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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틋하다, 조선의 백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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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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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욱 / 전 대검 차장·변호사

'자기 하나를 잘 못 만드니 나라의 온갖 일들이 똑같다'
조선백자 향한 박제가의 한탄 / 이념과 체제가 상업을 누르면 /찬란했던 기술도 쇠락의 길로

   
▲ 조선의 백자

지난 5월 리움미술관의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 전시회를 관람했습니다.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조선백자 59점 중 31점을 첫 전시실에서 마주합니다. 조선 전기 궁궐에서 사용된 푸른색 그림의 청화백자, 왜란과 호란 후 힘겹던 시절 제작된 철화백자와 달항아리, 후기 채색 장식 자기까지 조선백자 500년 역사가 한껏 펼쳐졌습니다. 199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당시 아시아 고미술품 최고가인 841만달러에 낙찰된 용무늬 철화백자도 나왔습니다. 리움미술관은 물론 간송미술관, 호림박물관,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같은 세계적 전시관들이 보물을 내놨습니다. 아찔한 황홀감에 전시장을 두 번 찾았습니다.

   
 

단단한 백자를 구워내려면 1300도 고온에서도 부스러지지 않는 유리질 백토가 필요합니다. 흙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한 일본과 서양에선 비싼 중국산 도자기를 수입해야 했습니다. 조선은 세종 때 명나라 황제가 보낸 청화백자를 접하고는 스스로의 힘으로 생산해 냅니다. 세종 시대 139개 자기 제작소가 있었습니다. 세조 때는 국가 관요(官窯)를 설치해 분업화로 고품질 백자를 생산합니다. 백자는 왕의 권위입니다. 세자도 청자를 씁니다. 백성들의 백자 사용은 금지됐습니다. 청화백자 사용자는 곤장 팔십 대를 치도록 경국대전에 규정했습니다.

왜란과 호란 후엔 제작 기반이 쇠락해 백자가 누런 빛을 띱니다. 코발트 안료를 못 구해 철(鐵) 안료나 구리 안료로 검붉은 철화백자나 진사백자를 만듭니다. 달항아리도 만들어집니다. 영정조 시대엔 문물이 복구되지만, 사치를 금한다는 방침 아래 고급 도자기 생산을 금지시킵니다. 정조 17년, 1793년입니다. 이후 왕실에서도 조선백자보다 청나라 채색 자기가 더 많이 사용됩니다. 조선은 1884년 관요를 민영화하고 뒤늦게 채색 자기도 만들어 자기 산업을 살려보려 하지만, 싸고 질 좋은 일본 자기에 밀려납니다. 고려청자는 일본과 중국에 전파됐지만, 조선백자는 조선을 못 벗어납니다.

도자기 종주국 중국은 당나라 때부터 자기 수출로 국부를 축적합니다. 명나라 후기 16세기엔 관요와 민요(民窯)가 협업하는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춰 동남아시아와 유럽에 엄청난 물량을 수출합니다. 17세기엔 연 300만점이 넘습니다. 일본도 왜란 때 조선의 도자기 장인들을 납치해 백토를 발굴하고 자기를 생산합니다. 명나라가 무너지자 기술자들을 받아들여 채색 자기 기술을 급속히 발전시킵니다. 17세기부터 유럽에 수출해 막대한 부를 이룹니다. 조선 도공 이삼평이 만들어낸 아리타백자는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와 1873년 빈 만국박람회에서 대상을 받습니다. 유럽은 오랜 시행착오 끝에 1710년 독일 마이센 지역에서 자기 생산에 성공합니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가 뒤를 이어 고급 색채 자기들이 세계를 휩쓸게 됩니다.

오랜 세월 자기는 최첨단 수출품이었습니다. 조선의 백자는 조선의 운명과 궤를 같이합니다. 조선은 한때 중국에 버금가는 백자를 만들어 냈지만 상업을 억압하는 국가이념 속에서 기술을 확장시키지 못합니다. 유용했던 국가 관요 시스템도 세월이 흐르자 민간의 힘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됩니다. 실학자 박제가는 1778년 저서 '북학의'에서 한탄합니다. '중국 자기는 모두 정교한데, 우리 자기는 몹시 거칠다. 자기 하나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니 나라의 온갖 일들이 모두 똑같다.' 조선의 백자를 바라보는 마음은 담담하면서도 애틋합니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휴대폰, 바이오. 21세기 도자기의 앞날은 사뭇 달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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