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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78년,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우키시마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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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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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욱/부산총국장

1945년 8월 24일. 광복의 기쁨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일제 강제징용자들을 태운 배가 의문의 폭발 사고로 침몰했다. 그 이틀 전 일본 아오모리(靑森)와 홋카이도(北海道)에 강제징용된 조선인을 태우고 떠나 이날 오후 일본 교토(京都) 마이즈루(舞鶴) 만에서 침몰한 우키시마(浮島)호다.

당시 일본이 발표한 한국인 공식 사망자는 524명. 하지만 생존자 등은 “승선자가 7000~8000명 정도였고, 적어도 2000~3000명이 죽었다”고 주장했다. 정확한 숫자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한국인이 해방 이후 그토록 그리던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바닷속에 수장됐다.

   
▲ 일제 강제징용자 등을 태우고 침몰한 우키시마호. [연합뉴스]

문제는 사건이 발생한 지 78년이 흘렀지만, 아직 정확한 침몰 원인 등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일본 측은 미군이 투하한 기뢰에 의해 배가 폭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생존자 등을 중심으로 일본 측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계속됐다.

이런 가운데 2016년 우키시마호에 폭발물이 실려있었다는 일본 정부 기록물이 공개되기도 했다. 1945년 8월 22일 19시 20분 일본 해군 운수본부장이 우키시마호 선장에게 내린 ‘항행금지 및 폭발물처리’ 문서였다.

문서에는 ‘1945년 8월 24일 18시 이후 ▶지금 출항 중인 경우 이외는 항행 금지하라 ▶각 폭발물의 처리는 항행 중인 경우 무해한 해상에 투기하라, 항행하지 않은 경우 육지 안전한 곳에 넣어두라(격납)’고 돼 있다. 하지만 우키시마호는 폭발물 처리를 하지 않고 22일 오후 10시 아오모리 현 오미나토(大湊)항을 출항했다.

이 문서는 당시 김문길 우키시마호 폭침 한국인희생자추모협회 고문이 2016년 봄 일본인에게서 넘겨받아 그해 8월 8일 부산에서 열린 진상규명 세미나에서 처음 공개했다. 일본 측 책임론이 더 불거졌다.

우키시마호는 1977년 일본 공영 방송 NHK가 ‘폭침’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것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며 관심을 끌었으나 아직 그날의 실체적 진실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해방 귀국선 우키시마호의 목적지였던 부산항 1부두에 우키시마호 희생자 추모 공간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위성욱 부산총국장 

동북아평화·우키시마호희생자추모협회는 지난 7일 오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항은 일제 강제동원 한국인의 출항, 귀항이 이뤄지던 곳으로 우키시마호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며 “우키시마호 추모평화탑·역사추모공간 등이 함께 조성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우키시마호는 1954년 일본 측이 인양했으나 바닷속에 수장된 유해는 대부분 아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실체적 진실을 인양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을 기억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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