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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교훈을 오늘에 되새기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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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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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스티븐스 / 전 주한 미국대사·한미경제연구소장

6·25와 7·27, 양국 모두 뜻깊은 날
미국선 ‘추모의 벽’ 헌정식도 열려
유족들의 삶에도 의미 부여하고
반성을 넘어 지금의 과제 풀어야

   
 

6월과 7월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뿐 아니라 한·미 관계에도 중요한 날짜들이 들어있다. 이 날짜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정학적 지형을 바꿔놨다.

그중 하나는 단연 1950년 6월 25일이다.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엄청난 기습공격을 감행한 날이다. 1953년 1월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은 그의 퇴임사에서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기로 한 것이 자신의 대통령 임기 중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69년이 흐른 지금, 6월 25일의 중요성을 아는 미국인은 소수에 불과하다.

지난 6월 25일, 나는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 토요일인데다 날씨도 따뜻해 광화문 일대를 산책했다.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각종 깃발·현수막·확성기를 들고 나온 단체들이 보였다. 대부분 노년층인 단체의 구성원들은 기념행사에는 별 관심 없어 보이는 주말 나들이객들에 수적으로 밀렸다. 노년층에게 ‘6·25’라는 말 자체는 상상을 초월하는 참상과 고통스러운 상실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이라 부르며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서는 한국전쟁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린다. 특히 올해는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이 재개관했는데, 거대한 화강암 석판에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과 주한미군 배속 한국군(카투사)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 헌정식도 열렸다.

몇 년 전 이 기념공원을 보수하려는 계획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약간의 모호한 감정을 느꼈다. 1995년에 건립된 원래의 기념공원은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미국을 포함한 국제연합군에 대한 깊은 감동과 찬사를 훌륭하게 구상한 헌정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기념물을 왜 건드리려 하나.

‘추모의 벽’ 헌정식에서 줄리가 할아버지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캐슬린 스티븐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추모의 벽’ 헌정식에 유족들과 함께 참석한 뒤 그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워싱턴DC 내셔널몰의 뜨거운 아침 햇살 아래, 나는 벽에 이름이 새겨진 전사자의 유족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 앉은 줄리(Julie)라는 이름의 키가 큰 50대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제복 차림을 한 젊고 잘생긴 청년의 커다란 빛바랜 사진을 들고 있었다.

줄리는 사진 속 인물이 그녀의 할아버지인 에드워드 메어스(Edward Mares) 상사이며 1950년 7월 16일 소속부대가 금강을 건너 퇴각하던 중 전사했다고 말했다. 줄리의 아버지(에드워드의 외아들)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전사한 후 태어났기 때문에 그녀 역시 할아버지를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줄리는 사진에서 드러나는 가족의 쏙 빼닮은 모습을 자랑스러워 하면서 조부모를 비롯한 가족 이야기를 즐겁게 이어나갔다.

줄리는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살고 있는데 워싱턴DC는 처음 와봤다고 했다. 뉴올리언스에서 이곳까지는 암트랙(Amtrak) 열차로 30시간 이상 걸렸다며 그 때문에 헌정식 하루 전 날 유족들에게만 ‘추모의 벽’을 사전 공개한 특별행사를 놓쳤다고 했다. 우리는 줄리의 할아버지 이름을 찾기 위해 ‘추모의 벽’을 함께 걸었다. 그녀는 한국에 있는 비슷한 모양의 벽에 할아버지 이름이 새겨진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며 고마워했다. 이제 미국의 내셔널몰에서도 그의 이름이 새겨진 걸 볼 수 있게 된 데도 감사함을 표했다.

내가 이전 칼럼(중앙일보 2020년 6월 11일자 35면)에서 소개했던 로널드 파커(Ronald Parker) 일병의 이름도 찾았다. 몬태나 주에서 살다가 20살의 나이에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는 참혹했던 여름 퇴각 작전 속에서 메어스 상사가 전사한 지 불과 2주 후에 남쪽으로 좀 더 떨어진 곳에서 전사했다. 행사에 참석한 다른 유족들도 전사자의 이름을 찾거나 사진을 교환하고 꽃을 꽂거나 벽에 새겨진 이름을 연필로 문질러 탁본을 뜨기도 했다.

줄리는 한국전쟁 이후 그녀의 할머니가 아들을 낳아 키우며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수년간 알고 지낸 많은 한국 여성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들 역시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어떻게 가족을 부양했고 자신의 삶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한국 자체를 어떻게 재건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이 또한 기념물을 세울만한 가치가 있다.

1953년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마크 클라크(Mark Clark) 장군은 정전협정에 서명하면서 “이 순간을 기뻐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이 경제·민주주의·문화강국으로 꽃을 피우고 있고 한·미 동반자 관계도 더욱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축하할 만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6월 25일과 7월 27일은 좀 더 깊은 의미에서 반성과 추모의 기념일이자 여전히 우울한 날로 남아있다.

한반도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과업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난 세기에 한국에서 직면했던 것과 어떤 면에서 유사한 도전을 상기시킨다.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들이 있다면 지금 우리에게 그 교훈들이 당장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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