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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본 적 없는 나라’를 위한 희생… 노병의 아리랑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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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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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련 / 논설위원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 ‘코리아’를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청춘을 바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국전쟁 참전 16개국의 노병을 만나보면 ‘자유의 가치’처럼 추상적인 말을 먼저 꺼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군화 속 땀이 얼면서 생긴 동상(凍傷), 기어다니던 논바닥,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민둥산처럼 몸이 기억하는 것이 먼저였다. 총알이 빗발칠 땐 1인칭 부조리극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동아일보가 한 인터뷰도 그랬다. 스탠 벤더 미 해병대 병장(당시 계급)은 적군을 처음 쏴 죽였을 때의 구토를 떠올렸다. 윌리엄 웨버 대위는 “부하가 총에 맞으면 눈이 뒤집혔고, 살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고 말했다. 본능과 야수성에 압도당했던 기억이었다. 영국군 테드 로즈 이병은 임진강 전투 때 중공군에게 포위된 뒤 탄약 한 발, 빵 한 조각 남지 않은 보급 창고의 절망을 말했다. 한국전쟁은 크게 보면 냉전 초기 공산 팽창주의의 산물이지만, 자세히 보면 개인적 전투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우리 국군과 함께 사선을 넘었던 참전국 장병이 아니었다면 현대사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해외 참전국 용사들이 27일 정전협정 70주년을 앞두고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국가보훈부가 초청한 장병 64명과 가족들은 판문점을 방문하고, 동료 전사자를 모신 부산 유엔기념공원 묘역을 참배한다.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었다. 해외 참전국에서 3만7886명이나 목숨을 잃은 탓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쟁이 됐다.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에 온 사회가 애통해하는 점은 그때라고 다르지 않았을 텐데, 참전국과 가족들은 조국의 부름에 응한 젊은 영웅들을 고통 속에 품어냈다. 한국에 온 노병들은 그렇게 지켜낸 대한민국의 오늘을 확인하고는 나의 작은 전투가 만든 결과에 감격하고 있다. 참전 명령을 듣고 지도를 펼쳐 보고서야 코리아의 존재를 알았을 그들 아닌가. 굶주리고 냄새나던 한국 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인천공항 도착 때부터 목격했다.

방문한 용사 가운데 가수가 된 2명은 아리랑을 함께 부른다. 80대 후반 나이에 영국 오디션대회(‘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최고령 1위를 차지한 콜린 새커리와 트리니다드토바고의 국민가수가 된 로버트 넬슨이 그들이다. 새커리는 한국군이 부르던 서글픈 아리랑을 한국의 국가로 알고 따라 부르며 배웠다고 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중략)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한국전쟁은 자유진영과 함께 치른 전쟁이었다. 자유진영은 갓 태어난 대한민국을 버리지 않았던 임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임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나라들이 생기고 있다. 70년 기적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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