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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림 윤이상’의 한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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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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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철 / 논설위원

   
▲ 독일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있던 윤이상 선생의 묘소. [경향신문 자료사진]

1967년 7월8일, 박정희 군사정권의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동백림(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괴대남적화공작단’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유럽에 사는 유학생·교민 등 194명이 동베를린 북한 대사관과 평양을 드나들며 간첩으로 활동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부가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간첩 사건이라고 선전한, 이른바 ‘동백림 간첩단 사건’이다. 연루자 명단에는 대학교수·예술인 등 저명인사와 젊은 지식인들이 다수 포함됐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던 재독 천재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이름이 화가 이응노, 시인 천상병과 함께 맨 위에 나왔다.

   
 

동백림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만들어낸 최대 규모의 간첩 조작 사건이었다. 100여명을 구속시켰으나 간첩죄로 송치된 사람은 23명뿐이었고, 재판 최종심에서 간첩죄가 인정된 이는 1명도 없었다. 게다가 사형이 선고된 2명을 포함해 사건 관련자 전원이 3년 안에 모두 석방됐다. 불법 연행과 무리한 수사로 국제적인 망신을 사고 인권 후진국이란 오명을 자초한 사건으로 남았을 뿐이다. 2006년 국가정보원 진실위는 이 사건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간첩단으로 확대·과장됐다는 조사결과를 냈다. 동백림 사건 발표 후, 7대 총선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일거에 잠잠해진 걸 상기시킨 것이다.

윤이상은 당시 한국 수사관에 강제 연행·압송됐다. 서독 정부는 바로 불법 납치·영토 주권 침해라고 항의했고 원상회복을 요구했다. 국교 단절까지 거론되는 외교적 마찰이 일어나고 국제사회의 탄원 운동도 벌어졌다. 한국에서 1심 무기징역, 2심 징역 15년, 최종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그는 결국 2년 복역 후 풀려났다. 1969년 독일로 돌아간 뒤 1995년 사망했고 2018년에야 한국 땅에 묻혔다.

엊그제 서울고등법원이 그의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재심 결정을 내렸다. 동백림 사건이 난 지 56년 만이다. 당시 모진 고문과 옥살이를 겪은 그는 감옥에서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을 완성했다. 누명을 쓰고 갇힌 자신을 한 마리 나비에 빗대 표현한 작품이다.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나비, 옥중에 있어도 마음까지 갇혀 있지는 않았다는 마음…. 정치와 이념에 희생된 그의 한이 이제는 모두 풀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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