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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참정권과 상호주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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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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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후 / 정치학자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국내 거주 외국인의 지방선거 투표권 행사 기준을 높이는 법안을 제출했다. 영주권 취득 3년이 지나면 지방선거 투표권을 주던 것을 ‘5년 이상의 지속적 거주’로 바꾸자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투표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가 많은데, 그 나라 국민들에 대해 지방선거 투표권을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다. ‘상호주의’는 비례성이란 인간 행위의 보편적 준칙에서 볼 때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유다. 그래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그럴 만한 합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법안 논의 과정에서 2가지 지점에 대해 진지한 토론과 검토가 있었으면 한다.

첫 번째는, 이것이 외교적 사안이더라도 과연 상호주의 원칙만을 적용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두 번째는, 이 사안은 외교적 사안이라기보다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관련된 일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외교에서 상호주의는 중요한 원칙이자 수단이다. 그것이 잘 발휘되어야 할 때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무역이나 군사적 충돌이다. 만약 어떤 나라가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의 수입을 금지하거나 유통 매장의 영업을 못하게 한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만약 다른 나라 군함이 독도 앞바다를 불법 항행하고 퇴거 경고를 무시한다면, 우리 군은 즉각 출동해 이를 몰아내야 한다. 만약 북한이 우리 영토에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포격을 가한다면,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군사적 대응으로 이를 되갚아 주어야 한다. 이것이 외교적 관계에서 상호주의가 발동되어야 하는 경우들이다.

그런데 외교에서는 항상 ‘상호주의’가 적용되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종종 ‘호혜주의’의 원칙이 작동하기도 한다. 상호주의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이라면, 호혜주의는 주도권을 가진 쪽에서 먼저 선의의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난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인류는 핵전쟁의 공포에 시달렸다. 그로부터 불과 6개월 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핵무기 감축과 핵실험 금지를 제안하는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소련이 핵무기 감축에 동참했고, 핵무기 감축이 이뤄졌다.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참정권을 주는 일도 비슷하다. 이를 허용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유럽의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인데, 중국을 포함해 그 나라들과 외교관계에 있는 많은 다른 국가들은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보면 외국인 참정권은 애초에 상호주의가 아니라 호혜주의에 입각한 제도인 셈이다. 두 번째 성찰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왜 이것은 외국인에 대한 제도임에도 상호주의가 아니라 호혜주의 원칙이 작동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 제도가 외교적 사안이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자국의 민주주의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행 제도에서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권을 주지는 않는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주권’을 부여하지는 않는 것이다. 지방선거 투표권을 주는 이유는, 그들이 지방세를 납부하고 자치 행정의 주체이자 대상이기 때문이다. 국적에 따른 주권이 아니라 지역 주민으로서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많은 유럽 국가들이 외국인에게 총선 투표권은 주지 않지만 지방선거 투표권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주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는 나라와, 일률적으로 국적에 의해서만 투표권을 부여하는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요컨대 외국인에게 주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그 나라가 스스로의 민주주의 수준을 높이고, 외교적으로는 이니셔티브를 갖고, 세계적으로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조치이지, 상호주의적으로 주고받는 사안이 아닌 것이다.

만약 어떤 나라가 한국 국적의 운동선수를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구금하는 일이 생겼다고 해보자. 그러면 우리도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그 나라 국적 선수를 사소한 이유로 강제 연행하고 구금시키는 게 합당할까? 우리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여전히 우리 동포들의 참정권을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본을 포함한 모든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준다.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이 낮다고 해서 그에 맞춰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을 낮추자는 게 ‘상호주의’는 아니기 때문이다.

몇년 전 학회에서 만난 동남아시아 학자가 말했다.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고, 일본은 정권교체가 거의 없이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국가다. 한국이 아시아 민주주의 모델이다.” 그때 내가 느꼈던 자랑스러움을 굳이 포기해야 할 이유가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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