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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로 보는 한국인 조선족 혐오
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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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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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룡 / 다가치포럼대표

   
 

나(我), 너(你), 타(他) 여기서 3인칭을 지칭하는 ‘他’에 자(者)를 붙이면 ‘타자(他者)가 된다. 사전 해석에 따르면 자기 외의 사람, 또는 다른 것을 가리킨다.

타자에 세계를 붙여 타자세계라는 말이 있는데, 예를 들어 이주민사회(재한조선족)가 타자사회(한국)에서 성공하려면... 여기서 타자세계는 내가 속하는 집단과 상대가 되는 사회적 개념이다.

타자화의 전략이란 것이 있다. 네이버 선생의 해석에 의하면 상대의 이질적인 면을 부각시켜 공동체에서 소외되게끔 만들고 대상을 하나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잃게 만드는 행위를 꾸미는 일이다. 타자화의 전략적인 목적은 상대를 깎아내리고 비하함으로써 자집단(自集團)의 우월감 확보를 위함이다.

근대화시기 잉글랜드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타자화시킴으로써 자집단이 상대 집단보다 뛰어나다는 우월감을 갖게 되었다.

이 잉글랜드의 타자화의 전략이 서구 여러 나라 및 일본에 전파되어 타국을 침략하여 식민지를 개척하고 아울러 식민지배자들이 자신들의 권위와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피침략 국가들을 늘 ‘열등한’ 타자로 각인시켜왔다.

타자화의 전략은 국가 간에만 적용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 방위적으로 확대 적용되었다. 전략적으로 이용된 ‘타자’는 자신들과 다른 속성을 지닌 부류, 계층 및 인종을 뜻한다. 백인은 유색인을 타자로, 미국은 흑인을 타자로, 게르만민족은 유태인을 타자로, 서양은 동양을 타자로 삼고 자신들의 인종적・문화적・도덕적・지적・기술적 우월성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강했다.

역사적으로 타자화의 전략을 가장 잘 구사한 인물은 히틀러다. 그는 이 지구상의 모든 다른 민족을 곤충 같은 존재로 선동하고 반드시 게르만 민족이 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 세워 침략전쟁을 발동하였다. 그는 대외적으로 타자화의 전략을 구사하는 동시에 국내에서 타자화의 전략을 실시하여 유태인을 대량 학살하였다.

유태인이 히틀러한테만 타자화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2천 년 전 나라를 잃고 지구촌에 흩어져 디아스포라 신세로 살아온 유태인은 거주국에서 늘 타자화의 대상으로 핍박 받고 압박받아 왔다. 신 예수를 죽인 악랄한 민족이라는 꼬리표가 문제 되어 가는 곳마다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탄압 받은 유태인은 거주국에서 오로지 경제에 몰두하여 생계를 유지해왔는데 그마저 쉽지 않았다. 고리대는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는 것인데 유태인은 돈놀이에 바싹한 민족이어서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유명한 셰익스피어의『베니스상인』이 바로 유태인의 악랄한 상술을 폭로한 것이다. 러시아에서 제1차 세계대전 전후를 계기로 다섯 차례 유태인 축출 작업이 단행되었듯이 지구촌 곳곳에서 유태인은 전형적인 타자화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갖은 비난과 탄압과 혐오와 차별을 당해왔다.

1867년 메이지유신을 계기로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나선 일본은 유럽의 타자화의 전략을 수입하여 곧 바로 실천에 옮겼다. 일본의 일차적인 타자화의 대상은 대만과 조선이었다. 낙후하고 미개한 조선을 자기네가 개조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미명’하에 식민지 점령을 정당화하고 합리화 하였다. 조선을 먹은 일본은 득롱망촉(得隴望蜀)의 길에 나서 만주를 점령하고 전 중국을 침략하고 인도·차이나 지역에까지 손을 뻗었다. 일본의 명분은 중국은 과거 휘황찬란했던 중국이 아니라 낡고 썩어버린 ‘지나(支那, 유래는 진나라 秦의 발음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일본이 중국을 비하하는 국명)’이며 지나인은 더는 사대발명의 위대한 민족이 아니라 ‘동아병부(東亞病夫)’로 깎아내리고 비하함으로써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 하였던 것이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황하문명의 중심지는 중원이었으며 중원은 한족의 발상지다. 천하의 중심이었던 중국은 주변 국가와 민족을 동이(東夷), 남만(南蠻), 서융(西戎), 북적(北狄)이라 불러왔는데 夷, 蠻, 戎, 狄은 모두 오랑캐라는 뜻으로 그들을 타자화 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그렇지만 중국역사는 위진남북조시대, 원(元), 청(淸)은 오랑캐가 지배했으며 오랑캐와 한족이 번갈가면서 지배해온 역사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국내 55개 소수민족을 우대하는 정책으로 각 민족 단합을 구사해왔다.

현대시기에 타자화의 전략 맛을 가장 톡톡 보는 나라는 미국이다. 냉전시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을 타자화 하여 미국을 부각시켰고 냉전 이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적을 만들어 세계경찰 노릇을 하고 있다.

지구촌의 타자화의 전략 역사를 충분히 알아보았으니 이제는 우리 선조들의 한반도역사를 살펴볼 차례이다.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인접했던 여진족, 거란족 등 중국동북부에 거주했던 민족을 야만인으로 멸시해 왔으나 그들을 타자화의 전략으로 지배해 보지는 못했다. 그냥 중원 정권에 키워드를 맞추기 위해 그들을 배척해왔을 뿐이다.

한반도는 남의 지배를 받은 적은 많아도 남을 지배해 본 적이 전혀 없는 역사를 갖고 있다. 심성이 착한 민족이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아래 사실을 보면 착하다고 말하기는 올바른 결론은 아닌 같기도 하고. 좀 헷갈린다.

조선 말기 외세의 각축장으로 전락된 조선인은 서구와 일본의 타자화의 전략을 수입하게 된다. 그런데 서구나 일본처럼 타민족이나 다른 국가를 타깃으로 타자화의 전략을 펼칠 능력이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내부에서 타자의 대상을 찾아 괴롭히는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가진 자들이 없는 자들을, 남자는 여성을 타깃으로 삼아 타자화의 전략을 펼쳤던 것이다.

조선은 양반(兩班, 文班과 武班)과 상놈의 차별문화가 뼛속까지 스며든 나라였다. 이런 역사적인 흐름의 풍토에서 내부 타자화의 전략은 급속도로 확산 되었던 것이다. 1860년대 만주 대량 이주가 3년 자연재해가 원인이었다고 하는데 아마 지금까지 밝혀지지 못한 여러 가지 원인들이 많았을 것이고 그 중에서 내부적인 타자화의 전략에 의한 차별과 혐오의 심각성이 이주에 한 몫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광복 후 남한에서 자식을 소 팔아 공부시키고 논 팔아 공부시켜 판·검사 되게 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 역시 ‘상놈’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몸부림이었다. 물론 지금도 이런 풍토는 마찬가지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였던 한국이 ‘한강기적’을 통해 선진국 그룹인 OECD에 가입하였고 서민들의 살림이 펴이게 되자 내부적인 타자화의 전략이 힘을 잃어가게 되었다. 산업화가 발달되면서 인력난에 부딪히자 외국인 인력이 대량 수입되었다. 이젠 재한외국인을 타깃으로 타자화의 전략을 펼친다. 재한외국인 중에 절대다수가 한국보다 후진국에서 왔으며 이들은 절대다수가 한국인이 기피하는 3D업종에 종사하고 있어 한국인의 눈에는 새로운 ‘상놈집단’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재한외국인 중 비중을 크게 차지하는 집단은 바로 중국에서 온 조선족이다. 이들은 중국개혁개방 이후 구조조정을 당해 직장을 잃었거나 농경에 종사하던 농부들이 도시진출 바람에 의해 대량 한국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내 큰 도시와 연해도시에 진출하려면 머리가 따라가야 하는데 비해 한국에 온 조선족은 머리가 필요 없다. 팔다리만 멀쩡하면 돈을 버는 세상이라 더 많은 밑바닥에서 헤매던 조선족들이 밀물처럼 한국에 몰려 왔던 것이다. 불과 10년 전 서울에 나타난 조선족의 모습은 마치 이마에 ‘나는 조선족이요’라고 써 붙여놓은 듯 팍팍 티가 나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이것이 한국인의 눈에 비춰진 조선족의 모습이었다. 그러니 본래 양반 상놈의 차별문화가 심각했던 풍토에서 살아온 한국인은 조선족을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한 조선족은 처음에 형제를 비롯한 친척집에 머물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핏줄이라 끔찍하게 대해주고 약을 팔아주어 목돈을 마련해주는 등 많이 크게 도와주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자 집안에서 담배 태우고, 옷도 양말도 자주 갈아입거나 갈아 신지 않아 사람의 몸에서 악취가 풀풀 나는데다가 아무데나 가래침을 뱉고, 심지어 사람을 마주하고 기침이나 재치기 하는 등 한국인 아줌마들을 기겁하게 만들어 집에서 쫓겨나 여관신세를 지게 되었다. 자신이 뭐가 잘못되었는지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한국인 ‘형수’나 한국인 ‘아지매’만 인정이 말랐다고 욕하기가 일쑤였다.

일본에 간 조선족사회는 1980년대 초반부터 유학생 출신으로 형성된 집단이기 때문에 차원이 높은데 비해 한국에 온 조선족은 처음부터 노무일꾼으로 형성된 사회였기에 출발부터가 한국인의 무시를 받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조선족이 자체적으로 낙후된 농경문화의 티를 벗지 못해 한국사회에서 무시당한 것도 있는 외에 객관적인 원인도 있다.

한반도는 남북분단의 사회이기 때문에 조선족은 역사적으로 이북의 편이라는 ‘편견’이 한국인이 조선족을 포용하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일세대로 한국에 와서 국적을 회복한 한 조선족 노인의 증언이다. 동네 경로당에 갔는데 한국인 노인 왈, “당신들 6.25 때 우리한테 총부리 겨눴던 놈들이 무슨 염치에 여기 왔는가? 중국에 돌아가라.”라고 쏘아붙여 다시는 그 경로당에 갈 수 없었다고 한다.

한국인 중 개별적으로 이렇게 역사적인 ‘사건’을 들먹이며 조선족을 배척하는 것 외에 집단적으로 조직적으로 조선족을 배척하는 움직임도 있다. 00 정치집단은 남북분단 상태가 유지되어 통일 되지 않아야 자기네 이익을 챙기려는 의식이 강하다. 이 집단은 민족이라는 개념을 철저히 무시한다. 남북 간 민족을 무시하는데 하물며 조선족을 같은 핏줄로 끔찍하게 대해줄 리가 만무하다. 이들 눈에는 조선족은 철저히 중국 편이다. 하도 역사적으로 많이 당해왔기 때문에 한국인은 쩍하면 편 가르기를 좋아한다. 아군이 아니면 적군. 제 삼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이 한국인의 성향이다.

세상에서 미국을 가장 우습게 여기는 나라가 북한이고, 세상에서 중국을 가장 우습게 여기는 나라가 남한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중국보다 좀 앞서 있다고 중국을 우습게 보는 것이 사실이다. 요즘에는 덜하지만 중국은 한국의 60·70년대와 같다는 말을 밥 먹듯 들어왔다.

인간은 주변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나의 우월성을 나타내려는 성향이 강하다. 나라와 나라 사이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일본한테 수없이 당해 왔다. 그래서 우리 인사말은 ‘무사한가?’이다. 일본은 아직 한국보다 앞서 있기 때문에 덜 무시하는데 비해 중국을 아주 무시한다. 무시가 지나치면 혐오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요즘 중국은 한국인의 타자화의 전략 대상이다. 반중정서가 극에 달하고 있다. 조선족은 한국인의 반중정서의 희생양이 되고 있어 안타깝다. 물론 한국인의 반중정서에는 ‘00공정’이니 하는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여기서 더 전개하지 않겠다.

한국사회에서 조선족을 무시하고 차별하고 혐오하는 붙는 불에 키질 하는 정치인이 있다. 한 둘이 아니다. 그들은 00정치 집단에 몸담고 있는 정치인이다. 외국인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외국인 건강보험료가 흑자인데도 적자라고 왜곡하고, 이에 더해서 여야 대선후보들까지 가세하여 한복논란을 부추기까지 하여 조선족을 더욱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 영화계는 타자화의 전략으로 조선족을 소재로 삼아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청년경찰’ ‘범죄도시’를 비롯한 수많은 조선족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조선족을 강력폭력배, 마약밀수, 장기매매에다 청부살인까지 범죄란 범죄는 모두 덮어씌우는 전략으로 관객을 모았다.

한국인 조선족 차별과 혐오 현상에 대해 한국인 내에서도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소수의 행태다. 일시적인 현상이니 크게 신경 쓸 것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거꾸로 노동권, 정치권, 문화권, 민간에 이르기까지 특히 언론계가 가장 문제이며 이젠 사회 전 방위적으로 조선족 차별과 혐오가 만연해 있어 심각한 수준이다. 이 시점에서 바로 잡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이와 같은 상반되는 주장에 재한조선족사회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반응하고 있다. 한국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맘먹었던 일부 조선족들이 심경의 변화가 생겨 맘을 바꿔 중국에 돌아가서 여생을 보내려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부터 현재까지 중국 격리 시간이 엄청 긴데도 불구하고 귀국하는 재한조선족이 굉장히 많아지고 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60·70대 조선족 중에 중국에서 퇴직금 나오고 집이 있으면 한국에서 더 고생하지 않아도 노후가 문제없는 사람들이 중국에서 노후를 보내려고 돌아간다. 이 부류 사람들은 굳이 한국에서 차별과 혐오를 감수하면서 여생을 보내려는 생각이 없다. 물론 이 부류 사람들이 본래는 산 좋고 물 좋고 공기가 좋은 한국에서 정착하여 노후를 보내려던 생각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또 일부는 코로나 시국에 똑 같이 세금을 내고 살아왔음에도 공적마스크 구매나 재난지원금 차별로 상처 받아 국민 대우가 있는 중국에 돌아가는 조선족들이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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