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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포언론 문제에 대한 고찰(考察), 재외언론진흥재단 설립이 필요하다?-(2)
김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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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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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오 /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국립호주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4. 교포 언론과의 인연

돌이켜 보건대 내가 교포신문을 처음 본 건 1973년 5월이다. 뉴욕에서 그레이하운드 버스로 미 대륙을 횡단하여 LA에 도착, 소속사인 코리아타임스의 자매지인 한국일보의 미주 본사를 방문했을 때다. 3일인가 체류하면서 고 장기영 사주의 둘째인 장재구 사장과 식사 자리도 같이 했고 신문이야기도 들었었다.

   
 

그때 놀란 사실은 자체 윤전기가 있는 것 말고는 편집국 인원은 서울에서 같이 취재를 다녀 잘 알던 세 동료들로서 지금의 대부분 영세한 신문사 규모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대부분 교포신문의 제작방식의 모델이 된 대로 기사는 본국지 (이경우 한국일보)의 전재(轉載,Reprint)와 현지판을 합친 것이었다.

그건 그때 상황에 맞는 편집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대부분 교포신문이 이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면 존재이유는 절감되었다고 봐야 한다. 컴맹인 소수 노인층을 빼고는 한국 뉴스를 인터넷 신문과 방송으로 자기 방에서 한국과 동시에 읽거나 듣고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몇 년을 빼고는 한국에서 기자와 편집국 부장으로 지냈었다. 소속 언론사가 영자신문(코리아 타임스와 헤럴드) 였고 겸직으로 일한 영국계 해외 매체여서 국내에서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우리말 중앙지 기자들과 함께 여러 출입처를 드나들었으며 그들보다 평균 더 많은 분량의 기사를 썼다.

영어를 좋아해 대학 영자신문의 학생 기자를 한 게 인연이 되어 그 쪽으로 가게 되었으나 한국 언론은 제작기술과 관행을 미국 언론의 그것을 따르고 있어 그 훈련은 우리말 기자들보다도 더 먼저 더 철저히 배웠다고 자부한다. 앞에서 뉴욕을 갔었다고 말한 대로 나는 1년 간 미국 언론의 메카인 그 도시를 교육의 장을 삼는다는 컬럼비아대학 언론학과에서 실무교육을 받았다. 그 학과 창시자인 조세프 퓨리처의 이름을 딴 퓨리처상위원회가 거기에 있다.

그러나 이런 특수 언론 쪽에 일하는 애로와 갈등도 많았다. 독자가 적어 경영이 어려워 업무량은 많고, 독자가 외국인인지라 비판적인 글을 쓰면 배신자 취급을 받기 십상이고 때로는 서슬 퍼렇던 공안 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받을 찬스는 한국어 기자와 마찬가지였다. 그런 애로들이 쌓여 결국 박정권 말기인 40대 초반에 고국을 떠나게 되었다. 사족이 될 수 있는 이와 같은 개인 이야기를 굳이 쓰는 이유가 있다.

한국은 뉴욕 타임스와 같은 국제매체에 글을 써 우리의 진정한 고충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언론인이나 학자를 제가 아는 한, 국내외 어느 곳에서나 한 사람도 배출하지 못했다. 그 결과 나라의 진로가 국내보다 국제적 힘의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현실에서도 우리와 직결되는 국제여론 형성을 우리가 아닌 이른바 인스턴트(instant) 친한파 외국인에게 맡겨야 하는 아이러니에 안주하고 있다. 국제화라면서도 국내 자본에 의한 외국어 언론 육성을 등한시 해왔기 때문이다.

5. 언론의 질은 종사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든다.

앞에서 언급한 <호주소식>을 9년 간 발행인, 편집인, 기자, 영업 사원을 도맡아 하면서 한국의 큰 언론사 소유주나 편집국 고위직에서라면 불가능한 언론에 대한 귀한 통찰력을 갖게 된 건 큰 소득이었다.

굳이 언론학자들이 아니더라도 언론의 질은 정부, 제작자, 소비자가 결정한다는 건 상식이다. 교포 언론을 하면서 위 3자 가운데 소비자, 즉 구성원의 태도가 가장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서방사회에서 거주국 정부의 이민자 신문에 대한 간섭은 거의 없다.

단체장들이 선거에 앞서 언급한 화려한 구호를 실천에 옮기자면 건전한 언론의 육성이 필수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큰 관심을 쏟는 사람이 없다. 공익 이슈에 대한 활발한 독자란 기고로 언론을 언론답게 만드는 구성원의 열의가 거의 없는 것도 그런 사례다. 언론 발전을 위해 외부 재원 지원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측면이다.

고국 사회의 축소판인 해외 한인사회는 한민족의 행태 연구를 위한 훌륭한 자료이다. 무수한 단체와 집단이 복잡하게 상호교호 하는 인구 5000만의 집단보다 가령 3만 또는 10만의 인구와 불과 몇 십 개의 교회와 단체로 되어 있는 해외한인사회가 실증적 분석을 위한 변수 분리가 훨씬 용이 해서 그렇다. 그런 사실을 이해하는 한국인 학자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교포언론의 수용자 연구(Readership 또는 audience research)를 위하여서도 대부분의 주류 언론의 이론 모델을 적용 할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필자가 특별히 큰 관심을 갖는 것은 미국 언론학이 자랑하는 <필요와 필요충족 이론 (The uses and gratifications approach)>이다. 언론의 수용자가 매체와 메시지를 찾는 이유는 필요다. 그 필요는 어떤 것들이며 가능한 미디어의 이용으로 그 필요를 얼마나 충족하는가를 조사해보는 것이 이 방법론의 핵심이다.

특히 고국과 다른 환경에 사는 해외 한인들은 수요자로서 매체에 대한 필요 또는 수요가 고국의 형제자매들과 다를 수밖에 없겠는데 그걸 안다는 건 언론 정책을 위하여도 필수다.

필자는 2001년에 펴낸 졸저 <언론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의 한 장인 <해외에도 우리 언론이 있다, pp.272-290>에서 이 과제를 길게 다뤘다.

한국에서 현업 중견 언론인과 일부 언론 학자들이 쓴 이 분야 논문이 모아져 현안 언론 이슈들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대표적 학술지가 관훈클럽이 내는 정기 간행물이다. 필자는 이 간행물에 교포언론에 관련해 두 논문을 기고했는데 필자 것 말고 다른 게 더 있었는지 조사해보지 않아 모르나 거의 없었을 것으로 본다. 그만큼 서두에서 지적한 대로 이 분야는 사각지대로 머물러 온 것이다.

위에서 말한 이 두 가지는 <신문연구 1993년 여름 통권 제55호, ‘해외교포 저널리즘의 제 문제’ pp.241-251, 이 간행물 이름은 후에 관훈저널로 바뀌었다>와 <관훈저널 2010년 봄호, ‘해외동포사회는 보도 사각지대’, pp159-164>가 있다. 후자 논문은 다음 장에서 따로 다룰 고국과 현지 지역 간 뉴스 보도의 불균형의 문제와 직접 관계가 있다. 이 과제는 교포언론의 또 하나 중요한 이슈이므로 아래에서 좀 더 써 보기로 한다.

6. 정보와 영향력의 일 방향적 흐름

이때 불균형은 고국으로부터 해외 교포사회로 흘러 들어오는 뉴스와 정보와 영향력은 홍수와 같지만 그 반대는 전혀 아닌 심각한 일방향 흐름의 현상을 의미한다. 이 이슈 또한 미국 언론학에서 오래 다뤄진 선진국과 후진국 지역 간 정보와 영향력의 흐름 (The flow of information and influence between countries)에 대한 풍부한 연구와 이론이 좋은 모델이 된다.

한국에서는 이 연구가 권력과 산업이 중앙에 집중된 중앙과 지방간의 뉴스흐름의 불균형 관계로 학자와 실무자들 간에 풍부하게 논의 되어 왔다. 그러나 고국과 해외 한인사회 매체 간 작금의 심각한 불균형을 지적한 기사나 논문은 하나도 없어 보인다.

국가 간 또는 다른 주체간 뉴스와 정보와 영향력의 불균형이 크면 왜 문제인가? 한국에서 늘 큰 사회 쟁점으로 떠오르는 강자와 약자 간 힘의 불평등 관계와 갈등이 바로 거기에서 나오는데 고국과 해외한인사회 간의 관계 또한 그거인데 고국지향적인 해외 한인들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 불균형은 권력과 인구와 산업과 부가 집중되어 있는 한쪽은 이해가 크고 다양한 뉴스가 많으나 다른 한 쪽에는 그렇지 못하니 그런 것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약한 쪽도 좋은 이슈를 만들고 전달 수단을 발전시킨다면 달라진다. 가령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생긴 알자지라(Al Jazeera) 영어방송이 아랍세계를 대변하는 CNN이 되고 있는 사실을 봐도 그렇다.

해외 한인사회가 알자지라를 만들 수는 없어도 이 불균형을 시정하도록 집단 차원의 노력을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국인은 크고 세고 높은 것을 숭배하고 작고, 약하고, 낮은 것은 등한시 하는 국민 아닌가. 작고, 약하고, 낮은 것을 잘 해야 크고 세고 높은 것도 잘 된다는 생각을 못한다.

당연히 크고 돈벌이가 될 수 있다고 느껴지는 고국의 일에 관심이 쏠리니 그쪽 기사와 정보는 해외 한인사회로 물밀듯이 흘러 들어오지만 반대의 경우는 전혀 아닌 형국이다. 고국이 경제적으로 커짐으로써 해외동포 사회를 작게 그리고 낮추어 보는 경향은 앞으로 더 늘어난다.

고국의 매체가 알아서 교포매체를 꾸준히 검색해서 좋은 기사를 전제하거나 해외 쪽 기고를 받아 싣는 그런 노력을 해주면 좋은데 위에서 지적한 이유로 그런 일은 안 일어난다. 그러니 현지 매체를 매개로 고국 매체에 접근하려는 해외 한인들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해외 한인사회의 발전은 고국의 올바른 재외동포정책 없이 잘 될 수 없을 것이니 이건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얼른 봐 현지의 뉴스가 고국 매체에 전혀 보도되지 않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민 가지 않길 잘했다는 잘 사는 국내 기득권층의 구미에 맞는 해외 한인들의 서글픈 사건, 예컨대 역이민이나 인종차별 피해 사례, 아니면 반대로 한인 누군가가 고위직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과 민족정체성과 고국의 위상을 높인다는 가정 아래 흔하게 열리는 문화 행사를 대개 통신원들이 보내는 일회용 판박이 영상기사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불균형의 문제가 양 지역 언론인이 참여하는 앞서 말한 세계언론인대회와 같은 모임에서 논의 된다면 바람직하지만 역시 기대할 수 없다. 이런 문제가 교포언론에 거론되지도 않는다.

지난 반세기 동안에는 고국과 해외동포사회 간에는 많은 변화가 있어 재외동포정책에 있어 크게 수정되어야 할 분야가 많지만 현지 언론이 그런 걸 찾아 거론하거나 건의한 사례가 없고 있다면 오히려 고국 쪽에서 알아서 해준 게 거의 전부다.

그런 사례가 몇 가지 있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만 적고 끝내고자 한다. 영주권 비자로 해외로 이민 나가 있는 자국민은 거주국에 귀화하지 않는 한 자국민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부터 한국 정부는 이들의 주민증록증을 무효화시켜 고국에서의 정상적 활동을 크게 제한했었다. 그건 헌법 정신과 국제관례에도 위배되는 조치였다.

영어 Permanent visa란 말이 뜻하는 대로 영주권은 한번 받으면 연장 없이 계속 상대국에 거주국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며 국적은 고국에 있으니 어느 때든 돌아가면 다른 내국인과 똑 같은 지위로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가 현재 거주하는 호주만 해도 이 나라 시민권자는 언제든지 자국에 입국하면 나가 무슨 비자로 살았든 관계없이 자국민 자격으로 별도 수속 없이 즉시 복귀하게 된다.

나는 교포신문이나 기타 서울의 작은 간행물을 통하여 이 부당성을 여러 번 제기하였으나 거들떠보는 큰 미디어를 보지 못했다.

2011년인가 한국 정부는 국적법을 개정, 65세 이상 한국계 해외 시민권자에게 2중국적을 허용하게 했다. 그 다음 해 시드니를 방문한 국회의원단의 일원으로 야당의 해외동포정책을 맡고 있던 김성곤씨 (얼마전까지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만나게 되어 이 문제를 거론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 초상을 향해서나 성경을 앞에 놓고 거주국에 충성을 맹서하고 시민권을 취득한 한국인에게 2중국적자로 국적을 회복시켜 자국민으로 활동하게 한 나라가 해외에서도 자국민으로 남아 산 한국인에게는 그걸 거부하는 건 세계 어디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었다.

놀라는 눈치인 그는 그걸 노트에 적었고 불과 얼마 만에 이게 지금의 동포 주민등록증 체제로 바뀌었다. 들은 바에 의하면 김의원은 귀국 후 여당 의원들과 타협하여 이렇게 이끌어 낸 것 같다. 주민등록제도는 입법이 아니라 시행령 사항이다.

이런 과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교포언론과 해외한인들은 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렸지 이런 한인사회와 직결되는 문제를 이슈화하는 역할을 등한시 해왔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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