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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을 들으며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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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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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철 / 산업1부 기자

   
 

요즘 내 출퇴근길 플레이리스트는 온통 K팝으로 가득하다. 방탄소년단(BTS)이나 아이브 같은 유명 그룹만이 아니다. 알고리즘을 타고 보이그룹 스트레이키즈, 남녀 혼성 4인조 그룹 카드(KARD) 노래까지 찾아 듣는다. 멤버 이름부터 국적까지 다 외웠다. 에스파 르세라핌 뉴진스 등의 쏟아지는 K팝 신곡을 듣느라 시간이 부족할 지경이다.

푹 빠졌다고 표현할 정도로 K팝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최근 다녀온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류박람회 출장이 계기였다. 새벽부터 모여든 독일 팬들이 박람회 홍보대사로 무대에 선 카드와 6인조 걸그룹 스테이시(STAYC)를 향해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뉴스나 SNS 영상으로 보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이것이 한류구나 싶었다. 이런 감정을 군중심리나 국뽕이라 해도 할 말은 없다. 변명하자면 코페르니쿠스적 세계관의 전환이라고 할까. 단순한 한류 뉴스도 예전과는 180도 다르게 보이니 말이다.

K팝을 들을 때마다 격세지감이 드는 기억이 있다. 2008년 제대 후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갔던 때다. 1세대 한류 겨울연가가 지나갔고,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 2세대 열기가 막 퍼지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당시 일본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름은 김정일이었다. 한류는 북한 미사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때도 일본을 찾는 젊은 외국인들은 문화가 좋아서 온 이들이 많았다. 도쿄 시내 한 라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직원이 일본인 반 외국인 반이었다. 한국 중국 태국 등 국적도 다양했다. 일본 문화가 좋아서 유학이나 워킹홀리데이를 온 이들이었다. 동료들은 한국 가수를 거의 몰랐다. 일본인 점장은 조용필을 안다고 했다. 그때 살았던 게스트하우스도 외국인 비율이 절반을 넘었는데, 일본 아이돌이나 배우는 알아도 한국 문화는 몰랐다. 그때만 해도 한국은 문화 수입국, 일본은 엄연한 수출국이었다.

15년이 흐른 요즘 서울 시내에서 밥을 먹다 보면 심심치 않게 일본인 알바생들을 본다.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이들을 보며 한국에 온 경위를 멋대로 상상해 본다. 어떤 가수의 팬일까. 현지 문화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 왔을까. ‘문화의 세계는 영원한 갑도 을도 없구나’ 같은 생각을 한다. 이 정도면 ‘한류병’ 중증일지도 모른다.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으로 나라 전체가 수년째 동반 이익을 얻고 있다. 주로 경제효과로 이를 측정한다. 2020년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올랐을 때는 1조7000억원, 2017~2021년 5년간 한류가 창출한 경제효과는 총 37조원과 같은 식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이익도 많다. 독일 K팝 팬을 취재하면서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환대를 받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미처 지면에 다 옮기지 못할 정도의 사연을 들려줬다. 영국에 사는 한 지인은 요즘 현지 친구의 딸이 한국 남자와 결혼하는 방법을 자꾸 물어봐서 얼떨떨하다고 한다. 우리가 잘한 일은 하나도 없지만, 덩달아 어깨가 올라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정부까지 고무될 정도로 한류가 내뿜는 빛이 환하다 보니 우리는 어느덧 그림자까지 끌어안고 사는 것에 익숙해진 듯하다.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이들의 소식과 K팝 소속사와 멤버 간의 법적 분쟁을 일상처럼 본다. 대중의 인기란 빛나는 환상과 차가운 현실을 동시에 비춘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 다른 해결 방법은 찾지 못한다. ‘중소돌의 기적’으로 불리다 분쟁에 휘말린 K팝 그룹의 근황을 지켜보며 씁쓸한 감정이 들다가도 환한 무대를 보면 금세 잊어버리는 식이다.

얼마 전 BTS 리더 RM은 K팝 시스템의 비인간성을 지적하는 언론의 질문에 “빠르고 강하게 일어나는 모든 것에는 부작용이 있다”며 “‘K’라는 꼬리표는 프리미엄 라벨이자 품질 보증서”라고 답변했다. 너무나 성숙한 대답의 이면으로 자신도 모르게 짊어졌을 무게가 느껴졌다.

이국의 문화를 동경하는 감정은 애초에 이유와 근원을 설명할 수 없는 계절의 변화와 같은 것일지 모른다. 언젠가 이 열기가 과거의 일이 된다면 서글프겠지만 기쁨과 고마움의 감정은 더 오래 남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도 쏟아지는 K팝 노래와 한류 기사들을 보며, 자꾸만 빛과 그림자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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