북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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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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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순 / 재한동포문인협회 회원

   
 

나의 집에서 지하철역을 갈려면 꼭 시장을 거쳐야 한다. 시장으로 들어서는 첫 매점이 한복점이다. 매점에는 각양각색의 원단과 한복들이 쭉 걸려 있다. 다양한 원단으로 남녀노소가 모두 다 입을 수 있는 한복들은 너무도 예쁘고도 화려하다. 그곳으로 지날 때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다양한 한복 속에서 눈 익은 그림자가 안개 속을 헤치고 칠색 무지개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느끼곤 한다. 그림자는 나에게 있어서 그 누구와도 비할 수가 없는 아주 소중한 분이고 단꿈에서라도 만나보고 싶은 나의 사랑하는 어머님이시다. 어머님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집의 대대손손이 이어받은 한복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한 장 또 한 장 떠오른다.

비극의 역사가 낳은 집단이주 굶주림과 일제의 침략을 피해 살기 위해 그리고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다양한 이유로 잠시 중화의 땅에서 머물다 돌아갈 줄 알았던 조선인들은 자신의 문화를 지켜가며 열심히 살아왔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 어려운 시절에도 촉박한 땅 일구어 삼 심고 목화 심어 삼배천과 무명천을 짜서 한복을 지어 입고 우리의 문화를 지켜가며 타민족과 생활하면서 일생을 끝마쳤다. 아버지 어머님도 역시 그분들과 똑같은 한복을 입고 살아오셨다. 한족 사람들은 조선족 어르신들이 지나갈 때면 “꼬리 빵즈 따 쿠당 와이러, 와이러 이쇼쾅”라고 하면서 놀리군 한다. 그들의 비웃음은 조선인들의 길을 막지 못하였다. 대신 조선인들은 더 떳떳하게 우리의 옷을 지어 입었고 김치, 된장, 고추장 우리의 전통 음식으로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글로 우리의 문화와 정서를 지켜왔다.

내가 조선족 학교에 입학하는 날도 어머님은 경제난으로 일자형 버드나무 가지를 베여 껍질을 벗겨서 팔아 푼돈을 장만하여 빨간 치마에 까치 색동저고리를 받쳐 입혀서 학교에 입학 시켰다. 방과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한족 아이들과 같이 유희를 하게 된다. 그들은 나의 곁에 와서 “너의 옷이 너무 예쁘다. 나도 조선족 사람이라면 참 좋겠다!”면서 나의 옷을 연신 만져 본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연록색의 잎이 돋아나고 산과 들에 화사한 꽃들이 향기를 풍기는 화창한 봄, 우리 향 두 개의 조선족 학교와 4개의 한족 학교 모두가 여섯 개 학교 학생들이 함께 고려 산성으로 소풍을 가기로 하였다.

고려 산성은 옛날 조선왕들이 그곳에서 살았고 아주 깊은 역사와 사연들이 깃들어 있다. 벼랑 위에 올라가면 장수들이 집 보다 큰 돌들을 우리글을 새겨서 들어서 첩첩이 올려놓았고 벼랑 밑에는 크나큰 동굴도 뚫어져 있었고 벼랑 위의 넓이는 일반 학교 운동장보다 더 넓었다.

우리 학교도 타 민족의 학교와 마찬가지로 소품, 합창, 중창, 무용, 독창으로 다양한 문예제목들을 준비하였다. 어머님도 나에게 남보다 색다른 옷을 입혀서 보내려고 무척 애를 써셨다. 하지만 새 원단을 사는 것은 형편이 너무 어려웠다. 어머님은 자기의 소중한 보자기를 풀어 헤쳐 할머님께서 이어받은 자기가 가장 아끼고 있던 흰 약산동 비단 한복을 내어 뜯어서 찐한 핑크색 물을 들여서 나의 몸에 딱 맞게 예쁜 한복으로 만들어 주셨다.

손꼽아 기다리던 소풍날이 기어코 돌아왔다. 해맑은 하늘가엔 구름 한 점 없이 유난히 맑았다. 어머님이 정성들여 지어주신 그 한복을 입은 나는 모든 것이 다 나에게만 차지한 듯, 기분은 말할 수 없이 좋았다. 동료들과 같이 그 많은 학생들 앞에서 한복을 입고 출연한 무용 제목은 수많은 학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날의 재미있고 의의 있는 하루의 소풍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그 한복이 너무 곱다면서 한족 학교에서 행사를 치를 때도 수번이나 빌려 갔다. 그때마다 나는“우리의 한복이 참말로 너무 좋다.”고 생각하게 되며 더없는 자부심과 긍지감을 느끼게 된다. 향에서 어떤 활동이 있으면 꼭 우리의 한복을 단장한 조선무용 제목은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부른다.

어머님의 한복 짓는 재주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을의 늙은 노인들은 조선족 통바지가 편안하시다면서 항상 어머님의 청을 구한다. 때로는 마을에서 시집가는 새 심부의 웃옷 (한복) 청이 들어오면 한번도 거절한 적 없이 손수 만들어 주신다. 지금의 전기 대림이라면 좋았을 텐데 화롯불에 인두를 꽂아서 솔 깃을 꼭꼭 누르면서 반듯하게 바느질을 하신다. 손수 정성들여 만든 한복은 너무 화려하고 예쁘다. 철없던 그 시기 나의 자그마한 손은 손때가 묻는 줄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저 넓게 그쪽으로만 가고 있다. 마음속으로 “나는 언제야 커서 저렇게 예쁜 한복을 입어 볼까?”고 수없이 꿈을 그려 보기도 하였다.

한복은 우리 민족이 필연코 좋아할 뿐만 아니라 크나큰 중화의 땅에서 살고 있는 다 민족들도 좋아한다. 우리의 민족은 세계 그 어디를 막론하고 뿌리박고 살고 있는 곳마다 자부심과 긍지감을 안고 한마음으로 대대손손이 한민족의 얼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우리의 민족은 세계 어디에서 사나 조선의 역사를 공유하고 민족 문화를 계승 발전을 위하여 최선을 이바지한다. 중화의 땅에서도 우리 조선 민족은 56개 꽃 중에 특이한 송이에 속하며 백의민족이 뭉친 기상을 자랑하는 한 떨기의 꽃이라는 것도 누구도 잘 아는 일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모국에서 한복점을 지나가든가 한복을 입고 행사를 진행하는 것을 목격 할 때마다 나의 어머님이 무척 생각난다. 어머님이 손수 지었던 많은 한복들이 그림자처럼 나의 눈에서 사라지질 않는다. 해가 지고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가도 아마 영원토록 사랑하는 우리의 한복이 가슴속 깊이 저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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