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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순교자, 땀의 순교자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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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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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동 / 논설위원

   
 

피의 순교자, 땀의 순교자‘1837년 6월 7일 세 명의 조선 신학생이 마카오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도착했다. 한양을 출발한 지 6개월 만이었다. 만주에서 북경을 거쳐 남쪽으로 중국 대륙을 종단하는 9000리(3600㎞) 길을 걷는 사이에 계절이 세 번 바뀌었다.’ 지난해 출간된 <김대건 조선의 첫 사제>(이충렬 지음)의 한 대목이다. 세 명의 신학생은 1821년생 동갑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최양업 토마스, 이들보다 한 살 위인 최방제 프란치스코였다. 불행히도 최방제는 풍토병에 걸려 그해 11월 세상을 떠났고, 남은 두 사람은 1844년 12월 신학교를 졸업하고 부제(副祭)가 됐다.

여기서부터 길이 갈렸다. 당시 조선 천주교를 이끌던 프랑스 사제들은 내성적인 최양업 대신 외향적 성격의 김대건을 먼저 조선에 들여보내기로 했다. 부제 신분으로 조선에 돌아온 김대건은 제3대 조선대목구장에 임명된 페레올 주교를 입국시키기 위해 황포돛배를 타고 서해를 건너 상하이로 갔다. 거기서 조선인으로는 처음 사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와 함께 천신만고 끝에 한양으로 돌아와 신자들을 돌봤다. 이후 산둥반도~백령도 입국로 개척을 시도하다 발각돼 1846년 9월 16일 한강변 새남터 모래사장에서 처형됐다. 그의 나이 불과 25세. 사제가 되고 1년이 갓 넘었을 때였다.

1849년 두 번째 조선인 사제로 서품된 최 신부는 그해 12월 압록강을 건너 귀국했다. 충북 진천의 배티성지를 기반으로 삼남지방(충청 경상 전라)의 127개 공소를 걸어 다니며 미사를 집전하고 신자들을 만났다. 한 해 동안 걸은 거리가 7000리(약 2800㎞), 바쁠 땐 하루 80~100리를 걸었다고 한다. 최 신부는 1861년 6월 과로에 장티푸스가 겹쳐 경북 문경에서 선종했다.

천주교에서는 김 신부를 ‘피의 순교자’, 최 신부를 ‘땀의 순교자’라고 한다. 한국 천주교는 순교자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신부의 순교 177주년이던 지난 16일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에 김 신부의 성상(聖像)이 모셔졌다. 마침 9월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자를 기억하고 기리는 ‘순교자 성월’이다. 종교를 떠나 순교자의 지고지순한 마음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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