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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금융의 보이지 않는 조타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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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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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 경제부장

가난 이겨내고 첫 교포은행 설립한 재일교포
느슨한 연합체 주주지만 위기 시 ‘주인’ 역할

   
 

일본 오사카에 사는 이경재 씨(73)는 1982년 7월 7일이란 날짜를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재일교포들이 낸 자본금으로 설립된 신한은행이 그날 서울 명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재일교포 주주 200여 명이 서울로 날아왔다. 개점 행사 때 눈물을 흘린 주주도 있었다고 한다.

이 씨는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한 이후 약 150만 명의 조선인들이 한국으로 귀국했지만 그의 부친은 일본에 남았다. 가난과 차별을 각오한 것이다. 당시 일본에 남은 교포들은 쓰레기 수거, 청소, 고물상 등 허드렛일을 주로 했다. 일본 각 도시에서 분뇨 수거 작업을 맡기도 했다. 저학력에 일본어가 서툴렀기에 대체로 2세에게 빈곤이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성공한 교포들도 하나둘 나왔다. 제과로 일어선 신격호 롯데 회장, ‘파친코 황제’ 한창우 마루한그룹 회장 등이 그 예다. 그들은 한국에도 투자했다. 하지만 자금 조달이 문제였다. 한국 기업들도 대출받기 힘든 시절이었으니, 재일교포 기업이 은행 문턱을 넘기는 더 힘들었다.

결국 재일교포들이 나서 한국에 은행을 직접 설립했다. 재일교포 341명이 자본금 250억 원을 모아 첫 순수 민간자본 은행이자 교포은행인 신한은행을 만든 것이다.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로 불리는 5대 시중은행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때 신한은행은 서울에서 점포 3개로 시작했다.

영업 방식은 혁신적이었다. 고객 한 명이 은행 문을 열고 들어오면 모든 직원이 일어나 허리 숙여 인사했다. 당시 고객이 ‘을’인 시절이었기에 다른 은행 직원들은 고개 숙이는 데 인색했다. 또 대출에 따르는 검은 커미션(사례금)을 없앴다. 그러자 신한은행 점포 수가 빠르게 늘어났다. 2002년 굿모닝증권, 2003년 조흥은행, 2006년 LG카드 등을 잇달아 인수하면서 비(非)은행 포트폴리오까지 갖춘 신한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그동안 변화도 많았다. 특히 창립 멤버들이 주식을 상속, 증여하면서 현재 재일교포 주주는 약 5000명으로 늘었다. 100%였던 지분은 15∼20%로 줄었다. 재일교포 주주의 존재감도 비례해 떨어졌다. 하지만 신한금융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각별하다. 시세차익을 노리고 주식을 사들이는 다른 투자자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23일 신한금융 주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이 씨는 “신한은 재일교포의 자랑이다.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려는 재일교포 주주는 1명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상시 느슨한 연합체 주주로 있지만 위기 때는 주인의식을 내보인다. 2010년 소위 ‘신한 사태’로 불리는 경영권 다툼 때 결국 재일교포 주주들이 문제 인사 3명을 일본으로 불러 다들 물러나도록 교통정리 했다. 23일 주총에서도 최대주주 국민연금의 반대표에도 불구하고 재일교포 주주들이 뭉쳐 진옥동 회장 내정자의 사내이사 선임안을 통과시켰다. 정부의 부적절한 간섭에 대해선 방패 역할을 해왔다.

다만 앞으로도 무한 애정을 무기로 은행을 성장시킬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 지금은 시장 신뢰를 잃은 은행이 하루 만에 초고속으로 파산하는 시대다. 지분율에 비해 경영권에 미치는 과도한 영향력, 재일교포 주주를 대표하는 사외이사들의 금융 전문성 부족, 불투명한 사외이사 선임 과정 등 약점을 개선할 때 또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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